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어지러움 모르는 '노베르토 보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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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어지러움 모르는 '노베르토 보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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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신좌익사상비판 (2)

^^^▲ Norberto Bobbio^^^
노베르토 보비오 그는 누구인가?

1909년 이탈리아 공업도시 투린에서 태어난 "노베르토 보비오"는 이탈리아가 배출한 유럽의 꽤 이름있는 정치사상가, 이론가중 한 사람이다. 튜린대학에서 법철학을 전공한 그는 변호사이며 대학교수였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사회당(PSI )소속의 종신 상원의원으로써 이론적 실천적으로 좌파적이지만 좌파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무척 노력도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좌파의 근원적 본질과 성질을 버리지 않는 한 자유주의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유로코뮤니즘(유럽 공산당)을 이루고 있는 수 많은 좌파적인 이론적, 실천적 조류와의 논쟁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정치이론을 형성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의 실천적 당 이론은 PSI로 하여금 독특한 방법으로 현실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도록 주도했다.

또, 그는 이탈리아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인 이권정치, 즉 혼탁한 부패사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좌파적 지행합일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다. 어찌보면 그 동안의 한국정치 현실도 보비오가 실천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해온 이탈리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지적성과물을 검토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대한민국의 민주화, 산업화과정을 거쳐 이제 그 공고화,선진화 단계에 들어서야 하는 한국의 정치현실 역시,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맹목적으로만 좌파사상을 비판 검토하지 않고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한, 지역주의와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에 얽매여 진퇴양난을 계속 거듭하기 때문 아닌가?

그의 저작들은 단순한 정치이론이 아니라 실천현장에서의 논쟁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순진하게 읽는 이로 하여금 좀 매력과 힘을 느끼게도 한다. 대표적 저서는 (민주주의의 미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독재)등이 있고, 매우 중요한 점은 (어떤 사회주의인가?) 등인데 모두 한결 같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전제로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즉, 그의 사상핵심은 소위 “진보적”인 사회체제를 추구하는 사람들(좌파)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에 의해 보장되는 “자유” 라는 것이 참다운 자유사상의 내용과 형태가 아니라 그들 입장에서 얼마나 이용하기에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그의 통찰은 이탈리아라는 특정사회의 정치노선 문제를 넘어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류가 현대적 조건에서 정치 제도로써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즉 민주주의의 미래를 전망하는데 시사점을 보이기도 하는 듯 하지만, 필자가 볼때, 보비오가 무척 심사숙고하고 이 문제에 있어서 노력하는것 같았으나 역시 그의 사상은 새로운 좌파적 한계와 오류를 벋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정치와 문화 1955) (민주주의와 미래 1987) (어떤 사회주의인가?1987)(자유주의와 민주주의 1990) (제3의 길은 가능한가? : 좌파냐 우파냐? 1995) 등이 있다.

보비오가 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생산수단의 공적인 소유를 통해 물질적 분배의 평등(좌파의 핵심:결과적 강제적 평등)”을 추구하고 나아가 노동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거대한 세계사적 오류의 실험, 사회주의는 20세기에 그 막을 내림과 동시에 분명히 실패로 끝났다.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국가들도 공산당주도의 집산주의적 계획경제 체제에 수정을 가하고 자본주의적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대한 수용의 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계사적 흐름이다.

그러한 면에서 노베르토 보비오가 아무리 뛰어난 사상가라고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자들로 하여금 ‘시민사회’ 라는 개념에 주목함으로써 유로코뮤니즘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20세기 초반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상들 중 마지막 발악의 오류에 대해 필자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비오에 관한 논의 역시 우리는 “민주주의” 라는 개념의 절대가치적 한계속의 좌파적 오류를 지적해야만 한다. 현대사회의 “민주주의” 는 모든 인류에게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면서 그것과 대비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그냥 막연한 민주주의에 관한 관심이 오히려 퇴조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렇듯, 세계는 막연한 민주주의보다는 확실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길로 가는데 왜 아직 유독 대한민국만 막연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속에, 무슨 “시민참여” 라는 어중떠중 말속에 스며든 참여의 어지러운 단점들로 "격조 높은 참여의 참가치"가 퇴색되고 노무현같은 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미친 광풍의 노사모들이 국가를 반역의 길로 치닫게 하였는가? 하는 점이고 현 이명박 정권의 탄생과정에서도 정치 현실적으로 이 참여라는 말속에 어질러 놓은 "위장참여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정치외교학이나 법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닌 이상,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이고 막연한 관념으로만 생각했거나 지식인이라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우파의 자유민주주의 라고 할 때의 “자유”라는 사상적 개념“과 좌파들이 늘 위장으로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속의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를 숨긴 지상최대의 과제 민주주의“의 사상적 개념과 요소를 잘 모르기 때문 아닐까?

