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영어, 할 사람들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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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영어, 할 사람들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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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만 선발, 집중 투자한다면 충분히 승산

 
   
  ^^^▲ 파주영어마을 전경^^^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려고 몸부림치는 이 땅의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보면 슬프고도 화가 치민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거의 극소수를 제외하고 한국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영어로 쓰인 글을 잘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도 잘할 수 없다.

그 원인으로 한국은 국제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영어권이라는 사실, 인재선발에 이용되는 객관식 시험, 끝으로 과시욕이 강한 문화를 들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한국의 영어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겠다.

첫째, 영어를 잘 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영어권에 속한다는 유럽이나 영어를 역사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동남아의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이 땅에서는 문고리 잡고 나가면 온통 한국말만 들리는, 그래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워낙 태생적인 것이기 때문에 영어마을과 같은 인위적인 환경조성과 단기의 어학연수뿐만 아니라 영어 공용화와 같은 미친 발상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유를 들면, 피아노가 아무리 흔하다고 해도 막상 자기 집에는 피아노가 단 한 대도 없어 연습도 못하면서, 그래도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땅바닥에 건반을 그려 놓고 입으로 피아노 소리를 내며 연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훌륭한 피아노 교사에게서 개인 교습을 받았다고 해도 집에서 연습을 못한다면 그 훌륭한 교습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책 결정자들은 이것저것 다해 보다가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는 미친 발상까지 하게 되었다. 영어를 원어민이 가르치는 분야가 따로 있고 같은 내국인들끼리 가르칠 분야가 엄연히 다르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 조차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이다.

내국인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하려고 따로 영어를 배우는 교사들의 실력이 그나마 조금 향상될 뿐이다.

수업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모양은 좋다. 모양 좋게 하려고 그 많은 예산을 쏟아 붙기 보다는 외국어 학습의 기본 요건인 소수 정원의 학급 구성에 보다 신경 써야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교사도 4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국내의 영어마을, 원어민 개인지도 그리고 외국연수를 통해서 입이라도 띠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는 실력을 계속 유지 향상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쓸 일이 없다. 영어 몇 마디 하려고 그 만큼의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인구는 무척 한정적이다.

또한 고등학교 이후에는 모든 영어수업이 듣기시험도 포함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필답고사 위주인 대학수능시험에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어렸을 때 배운 회화 능력은 순식간에 사장되고 만다.

언제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를 영어를 위해서 그렇게 무모한 투자를 한다는 것은 경제에 대해서 누구 보다 잘 안다는 이 정부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는 셈이다. 모든 한국 사람이 영어를 한 마디는 해야 된다는 논리는 깊은 두메산골에서도 휴대폰을 판매할 일도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 곳에다 대리점을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둘째, 줄 세우기식 객관식시험이 계속 존재하는 한 올바른 영어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첨단 정보를 신속하게 접하고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영어교과 과정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시험으로는 그에 따른 학업 성취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수능과 토익시험이다. 두 시험의 공통점은 객관식출제이며 1점 또는 2점의 차이로 변별력을 나타난다는 점이다. 객관식이 모두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일점 이점의 차이로 사람의 언어수행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인가.

출제자는 동점자 없이 응시자들을 줄을 세우려다 보니 영어수행에 있어서 비록 쉽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내용에 관해서 출제하기 보다는 오로지 변별력을 보일 수 있는 사항에 관한 문제만을 출제하게 된다. 이러한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 학습자는 어쩔 수 없이 출제자의 의도 파악에 주력하게 되고 이에 편승해서 진정한 영어교육은 사라지고 그 대신 갖가지 시험대비 전략만이 난무하게 된다.

대학입시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수능은 어쩔 수 없다지만 문제를 만든 장본인조차도 신뢰를 주지 않는 기형적인 토익 시험에 목을 매는 한국인들 등 뒤에서 돈을 세며 웃고 있을 미국인들을 보면 너무도 속이 상한다.

셋째, 성급하게 실적이나 내려는 전시행정과 지나친 과시문화는 회화중심의 잘못된 교과과정을 낳게끔 한다.

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영어가 이렇게 배우기 어려우니 포기할 만도 하겠지만 영어배우기가 어려운 만큼 배웠을 때 보상도 크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간에 미련을 못 버린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어를 연습할 기회도 없고 그저 시험에 나오는 문법이나 단어만 암기하는 교육은 좌절감만 반복해서 가져다 줄 뿐이었다.

마지못해서 봐야하는 각종 영어시험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에게는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영어회화 중심의 영어교육은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지긋지긋하기만 독해수업과 비교해서 회화 수업은 단 시간에 가시적인 효과가 있어서 빨리 배우고자하는 성급한 마음을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아무리 영어독해를 잘 해도 이마에 써 놓고 다니면서 자랑할 수도 없었는데 영어회화실력은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에 너무도 편리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단한 의사소통을 영어로 하면서 자신감을 갖는 것도 잠시 뿐이다. 승진이다 취직이다 해서 영어회화 향상과는 관계없는 필기시험을 따로 준비해야 하고, 영어의 근본 원리도 익히지 않고 그저 입술과 혀의 근육에 의존한 서 푼 어치의 회화실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언어라는 것은 성급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각나면 공부했던 10년 세월에 허세부리며 공치사를 하면 안 된다. 인간이 제대로 집중해서 10년 정도 배우고 못 배울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영어에 대해서 좌절감만 느끼고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된다. 설사 영어를 모두 잘 한다고 해도 미국 땅이 아닌 다음에야 영어를 해야 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영어능력과 세계화의 상관관계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필리핀, 인도, 유럽의 몇몇 약소국가들 의 경우에서 보듯이 많은 국민이 영어를 한다고 해서 세계화가 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어에 선천적인 재능이 있고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만 선발하여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영어를 취미삼아 배우려는 소수정예그룹들은 알찬 수업을 받아서 좋고, 다수의 국민들은 말도 안 되는 허접스러운 시험에서 해방되어 남는 시간을 자기 개발에 투자할 수 있어서 좋다.

소수정예그룹들에게는 다른 특별한 혜택을 줄 필요는 없다. 그들은 어차피 취미삼아 재미로 영어를 배워서 영어 학습이 괴롭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산악인들이 부와 영예를 위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산이 좋아서 죽음을 무릅쓰고 그 곳을 찾는다.

인재 선발을 위해서는 한국어 능력시험처럼 영어 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유용한 시험이 많이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온 국민이 영어에 대한 천민적 자본주의에 근거한 열등감을 떨치는 것이다.

내용 있는 영어는 하라고 하면 정작 제대로 못하면서 한국말을 하는 가운데 미국의 뒷골목에서나 통하는 영어를 한두 마디씩 섞어 쓰는 허세를 부린다든 지, 주요 일간지에서 멀쩡한 한국어 표현이 있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차용해서 쓰는, 그야말로 해방 후에 미제라면 무엇이든 지 추종했던 구태에서 이제는 벗어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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