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회사근처의 단골식당에 갔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오곡밥을 주더군요. 그래서 오곡밥에 이런저런 나물을 반찬 삼아 맛있게 점심을 먹고는 귀가하여 아침에 남은 밥과 된장찌개를 덥혀 혼자서 외로운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녁은 드셨수?" 그래서 지금 먹고 있다고 하자 아내는 "오늘이 정월대보름 날이니 이따 퇴근할 때 잡곡과 나물을 사다가 맛나게 오곡밥을 지어줄 테니 저녁은 조금만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비정규직 박봉의 세일즈맨인 터여서 돈을 지지리도 못 버는 무지렁이입니다. 그래서 가엽게도 아내는 백화점에 나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관계로 통상 오후 아홉시가 되어야 귀가를 하지요.
그날 밤에 아내는 퇴근하여 시장에 들러오느라 밤 열 시가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 귀가했습니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장에서 사온 잡곡을 씻어 밥을 안치고 나물을 씻고 볶느라 분주했지요. 드라마를 보면서 아내가 사다준 땅콩을 까 먹고 있는데 이윽고 아내가 불렀습니다. "다 됐으니 애들하고 얼른 와서 이 오곡밥 들어요~"
주방에 들어서니 구수한 오곡밥과 고소한 냄새의 이런저런 봄나물이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운 김에 오곡밥과 나물을 얹어 입안에 넣으니 역시 별미였습니다. 그처럼 우리가족 모두가 때 아닌 '심야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데 아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문을 열었습니다.
"참~! 잠시 전에 시장에 갔을 때 말야..."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저는 오곡밥이 너무 맛있어서 건성으로 물었지만 아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시장에 가니 노상에서 어떤 할머니가 나물을 파시길레 2천원어치만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이번엔 입이 터져라 밥을 먹던 아들이 아내의 이어질 다음 말을 재촉했습니다.
"그래서요?" "5천원짜리 한 장을 드렸더니 그 할머니는 내게 거스름돈으로 8천원을 주시는 거야..." "아니, 왜?" "응, 주위가 어두우니까 아마도 내가 드린 돈이 만 원짜리인 줄로 착각을 하셨던 모양이야..." "그래서?" 오곡밥을 먹느라 애써 아내의 말을 치지도외했던 저는 그제서야 호기심이 잔뜩 발동하여 목소리에 힘을 주며 물었지요.
"순간 그냥 돌아설까 하는 맘도 없진 않았지만 난 이내 생각을 바꿨지, 늙으신 할머니가 그깐 나물을 팔아서 얼마나 버신다고 내가 그런 못된 생각을 하겠어..." 순간 저는 '어이구~ 저 맘씨 착한 내 마누라라니...' 라는 생각에 아내가 새삼스레 더 예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 역시도 제 엄마를 연신 칭찬하기에 바빴지요. "와~! 울엄마는 진짜 천사표다" 라면서요.
지난 시절 빈한과 이런저런 곡절로 인해 상충하고 반목하다 못 해 이혼까지도 했다가 어렵게 복혼(複婚)한 아내입니다. 그래서 저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다른 부부보다는 갑절로 크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올 가을이면 저희 부부가 결혼을 한지도 어언 22주년을 맞습니다. 두 자녀 모두를 사랑과 칭찬으로 무럭무럭 잘 키워준 아내가 한없이 고맙습니다.
다음 달이면 큰 아이가 입대하게 되어 이제 저는 더욱 주변이 허전할 듯 싶습니다. 하지만 불변의 아내가 있으니 지금보다도 더욱 사랑하겠노라는 작정의 심지에 불을 환히 밝혀봅니다. 일요일임에도 아내는 오늘도 출근했습니다. 그러한 관계로 오늘의 주방장 몫은 당연히 저입니다. 이제 방청소를 마치고 이어서는 저녁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천사표 아내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을 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