또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적 기회나 자신의 안일, 보신을 위해 이를 은근슬쩍 숨기고 동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악랄하며 가증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는 얼치기 좌파나 사상 무비판 추종파, 눈치파들의 비판 없는 수용도 한몫했다 아니할 수 없다.

그만큼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정치의 지적환경은 지성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고 비열한 측면이 많다.(물론 이말은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우파 지성을 일컫는 말은 아니다.) 왜 한국의 지성은 대다수 국민들의 답답하고 울적한 가슴을 어루만지고 달래지를 못했는가?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면서도 ,깨닫고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성이 지성답지 못하고 여전히 폐습을 답습하고 정치권에 줄서고 전향했다고 하면서도 신 좌익들의 사상과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그들은 아니지만 할 말이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수많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마르크스는 옳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가 틀렸다고,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옳았지만 마르크스적 실천이 틀렸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면죄부를 부여할 때, 독특하게 죽어가는 좌파의 활로를 모색하던 노베르토 보비오는 “도데체 어떻게 오류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냐? 고 하면서 ” 마르크스는 옳았지만 그의 이상은 잘못 되었다.“ 고 과감한 비판을 사회주의자 내부에서 제기한다.

그의 사상적 핵심은 “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정신은 유효하지만 그의 공산주의에 대한 설계이상은 무효고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자유민주주의적 “자유”만을 강조하면서 마냥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했던 이론가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인류가 어우러져 살만한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이룩하기 위한 여정은 “민주주의”를 탄탄히 구축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얼핏보면 맞는 말로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자유사회주의(Liberal socialism)" 또는 ”다원사회주의“ 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체제가 역사적인 시행착오를 거쳐 보존해온 개인주의적 신조와 노선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적인 가치와 물질적 재화의 평등한 분배와 균등한 기회등 분배적 정의를 수용하는 법의 지배, 활발한 대의주의, 그리고 경쟁적 복수정당정치의 실질적 제도화가 그 내용이다.

요컨대 그는 “자유”와 “평등”을 역관계가 아닌 병렬 성립할수 있는 정관계로 구현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자유(socialist liberty)"를 강조한다. 이와같은 기본적 발상위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들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해부하고 있으나 여전히 그 관점은 좌파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회주의자(좌파)들은 “부르죠아(자본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반면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생산수단의 공유를 통한 경제적 권력의 광범위한 차이를 좁혔을때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보비오는 이러한 생각을 민주주의를 단순한 의사결정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렇게 단순한 사고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유주의적 권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자유주의적 수단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비오는 사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해방“은 근대 민주주의를 낳았던 모든 제도발전, 확대, 강화를 요구하며, 단 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제도가 정지 한다면, 다시 말해서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문제를 과소평가한다면 전혀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의 결론격으로 보비오는 ”생산자의 자치정부“ 를 자유사회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에 보비오는 다음을 주장하였다.

* 자유주의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 민주주의 네가지 패러독스를 해결하자.

a.(현대사회는 점점 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다)

b.(점증하는 민주주의의 요구속에서 살고 있고 그에 수반하여 민주적인 제도들이 병행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국가의 규모와 기능의 증대로 관료주의가 동시적으로 성장하는 사실이 문제다)

c.(사회가 발전할수록 고도의 전문지식을 지닌 유자격자가 아니면 맡길 수없는 기술적인 해결을 요하는 문제들이 점점 증가하는데 전문가에 의한 통치유혹이 점증한다. 공업사회의 주역은 과학자, 전문가, 숙련기술자일수밖에 없는데 민주주의의 주역은 평범한 시민, 보통사람이다. 즉 모든 민중이어야 한다.)

d.(현대사회에서 대중들은 정치적 사안에 점점 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적인 요소인 시민의 “참여”라는 개념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등등이다.

보비오 논쟁이란 무엇인가?

보비오의 비판을 둘러싼 국가론 논쟁을 “보비오 논쟁” 이라고 부른다. 보비오는 당시 마르크스주의세력, 즉 공산당 세력들이 현존 사회주의의 위기와 모순에 대하여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우유부단함이 바로 “마르크스” 자체의 한계에 기인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1975년에 발표한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은 존재하는가?) 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대안은 있는가?) 라는 두편의 글에서 이 한계를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부제) (국가론 또는 민주주의론의 부재) 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비판은 현실사회주의의 위기성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 좌파의 이행이론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성격을 띠어 공산당 이론가들의 다양한 비판을 촉발시켰다.

^^^▲ 사회주의자와 공산당은 항상 정치적 참여를 이끌기 위해 선동을 한다.참여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참여의 내용이 좌파라면?^^^
“노베르토 보비오”,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주의의 현대적 기본정의는 무엇인가?

