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나의 학교 생활'이라고 하지요. 위에서 부터 쭉 내려오다가 아랫 쪽 '행동 발달' 란에 눈을 고정시켰습니다. 큰 딸 모은이의 통지표였는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행동이 다소 느리나 마음씨가 곱고 웃어른에 대한 예절을 잘 지키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생들을 평가한 선생님의 기록들 치고 나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긴 해도 '마음씨 곱고 예의 바르다'니까 기분은 좋습니다. 하지만 '행동이 다소 느리다'는 건 불만입니다. 이 말은 '애가 좀 둔하다'는 표현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애 엄마는 "모은아, 공부 잘하는 것보다 착한 사람 되는게 더 좋은 거야'하고 격려를 해 줌니다. 하긴 애가 누구를 닮겠어요. 둔하다면 아빠 아니면 엄마겠지요. 아마 저를 닮았을겁니다.
저는 모은이가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어리니까 부모 말 잘 듣고 그러겠지요. 그러나 좀 크고 나면 달라질지도 모름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식에 대한 기대는 한이 없습니다. 공부 잘해서 유학도 가고, 좋은 직장에도 들어가고, 성실하고 능력있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그리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등등.
사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너무 속물 근성을 많이 드러냈나' 하는 조심스러움도 있습니다. 잘 살고 못사는게 불과 백 년인데, 우리들은 살아가야 할 인생이 무척 길다고 착각을 합니다. 바닷 물에 침 한 번 밷는거나, 허공에다가 '휴'하고 한 숨 내 쉬는 거나 별반 다른게 없습니다. 기나긴 인류 역사에 비하면 한 사람의 인생은 별거 아님니다. 그리고 우주의 영원한 시간 앞에서 역사 또한 작은 먼지에 불과합니다.
저는 우리 모은이가 '겁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예절바른 사람'이 될 것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하고 고민한다면 '최소한 성실하게 자기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될겁니다. 그리고 죽음이후의 영원한 삶을 근심한다면 역사, 진리, 이웃 사랑 같은 거창한 목표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다가 비유를 했더군요.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가서는 즐겁게 살다 왔다'고 말하겠다'는 선생님의 여유로움이 부럽습니다. 우리들 또한 언젠가는 인생의 방학을 맞게 될겁니다. 그때 <나의 인생 생활> 중 '행동 발달'엔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초등학생의 통지표를 보다가 인생을 얘기하고 있으니, 제가 어지간히 주책을 떨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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