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린’, 정조 암살 팩트와 픽션 넘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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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린’, 정조 암살 팩트와 픽션 넘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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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각도에서 정조를 보는 안목도 길러

▲ 최성현 작가, 이재규 감독, 초이스컷 픽쳐스 제작의 '역린' 포스터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 제작 초이스컷 픽쳐스)이 지난 4월 30일 개봉되어 6일만인 5월 5일, 누적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하고 있으며, 연휴 마지막날인 석가탄일에도 관객들의 호응을 받아 더욱 관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역린(逆鱗)’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이를 건드리면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며, 왕의 노여움을 비유하는데, 영화 「역린」은 최성현 작가가 동명의 소설(교룡으로 지다, 용의 분노)을 시나리오로 해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 외롭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개혁군주로 알려진 22대왕 정조(李祘,1752~1800년) 1년 7월 28일, 하루동안 왕을 암살하려고 일어난 감춰졌던 역모사건(일명 ‘정유역변(丁酉逆變)을 조명하고 있다.

영화는 이날 새벽 3시(寅時)부터 8시 30분(辰時)까지 정조(현빈)를 보좌하는 내시 상책(정재영), 정조의 경호를 맡은 홍국영(박성웅), 그리고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김성령), 영조의 비 정순왕후(한지민), 살수(조정석), 광백(조재현) 그리고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 등이 등장하면서 긴박감있게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넘나들며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에 영화나 TV드라마에서 이서진, 조성하, 이민우, 조경환 등이 정조 배역을 맡아 왔으며, 25세에 등극한 젊은 왕 정조역에 현빈을 등장시켜 건강성과 담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록에 의하면, 이날 정조는 파조(罷朝) 후 경희궁 내의 침소인 존현각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던 중 발자국 소리가 보장문 동쪽에서 회랑 위로 들려왔고, 기와 조각을 던지고 모래를 만지는 소리에 놀라 내시와 하인들을 불러 수색했으며, 금위대장 홍국영까지 나섰으나 범인은 종적을 감췄는데, 열흘이 지난 8월 11일 밤에 두 번째 자객이 침입했고, 수포군에 전흥문이 붙잡히자 전의 자객 호위무관 강용휘까지 잡아 정조에 의해 아버지 홍술해가 유배당하고 홍인한, 정후겸 등이 사사(賜死)된 것에 앙심을 품은 홍상범이 사주한 것이 밝혀지고 끝내는 홍계능(나경언의 상소를 통해 사도세자를 죽게 한 홍계희의 손자)의 역모로 이복동생 은전군의 죽음에 이르기 된다.

정조에 대하여는 ‘영원한 제국’, ‘이산’, ‘8일’ 등 영화와 드라마가 등장하였고, 그의 암살 배경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 근원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당쟁(黨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론이 득세한 상황에서 노회(老獪)한 영조(李衿,1824~1776년)가 아들 사도세자(李愃,후에 莊祖로 추종)를 권력의 경쟁자로 의식해 노론벽파를 등에 업고 생모인 영빈(暎嬪)의 종용으로 뒤주에 가두어 죽임으로 인하여 정조가 즉위하면서도 ‘역적지자 불위군왕(逆賊之子 不位君王:역적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을 내세워 암살에 시달렸으며, 즉위 후에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해 또다시 노론 등에 의한 암살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조선의 왕 중에서 우리에게 개혁의 군주로 알려지고 있지만, 군주열전(君主列傳)를 집필한 이한우(조선일보 기자)는 정조를 ‘불행과 불운의 학자 군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영․정조 르네상스라는 정체불명의 역사평가에 의해 개혁의 화신인 양 과도하게 높이 평가되고 있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어릴 때의 극한체험은 결국 공(公)보다 사(私)에 집착하도록 만들었고, 부성애(父性愛)의 결핍 등 유유부단했다고 혹평했다.

또한, 정조 자신이 세도정치의 문을 열었으나, 국가라는 공적기구를 자기화하지 못하고 사적기구를 설치해 공적 기구를 통제하려다 참담한 실패로 끝나는 폐단을 낳기도 했으며, 정조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성군의 선정(善政)이 아니라 퇴계, 율곡을 뛰어넘는 학식을 갖춘 인물이 정치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는 역설적(逆說的)인 사실이라고 강조했는데, 영화 「역린」에서는 그가 아버지의 원수와 같은 사적인 감정과 싸우는 사람이 아닌 부정부패와 권력의 탐욕이 만연한 세상과 맞서 싸우게 될 것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과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노회한 할아버지 영조와 노론의 김상로, 홍봉한, 홍계희 등의 위세와 모함에 휘말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정조로서는 세손(世孫)때부터 영조가 남긴 많은 해악(害惡)과 당쟁의 소용돌이를 몸소 겪으면서 즉위해 부친의 원한을 갚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으며, 등극 후 10년 이상 이로 인하여 역모와 반란에 시달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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