모든 형태의 독제체제와 구별되는 정치형태로써의 민주주의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는 오로지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민주주의를 누가? 종합적인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가?의 문제와 그것은 어떤 절차에 의거해서 이루어 지는가?의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일련의 규칙들(즉, 그나라의 법제도)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어떠한 사회집단이든 대내외적인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모든 구성원들을 구속시킬수 있는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모든 결정은 설사 그것이 집단적 결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개인들에 의해 내려지기 마련이다.

즉, 집단 그 자체가 어떤 결정도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들에 의해 그것이 한 사람이든, 몇몇 사람이든, 많은 사람이든, 아니면 모든 사람이든 간에 내려진 한 결정이 집단적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결정이 누가 결정권자이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명시한(성문이든 관습이든)규칙(법)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한다.

전체적인 결정을 내리는 주체를 기준으로 하자면 민주주의란? 대다수 성원들에게 이러한 결정권(결정할수 있는 힘은 기본적으로 그나라 헌법의 보장에 의한 결정권이 된다.) 이 부여되어 있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선 보비오의 주장은 다음의 엄청난 문제들이 있다.

사상적인 보비오의 문제

보비오가 주장한 바가 아무리 겉보기에 그럴듯하고 옳은것 같지만 우선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할 때 사상적인 문제는 보비오가 아무리 마르크시즘의 문제를 비판 지적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은 마르크스 극복을 위한 마르크시스트라는 점(즉, 좌파)이다.

보비오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마르크시즘이 실패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보비오는 자유주의 개념과 공존하자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말은 그럴듯해도 사실상, 사회의 실체성 분석상 불가능한 갈등요소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게 보면 내가 가진 것이 있든 없든 노동자라고 생각하면 보비오가 옳은듯하고 가진것이 많든 적든 나는 결국 내 꿈과 희망과 노력으로 존경받는 자본가가 될것이고 그 사상들이 좋다고 하면 보비오가 아무리 자유주의와 공존하고자 주장해도 그는 좌파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많은 점을 생각해야 한다. 전에 좌파였다가 지금 진정한 전향을 하는것 같지도 않은 뉴라이트의 일부인사들이 왜 나는 우익으로 전향했다. 자유주의와 공존하자고 하면서 줄서기, 위장, 기회주의 정치를 하는 현상이 있는 것인가?

바로 노베르토 보비오같은 사상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은 생산수단의 평등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자유주의와 공존하자는 우파 색깔내기로 자리를 차지한 후 공적부분에서 좌파적으로 빼앗기 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뉴라이트의 행태와 여러가지 불법폭력사태, 이명박 정권 등장과정의 문제가 증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마르크스는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자신들을 스스로 합리화할 뿐이다. 그런면에서는 정통 자유주의 우파도 우리의 자유주의 사상의 근원적 요소와 사상가들이 누구인지 모르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꼭 우파사상도 잘 모르는 얼치기 우파들이 이들에게 잘 속아 넘어가며 그냥 포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정한 자유주의자 입장이라면 가소롭고 웃기는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동안의 우리나라 사법부도 반 좌파 일색으로 바뀌어 버렸다. 변호사협회에 대한변협과 민변(좌파성향)이 나뉘어져 있고 한나라당 내부에 좌파가 활개치고 헌법상 국가정체성이 흔들려도 마약을 먹은양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것 아닌가?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

보비오가 말한 민주주의의 4가지 패러독스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보비오가 말한 (현대사회는 점점 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은 얼핏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말하는 것이 “참여”고 "직접 민주주의"다. 헌법상 분명히 우리는 대의제 민주주의(의회제도,간접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데 이는 약점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나의 직접적인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고, 일단 국회에 들어가면 여론이 무시되고 의원 마음데로 한다는 점"인데 좌파도 항상 이를 노린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말하는 것이 "시민의 참여"이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그 이름으로 시작한 좀 유명한 시민단체가 처음부터 좌파적 성향으로 출발한 이유이다. 노무현이 항상 말했던 것이 시민의 참여이고 여론 아닌가? 이름부터 참여정부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직접민주주의의 요소인 시민의 참여를 어떻게 하며 누가 하는 것인가?하는 점이고 이는 엄청난 맹목적, 우중적, 대중적,선동적 표퓰리즘의 문제들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것에다 좌파사상들까지 침투했으니 말해서 무엇하는가?

시민참여의 허울과 가면아래, 그 분야의 아무 전문성도 없는 비전문가들이 참여하고 농단했기 때문이다. 또 좀 전문적이라 보였던 경실련, 참여연대같은 단체들도 수단만 전문적이었지 그 구성인사들을 보면 좌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회주의 실현"으로 가게끔 되어있다.

