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관북리유적, 백제 왕궁지 시사하는 증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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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관북리유적, 백제 왕궁지 시사하는 증거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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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 지하 저온창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에서는 백제의 사비도읍기(A.D.538~660)의 왕궁지 및 중심관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백제유적(사적 제 428호)에 대한 10차 발굴조사에서 지하목곽창고 5기를 비롯하여 연화문와당 및 각종 토기류, 통일신라시대의 금속용기 및 불상 등 삼국시대를 비롯한 고대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고고자료 300여점을 발굴하였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82년부터 92년까지는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7차에 걸쳐 발굴한 바 있으며 이후 2001년까지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연차발굴이 진행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서 백제시대의 장방형 연지 및 대규모 공방유구, 와적기단건물지와 도로, 석축 등 다양한 백제시대의 생활유적인 확인된바 있다.

이번에 확인된 백제시대 지하창고는 장방형의 토광을 파낸 후 내부에 규격화된 목재를 이용하여 길이 4.5m, 너비 1.8m 깊이 1.5m 정도의 목곽을 만든 것으로 1호와 2호 목곽내에서 다량의 과일 (참외, 복숭아. 머루 등)의 씨앗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목곽창고에 다량의 과일이 보관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왕실의 주요행사나 제례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하고 있다.

^^^▲ 씨앗류^^^
과일을 보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 이외에 2기의 목곽창고와 1기의 석곽창고는 그 용도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곽의 구조나 유구의 깊이 (2m가량)를 보아 백제시대의 저온창고, 즉 오늘날의 냉장고 기능을 수행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러한 창고시설은 관북리 백제유적이 왕궁지였을 가능성을 시시해주는 증거이기도하다.

이 밖에도 통일신라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용기와 금동불상의 발견은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도 비중있는 건물이 설치되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부여지역의 중심지역으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유적에 대한 지도회의는 11월 23일 (화) 1시에 현장에서 개최되며 일반인을 위한 현장설명회는 24일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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