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일기를 잃어 버리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나의 소중한 일기를 잃어 버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지탈 화한 나의 일기장

내가 처음 컴퓨터를 가지게 된 건 약 15년 전이다. 286AT 모델이었을 것이다.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한 ‘보석글’이 깔려있던 그 오래된 기종의 컴퓨터였다. 원래 그 컴퓨터의 임자가 최신 386기종을 장만하면서 살 사람을 찾기에 내가 얼른 나섰다.

“얼마에 파실 건데요?”
“알아서 줘.”

나는 알아서 봉투에 30만원인가를 넣어서 드렸던 것 같다. 당시 나에겐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제값을 치르지 않고 물건을 가져오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컴퓨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본체와 모니터, 그리고 키보드를 가져와 연결을 했다. 컴퓨터에 도스 프로그램이 담긴 플로피를 넣어서 부팅을 시켜놓고 나니, 시커먼 모니터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무엇을 할 준비가 되었으니 명령을 내리시오(prompt)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그것을 보며 무엇을 할까 감감했다.

그림을 그릴수도 있고, 수첩기능을 할 수도 있고, 가계부도 쓸 수 있다고, 그 컴퓨터의 원 소유자는 나만 만나면 컴퓨터 자랑을 그렇게 했었다. 그래서 그가 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더 좋은 컴퓨터를 사겠다고 했을 때, 내가 냉큼 사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깨끗하게 보존된 매뉴얼도 읽어보고, 서점에서 사온 컴퓨터 책도 읽어 보았다. 역시 감감했다. 그토록 소중하게 사용되던 물건이 주인을 잘못 만난 것 같았다. ‘그래 컴퓨터는 임자 잘못 만나면 깡통이다.’ 그러면서 며칠동안을 그 애물단지를 쳐다만 보면서 지내던 어느 날, 내 머리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컴퓨터로 일기를 쓰자.’ 난 소문난 악필이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종이며 노트에 써놓는 내 비밀스러운 일기를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또 학창시절부터 써 오던 일기며 비망록의 부피가 이젠 만만치 않은 수준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새 파일에 'Diary-99'란 제목을 붙였다. 그러니까 내가 디지털로 일기를 적기 시작한 그 역사적인 해가 99년도였던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않아서 자판을 두드려 가면서 적는 일기는 맛이 남달랐다. 그래서 그해엔 유난히 많은 일기를 적었던 것 같다.

컴퓨터로 일기를 적는 것에 재미가 붙자, 이젠 슬슬 욕심이 생겼다. 지난날에 적어 놓았던 글들, 세월이 지나면서 누렇게 변해가는 종이에 붙어 있는 예전에 쓴 글들을 컴퓨터로 옮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 어차피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내 글들도 이젠 디지털 화시킬 필요가 있어.’

그래서 'Write-81'부터 차근히 글들을 정리해 갔다.
‘81-03-01’

각자의 글 앞에는 이런 제목이 붙었다. 81년은 내가 대학에 입학한 날. 03-01은 내가 입학식을 한 날이다. 그래서 그 제목 밑의 글은 내가 입학식을 한 그날의 느낌을 적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노트와 종이를 뒤져보니 참 양이 많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페이지가 넘는 글들을 적은 날도 있었다.

젊은 날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글들을 적도록 하였을까? 하나 하나의 글을 옮기면서 단지 눈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내 젊은 날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참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젊은 시간에 내가 그토록 한 시각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감동하며 살려고 애썻던 것이 새록새록 느껴져 왔다.

그렇게 새로운 날들의 일기를 적고, 또 시간이 날 때마다 과거의 글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몇 년간에 걸쳐서 계속했다. 그리고 오래된 종이에 남겨진 젊은 날의 기록들을 컴퓨터 파일에 옮기고 나선 추억이 물든 그 종이일기장을 한 장씩 버려나갔다. 그렇게 과거는 지나보내고, 나는 과거의 추억만을 가진 채, 앞을 향해서만 달려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

나의 일기는 늘어났고, 컴퓨터는 발전을 계속했다. 내 컴퓨터는 386. 486을 거쳐 어느 듯 윈도우가 위용을 자랑하는 팬티엄으로 바뀌었다. 매번 새로운 컴퓨터를 살 때마다 나는 빠짐없이 한 가지 사양을 추가할 것을 요구했었다. ‘3.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 외에 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도 같이 깔아주세요.’라는 요구였다.

왠지 나는 예전에 적었던 글들을 하드에 저장시키기가 싫었다. 3.5인치 프로피에 옮겨놓기도 싫었다. 예전 플로피 디스크로 부팅을 하던 그 시절, 서툰 타자실력으로 한줄 두줄 적어가던 그 추억이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새로이 쓰는 글들은 나도 이제 하드에 저장하기 시작했지만 과거의 글들은 여전히 몇 장의 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소중한 플로피 디스켓이 작동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동안 바쁜 세상사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옮길 때마다 잊지 않고 가지고 다니던 플로피 디스크를, 새로 산 신형컴퓨터에 억지로 부탁해서 만든 5인치 드라이브에 넣었을 때 인식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나온 것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동안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예전의 플로피 디스크를 한동안 열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어본 기억이 벌써 몇 해나 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디스크 복사도 전혀 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전자상가마다 다니며 디스크 복구전문가를 찾아다녔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뿐이었다.

나는 그 후에도 열어보지도 못하는 그 플로피를 몇 해 더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몇 핸가 지난 후 결국엔 버려 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꼼꼼히 챙겨왔던 과거의 추억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내 과거의 삶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뜨거운 내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지만, 그 삶의 순간마다에 느끼고 감동했던 그 미세했던 기록들은 이젠 영원히 잊혀져버린 것이다.

하긴 잊혀져 가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씩 버려가는 것이 삶이다. 그래 이젠 내 지난 시절을 흘러가는 세월 속으로 사라져가게 놓아두자. 그리고 그 빈 자리에 눈앞에 다가오는 새로운 날들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새로이 닥쳐오는 순간들을 다시금 활력과 에너지로 가득 채우자.

가슴 저미는 감동은 과거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순간들을 그렇게 사랑하며 살았던 것처럼, 오늘 다시 나에게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찾아오는 새로운 날들을 또다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뿐인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