지금 노무현 정권은 이명박 정권으로 이양되었고, 그 총체적 실정은 이제 종막을 고해야만 한다.
현재 한나라당 내부의 얼치기 뉴라이트들도 문제고 인명진, 이재오, 파동, 오픈 프라이머리도용, 수용꼼수, 다 마찬가지다. 실패를 숨기고 또다른 실패를 부르지 마라. 그들은 엄중히 전체국민들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간접민주정치의 약점을 극복하는 것은 직접민주정의 요소를 어떻게 도입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는 지금 발달한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의견표명을 할 수도 있고 앞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얼마나 양질의 자유주의 각분야 전문가들이 문제들을 지적하고 대안을 교환하고 발표하는가이다.

즉 양질의 책임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요소에 도입해서 대의제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그런면에서 우리 자유주의 우파단체들도 각각 전문적인 정책대안들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나는 국민 여러분께 여쭈어 본다. 도데체 각분야의 진실하고 양심적으로 노력한 전문가들이 왜 문제인가?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시민들이 아닌가? 우리가 이를 무시하고 좌파들의 놀음에 놀아 난다면 대한민국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반역과 실정과 함께 이명박 정권마져 이를 쇄신하거나 과감하게 고치지 못한다면, 브라질, 아르헨티나보다 더 추락하는 참여의 엉망진창 나라로 계속 곤두박질 할 것이다.

*보비오가 말한 (점증하는 민주주의의 요구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에 수반하여 민주적인 제도들이 병행해서 발전하고 있다고해도 국가의 규모와 기능의 증대로 관료주의가 동시적으로 성장하는 사실이 문제다)

*(현대사회에서 대중들은 정치적 사안에 점점 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적인 요소인 시민의 “참여”라는 개념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에 대하여 필자가 지적하는 것은 관료주의가 무조건 보비오 말처럼 나쁘기만 한 것인가?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관료주의의 폐단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대사회의 국가치고 무정부상태가 아니라면 관료주의로 아니갈수 없다.

심지어 사회, 공산주의 국가도 국가라면 관료주의로 정부를 구성하고 가는 것이다. 문제는 공무원들이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있는 장치가 반드시 확립되어야 하고 사법권이 확고히 독립되어 있으면 된다.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공무원노조가 개판을 만드는 나라가 아닌, 정말 신뢰받고 존경받는 봉사정신의 전문가가 관료를 할 수있는 양질의 작은 정부로도 효율적인 시스템 사회에서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겠는가?

보비오의 이말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선동하는 말일 뿐이다. 노무현이 말한 참여의 정부속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범죄가 형성되었는가? 심지어 아내살인자가 청와대에 있었고, 사기치고 도박공화국 만들고 국가반역동조하고.....경제, 교육, 부동산 개판 만들고....이런 일들이 왜 근절되지 않는가? 시민의 참여라도 필자는 기필코 양질의 자유주의 우파 전문적 시민단체가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또하나 중요시해야 할 점은 항상 이들도 부정부패를 말하고 보비오 자체도 법률가였기 때문에 부정부패 문제에서는 철두철미 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내부 시스템의 부정부패문제는 철저히 우파윤리의 기준과 우리 법으로 다스려 나가야 한다. 부정부패를 도려낸다고 해서 막무간에 보비오 추종자가 되어 궁극적으로 위장 사회주의자가 된다면 필자는 대한민국의 지성으로써도, 법률가로써도 자격미달로 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노베르토 보비오는 중성, 중도로 사회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친, 위장하고 실패한 사상가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사상도 폐기되어야 한다. 이를 추종하던 무리들이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 오히려 극좌파보다 더 비열하고 나약한 사람들일 뿐이다. 한나라당이나 우익에 침투한 분자들도 몰아내어야 한다. 이 사상은 노무현 정권과 함께 그 종말을 이땅에서 고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이명박 정권은 출범초기부터 노무현스럽게 그리 표퓰리즘적인가?

불탄 숭례문은 불을 낸 범죄자가 해결할 일이지 이를 왜 얼토당토않은 국민성금으로 해결하려 하시는가? 정말 노무현스럽다. 정치적 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는 참여의 질과 내용이 문제였다. 언제 이 땅에 무궁화의 향기가 선진스럽고 품격있게 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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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2008-03-06 21:37:43
최고 ! 정말 잘보고 갑니다.
보비오 그 어려운 사상을 이렇게 쉽게 비판하다니...
계속 기대합니다.
머리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서초동 2008-03-06 21:38:43
그렇지, 화끈한 것 보고 갑니다.
후배들에게 이런 새 시각이 없어 걱정입니다.

형법책 빌려준 이 2008-03-06 21:39:44
언론사의 사명을 보는 것 같소 !
나도 잘보고 갑니다.

결사대 2008-03-06 21:40:25
권기자 필석이 잘있어...
열심히 하세요
화이팅

호랑이 2008-03-06 21:41:03
공부잘하고 갑니다. 권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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