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지식인 이어령 대중에 평생 아부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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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지식인 이어령 대중에 평생 아부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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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며칠 전 이어령 선생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낸 뒤 많은 시청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저에게 직접 의견을 전해준 분이 적지 않고,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풍부한 내용의 댓글도 모두 살펴봤다. 오늘 다시 밝히지만, 어쩌면 이어령은 한국사회 풍토에 딱 들어맞는 지식인이다. 한국사회가 어떤가? 학계도 그렇고 문화계와 언론계 모두 사람이나 저작물 등을 걸러내는 시스템, 엄격한 평가 작업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 법무장관 조국 같은 날탕이 어느 날 갑자기 서울대 교수에 떡하니 옮겨 앉고, 머리가 빈 폴리페서가 TV에 얼굴을 비쳤다는 이유로 석학으로 행세 한다. 어쩌면, 어쩌면 이어령은 화려한 언변이 지금까지 통해왔던 밑천이었을 것이다. 이 방송은 그런 차원의 점검인데, 고백하지만, 여러분이 쓰셨던 댓글 중에 저로선 참 가슴 아픈 지적이 없지 않았다.

90세가 다 되고, 암투병 중인 분을 그렇게 묵사발로 만드는 게 어디 예의냐? 그건 노인학대란 댓글까지 봤다. 물론 제 방송에 동의해서 좋아요를 누른 분이 99%에 달하지만, 그런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송구스럽다. 단 그게 제 본뜻은 아니라는 걸 밝히는데, 자제에 이어령 선생 비판의 논점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 제가 중앙일보 재직 시절 간혹 이어령 선생과 이러저런 얘길 나누곤 했는데, 그 중 기억나는 것이 그분이 들려줬던 이화여대 김활란 전 총장 얘기였다. 이런 얘기였다. 보통 김옥길 총장, 즉 김동길 교수의 누님을 가리켜 참으로 통 크고 멋진 여성계 리더이고 여걸이라고들 하지만, 김활란이야말로 통이 큰 여걸이었다. 김활란과 김옥길 두 분을 다 아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자기에게 말한다는 말을 저에게 전해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자기가 경기고 국어교사로 있다가 이화여대 교수로 간 것도 김활란의 적극 지원해준 덕이란 것이다.

이어령이 재주는 많을지 몰라도 재승박덕이라서 이화여대로 데려오면 학교가 시끄럽고 좋을 게 없다고 모두가 반대할 때 김활란이 그건 아니라고 해서 자신을 이끌어줬다는 말인데, 오늘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다. 여기서 물어보자. 그런 여걸 김활란을 이화여대 학생들이 친일파라면서 동상을 끌어내리고 난리를 치며 공격할 때 이어령은 과연 무얼했느냐? 사회 원로로 썩 나서서 “여러분, 김활란이 없으면 여성교육 1번지 이화여대가 없었다”고 왜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어디 이화여대뿐이냐? 연세대나 고려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세대는 백낙준 전 총장을 친일파라고 공격하고, 고려대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세운 그 중요한 인촌 김성수 동상을 친일파라며 끌어내리는 미친 짓을 할 때도 이어령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을 꽉 닫고만 산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위선자에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은 그 학교 출신들조차 민주동문 어쩌구를 만들어 그런 황당한 짓거리에 동조하고 난리블루스를 출 때 이어령을 포함한 그 어떤 원로가 그들을 향해 준열하게 꾸짖었던가? 오늘 진실을 말하자. 대한민국이 이렇게 위험해진 것은, 즉 386주사파의 손아귀에 굴러떨어진 것은 못난 대학생들이 북한 김일성의 노골적인 지시와 전략에 동조해 친일파 척결 타령을 한 결과다. 더 중요한 것은 그때 그건 아닌 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어령 등 회색분자 지식인, 쓴 말을 하지 않는 원로들의 직무유기가 더욱 더 안타까울 뿐이다.

내친 김에 하나 더 하자. 지난번 방송에서 나는 이어령의 출세작인 1960년대 에세이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가 실은 요즘 말로 헬조선 타령의 원조라고 말했는데 그건 엄연히 사실이다. 지금 그 책을 다시 읽어보시라. 진부한 한국풍토와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와 자기비판에 놀라실텐데 수준도 유치찬란하다. 미국인들은 사탕을 먹을 때 혀로 빨아서 느긋하게 먹는데, 한국인들은 으석으석 깨물어 먹는다. 우린 성격이 조급하고 거칠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식의 비판이었다. 그래서 우리 역사는 "운명애와 순응의 슬픈 풍속"이라는 조롱을 이어령은 반복했다.

아무리 봐도 이어령에게 역사와 문명에 대한 통찰력은 없다. 그런 이어령의 한계를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해보는 것도 훌륭하다. 왜? 박정희도 혁명 초기 한국사를 "퇴영과 조잡과 침체의 역사"로 규정했다. 현실에 만족 못한 건 이어령과 박정희가 똑같은데, 박정희는 달랐다. 현실개탄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가난하지 아니한 나라를 만들자고 작심했고, 끝내 역사를 온통 바꿔놓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이어령이 투덜대면서 얼치기 지식인 행세를 해왔다면, 박정희는 현실과 역사를 온통 바꿔놓은 진정 위대한 정치인이다. 누가 뭐래도 저만의 이 판단은 변함이 없다.

자 문제가 또 있다. 그렇게 민족 비하를 거듭하던 이어령은 훗날 우리나라가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엉뚱한 짓을 다시 했다. 오늘날 우리의 뒤틀린 반일정서에 부채질을 한 것이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등장하는 한국역사 비하와 180도로 또 달라진 나머지 '얼치기 민족주의' 시각에 편승한 것이다. 그 증거가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란 책이었다. 웃긴다. 일본의 문화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는 비판이었는데, 실은 그것 역시 전혀 근거 없는 일본론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인이라는데, 바로 그런 잘못된 인식을 한국인에게 심어준 꼴이다. 그 또한 이어령의 한계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다시 묻는다. 지난 수십년 한일 파국의 이 국면에서. 그리고 1년 반 전 문재인이가 반일운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때 이어령이 무얼했던가. 무언가 원로다운 발언을 했던가? 그밖에 꼭 한일문제가 아니라도 사회 갈등과 현안을 놓고 그가 중심 잡는 역할을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없었다.

이어령은 평생 양지를 따라다녔고, 손에 흙을 묻혀본 일이 없다는 비판은 그래서 한 것이다. 그런 태도를 얼마 전 원로 배우 최불암이 세상 걱정을 한 것과 비교해보시라. 어떠신가? 답은 충분할 것이다. 오늘 방송 말미 이어령 선생에게 전해드린다. 부디 몸 잘 돌보시고 남으신 생애 잘 버텨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방송이란 것에 너무 서운해하실 필요는 없다. 이것도 선생이 대단하고 잘나셨으니까 저 같은 새까만 후배들이 찧고 까부는 것이라고 대범하게 넘겨주시길 바란다. 이어령을 딛고 일어설 책임이 우리에겐 있다.

※ 이 글은 10일 오후에 방송된 "겁쟁이 지식인 이어령 대중에 평생 아부만 했다"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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