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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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벤치에 않아서 세상을 내려다 보던 기억

어릴적 내가 살던 아파트에 벤치가 하나 있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낮은 언덕에 있는 그 벤치엔 햇살이 잘 들었다. 주말 오후면 나는 겨드랑이에 책 한권을 끼고 어슬렁거리며 그 곳을 찾아가곤 했었다. 그곳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또 그 벤치에서 내려다보이는 방파제에서 철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좋았었다.

저 멀리에선 배들이 한가로이 바다를 거닐고 있었고, 새들은 하늘 가장자리를 빙빙 돌며 세월을 산책하고 있었다. 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곳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그곳에 내리는 오후의 햇살이 주는 따뜻함을 느끼는 것을 좋았었다. 그토록 다사롭고 포근한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 것일까. 그곳에서 이사를 하고, 삶의 번잡함에 시달리게 되면서 어느 듯 그곳은 나의 기억에서 차츰 멀어진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포근하기만 한 것이 아니란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이사를 하고도 그 벤치를 가끔씩 찾아가면서 그 햇살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곤 했지만, 그 햇살이 예전의 그 햇살과 같지 않다는 것을 차츰 느끼게 되었다. 삶은 지난날을 되돌아보지 앞으로만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또 빛바랜 사진을 재현한다고 옛날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차츰 그 벤치를 찾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어렵고 힘이 들 때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을 심리적 퇴행이라고 한다고 어떤 책들이 알려주었을 즈음에, 나는 그곳 바닷가에서 먼 곳으로 떠나와 있었다. 내가 누려왔던 그 평화와 다른 삶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야 할 때, 가끔 바닷가 그 벤치가 생각났다. 그럴 때. 무언가가 간절히 그리워질 때 나는 이제는 더 이상 그리워함을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그리고 이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리고 이젠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을 때 또다시 그 벤치의 기억이 떠올랐다. 왜인지 나에겐 이젠 낡고 색이 바랬을, 어쩌면 허물어지고 치워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그 자그만 벤치가 평안과 휴식의 의미로 남아있다. 많은 것들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또 한때는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많은 것들이 시간의 장막 뒤에 숨겨져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되어질 때, 그 벤치는 아직도 나에게 포근함과 따스함의 의미로 남아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아하기만 했었고. 후에는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잊어버리려 노력했던 그 곳을 이젠 다시 소중한 의미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이루어 놓은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제 한동안 인생이란 것의 한가운데를 마음껏 헤집고 다닌 후에야 다시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이 책 속의 세상을 거닐고, 바닷가를 기울이는 새들과 대화를 하는 그 순간순간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인생은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분주히 하루하루의 길을 걸어가다가도 가끔씩은 쉬어갈 벤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언제야 안식이 다가올지 알 수 없는 나그네에게 분주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베풀어주는 포근한 벤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따사로운 벤치를 가진 삶이 어디 그리 쉽기만 한 것일까. 나에게 남겨진 희미한 벤치의 자취를 이젠 더 이상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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