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둔 관계의 미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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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둔 관계의 미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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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루의 촛불은 미운정을 위해서 밝혀야 할 때

이청준의 ‘눈길’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진 빚이 없으니 남아있는 정도 없다는 스토리가 이색적이다.

서로에게 줄 것도 받을 것도 없어서 한겨울 밤 모자간에 몹시도 냉냉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은 삭막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한다.

‘눈길’에서의 모자지간은 서로에게 받은 것이 없어 나눌 것도 없다는, 한 마디로 빚 진 것이 전혀 없어 부모 자식 간임에도 불구하고 미운정도 없다는 것이 부각되는 이야기다.

각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새롭게 쓰여지고 있어, 마치 삶의 모든 분야가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한 것이 이치인 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아스라한 현실이다.

이에 사람관계마저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이 깨끗하게 계산이 끝난 관계가 과연 이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 관계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마디를 두고 법을 운운하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국가나 국제관계의 사정은 개의치 않고 당장 법에 접촉되지 않는다면 칼로 두부자르듯 하려는 것이 법치국가를 살아가는 원수와 국민들의 자존일까?

최근 정치판은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 대통령도 언론을 고발하고, 여당과 야당이 서로 고소 고발로 사실 관계를 밝혀서 따지고자 하는 풍토이다.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사실상 결정이 된 사실을 두고 국가의 입장은 개의치 않고, 끝까지 집단의 힘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도 당장 빚을 받아내려고 하는 빚쟁이의 모습으로 변질될 우려를 낳고 있다.

거의 객관적인 이미지로 국민 앞에 펼쳐진 일들마저도 특정 낱말 사용여부를 따져 언론사에게 손해배상을 운운하는 국가 대표의 모습이나 여당과 야당이 법정 대립을 일삼는 풍경을 멀리서 보았을 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물하고, 진흙탕에서 싸움하는 꼴로 보여진다.

우리 말에 미운정도 정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깨끗하게 계산이 끝나버리면 정도 없기 마련이다.

빚쟁이는 빚을 진 사람을 쫒아다니다 보면 그의 사정을 속속히 알게 된다. 그러다 빚을 진 자가 정말로 가진 돈이 없어 빚을 못 갚는 다는 것을 알게 되면 되려 쌀이라도 사주고 오기도 한다. 돈을 빌려준 죄에 큰 소리도 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관심 때문에 덤으로 퍼주어야 할 입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 미운정이다.

국가의 원수는 국민에 의해서 뽑힌 나라의 대표이므로 국민들에게 의무를 다해야 할 빚을 지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국민은 그들에게 빚쟁이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주고 받을 것이 남아있어야 하는 사이이다. 당연히 고운정이 없다면 미운정이라도 남겨두고 살아가야 할 사이이다.

세상은 급속도록 변하고 있다. 국가에게, 국민에게, 스스로에게 정말로 내가 빌려준 것이 있는 인간적인 빚쟁이라면 이제 한 자루의 촛불은 미운정을 위해서 밝혀야 할 때이다.

좀 자제하고 지켜볼 때이다. 그 빚진 자가 능력이 되는데도 빚을 안 갚는 것인지, 아니면 갚을 능력이 안 되는 것인지. 조용히 따라다니면서 그의 사정을 지켜보아야 하지 않을까?

칼로 무 자르듯 이치를 밝혀서, 더 이상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관계는 부모 자식 간에도 이상적이지 못하다. 우리 정치가 우선은 국민에게 갚을 능력이 없어서 답보상태일 것이다.

아직 돌잔치도 하지 않았는데, 걸음인들 제대고 걷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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