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10일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을 내놓지 못한 채 폐막했다. 겨우 의장성명만 발표됐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해와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치된 목소리보다는 다양하고 엇갈리는 의견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공동성명은 러시아를 꼭 집어서 말하지 않아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행위를 부인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와 압박에 전적으로 도의한 것도 아닌 상황이 벌어졌다.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이슈와 관련, 이견이 있었으며 우리는 이를 조화시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의장성명에서는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포함됐었으나 이번 뉴델리 정상회의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양국의 이런 입장이 의장 성명에 명기됐다. 이 같이 엇갈린 두 갈래 의견이 의장성명에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G20 회원국들은 9일(현지 시간) 성명에서 “유엔 헌장에 따라 모든 국가는 어느 국가의 영토 보전과 주권, 정치적 독립에 반해 영토 획득을 추구하기 위한 무력 사용이나 위협을 자제해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국가가 영토 보전과 주권,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다자체제 등 국제법의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너무나 원칙적인 문구만 삽입됐다.

그러나 2022년도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 성명은 “대부분의 회원국은 러시아에 의한 침략에 의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강력히 비난한다”는 문구를 담았었다.

이번에는 “침략이라는 단어는 빠졌고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라고 적는 데 그쳤다. 또 ”비난“의 단어도 사라졌다. 미국 주도의 압박이 후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선언을 두고 “전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지난해의 표현을 담지 못한 것은 의장국 인도가 전통적 우호국의 러시아를 배려한 면이 크며,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역시 미국 주도의 일방적 조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인도와의 연계 강화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선언 내용에 불만이 있어도 최종적으로 타협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위상을 보여준다.

공식 정상선언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G20 발족 이후 처음이다. 이번 ‘분열과 공동화’로 요약될 수 있는 G20회의였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아프리카의 55개국·지역이 가맹하는 아프리카연합(AU)의 G20 참여가 결정됐다. G20에서 신흥국·도상국의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발언력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확실했다.

AU의 가맹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G20의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앞으로 식량과 에너지 문제에서 국제 여론 만들기에 탄력이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중심의 G20은 앞으로 여러 사안에서 글로벌 사우스 측과 대립이나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그동안 글로벌 사우스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유엔이 한국은 공식으로 선진국으로 분류함으로써 글로벌 사우스의 한국이 이제는 ‘글로벌 노스’가 됐다. 그러나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국가로서 ‘글로벌 사우스의 시장’ 역시 ‘글로벌 노스 시장’을 상당히 웃돌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는 12일 사설에서 “일본은 오랜 세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지원해 양호한 관계를 쌓아왔다. 미국과 유럽, 개발도상국의 다리 역할로 G20의 기능 유지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노스의 대명사 미국, 일본, 유럽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다. 일본은 한미일의 결속을 외치면서도 경제적 이득, 즉 국익을 위해 사우스와 노스의 디리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일본은 과거에도 그런 외교적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은 더욱 더 미국우선주의를 외치면서 한미일 결속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한국을 압박해왔고, 이번에 어느 정도의 미국의 소원이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중국과 교역을 더욱 더 늘리면서 최대의 교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만 중국과의 관계가 자꾸 악화되는 현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정부가 중국과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움직임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제스처로서의 대중외교가 아니라 국익, 즉 경제적 이득 등을 십군 고려 지속적인 대중외교가 펼쳐져야 하겠다.

미국이나 일본에 너무나 많이 의존하는 한국 외교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각국도생(各國圖生)’의 치열한 국제사회의 현실에서 지금은 치열할 정도로 한국 국익을 위한 중층적 외교 전략을 구사할 때이다.

이번 뉴델리 G20 정상회의의 주제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가족, 하나의 미래”이다. 그러나 오죽하면 주제와 다른 현실이기에 이 같은 주제를 내걸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로만 보면, “하나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다. 다자주의와 다층적 외교의 절실함이 주제에서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