그러나 그것만으로 안되는 게 있다. 살림장만, 살 집을 구하는 것 등 두 사람이 합의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도 있지만, 역시 결혼에는 반드시 거쳐야만 할 것들이 있었다. 예식장을 잡아야 하고, 주례를 모시고 하는 일 따위이다. 아무리 오래 사귀었어도 생략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김 형은 누구에게 주례를 부탁할까하고 한참을 망설였단다. 역시 생각나는 것은 대학 때 교수님들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한 기억도 없고, 별로 가깝게 지내던 교수님도 없어서 여기서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과연 어느 분에게 부탁을 해야 할까?
그때 김 형의 머리에 떠오른 분이 자신의 전공과목 교수님 중 장 교수님이란 분이었다고 한다. 김 형이 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중반에도 항상 빵모자를 쓰고 다니던 그 분은 항상 더블 자켓을 입고 다니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 형이 그분에게 부탁을 하기로 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스페인문학 수업시간에 마치 자신이 연극배우인 것처럼, 항상 등장인물에 푹 빠지곤 하던 그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시기의 유명한 기사인 엘시드(EL Cid)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자신이 엘시드인 것처럼 하듯이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면서 강의실을 헤집고 다니던 그 교수님에게서 격의 없는 진솔함을 맛보았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장 교수님은 별로 성실하지 못했던 학생이었던 김 형을 졸업 후에도 기억하고 있었고, 흔쾌히 주례를 맞아주시기로 수락하셨다. 그 분답게 상당한 제스추어를 섞어가면서 좀 장황하게 주례를 서신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두 사람은 즐겁게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직장에 출근하고, 꿈같은 신혼생활을 해나가던 어느 날 갑자기 주례를 서신 교수님에 대한 생각이 났다. 그때 주례 선생님의 식사를 챙겨드린 기억은 분명히 나는데, 결혼식 날 정신없이 바빴던 신랑신부가 주례 선생님의 배웅을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전화가 시작되었다. 부모님부터 사회를 본 친구... 이렇게 한바퀴 쭉 전화를 돌리고 나니 결론이 나왔다. 아무도 주례를 서신 교수님을 챙겨드린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않았다. “어떡하지?”
이미 결혼 한지 몇 달이나 지난 뒤였다. 지금에 와서 찾아가서 인사를 드린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편해지련만, 김 형은 늘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추석. 고향인 포항에 인사를 드리러 다녀오는 길에 오징어 한축과 토종꿀을 한 항아리 사들었다. 서울에 내리자마자 이대 후문 부근 어디에 있다는 장 교수님 댁을 두 사람이 찾아갔다. 무릎을 꿇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말씀드렸다고 한다.
장 교수님은 껄껄 웃으면서, 너무 기분 좋아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이 답례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냥 식장에서 하는 인사로 끝이야. 이렇게 자네처럼 늦게라도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야-아. 좋구나. 오징어... 맥주 한잔하지...”
원래 술을 잘 마사지 않는 장 교수님은 그날 맥주 여섯 캔을 드셨다고 한다. 고서적이 가득한 방에서, 김 형과 김 형의 부인 앞에서 장 교수님은 예의 그 현란한 액션을 보이시면서 다시 스페인 문학에 대해 열연을 했다고 한다.
김 형의 부인은 김 형에게서 말로만 전해 듣던 그 분의 그 특기를 직접 뵐 수 있었고, 김 형은 하마터면 평생 마음에 짐이 될 뻔했던 본의 아닌 잘못을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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