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3일 러시아 극동지역에 위치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전 세계에 보란 듯이 정상회담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의 모든 결정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겠다”고 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우주기지에서의 회담 자체가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 같이 북-러 정상회담으로 관계를 보다 더 돈독히 하는 양국에 대해 한국 윤석열 정부는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게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논조이다. 신문은 14일 기사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제공하면 한국의 안보환경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절대적으로 의존도를 보여 왔던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모습을 보는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 양자관계를 중시하면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북-러와는 신중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미일의 결속” 강화에 따른 “북-중-러의 결속” 역시 필요성이 부각되는 만큼 중국이 마냥 미국 눈치만을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에서 “모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해 책임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이나 미국의 편에 설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북한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북중러 3국의 결속 강화로 이어지면서 한미일 결속에 맞대응할 가능서이 훨씬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보리 결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 외에 무기 등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한미일 결속이 러시아와 북한의 결속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냉정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러시아의 무기 사정이 핍박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돌파구 마련을 위한 북한의 재래식 무기 등 다양한 무기거래의 필요성이커지고 있는 러시아와, 정찰위성을 두 번 쏘았으나 모두 실패를 거듭한 북한의 첨단 기술의 필요성이 맞물려, 양국의 밀착은 현재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1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맞춰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며, 북-러 접근에 쐐기를 박고 나섰다.

장호진 외교부 제 1차관은 12일 TV뉴스 프로그램에서 “(러시아가) 선을 넘어 북한과 협력을 하면, 한-러 관계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러시아를 압박하는 모양새이다.

보수성향의 석간 문화일보는 13일자 사설에서 “북-러 간 무기거래가 이뤄질 경우 준적국(準敵國)으로 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북-러 양국에 영향력을 가진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대(對)러시아, 대(對)중국 자세는 역풍(逆風)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탄약 등 무기가 제공된다면 자칫 우크라이나에서 한국과 북한의 무기가 전장에서 교전을 하는 양상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우크라이나 지원(무기 등을 포함)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을 북중러가 파고들 것이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가장 중시한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13일의 기자 회견에서 “북러 관계에 관련된 것”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일정 거리를 두고 있다는 중국의 입장을 에둘러 말했다. 속으로 중국은 북한의 배후로 영향력을 과시해 온 만큼 불쾌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 취임 후 첫 외유가 된 2018년 3월 베이징 방문 때 “나의 첫 외국 방문이 중국의 수도가 된 것은 당연하다”는 발언을 했다. 북한이 코로나19 사태로 국경 관리를 강화한 2020년 1월까지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은 4차례에 이른 반면 방러는 1차례뿐이었다.

김정은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외유지로 러시아를 택한 것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북-러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정세가 한층 긴장되면 한미일 안보면에서의 공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경계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관계가 반비례가 아니라 ‘비례적인 갈등 고조’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갈등 고조가 지속적으로 유지 혹은 상승한다면, 당초 “힘에 의한 평화”는 예기치 않은 “힘에 의한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대미 관계도 고려해, “책임 있는 대국”(외교부)으로서, 북-러와 하나의 몸으로 보이는 것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베이징 주재 외교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해 김정은 등 북한 지도자를 방중(訪中)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방러에는 관계 강화가 진행되는 한미일 3국에 맞서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김정은은 8월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심각한 사태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게 한미일 결속은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국이 원하는 내용이 다를 때는 그 차이를 이용해 유리하게 외교를 진행할 수 있지만, 하나로 뭉치면 꽉 막힐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킬 필요가 요구됐을 것이다. 인도나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경우 다동맹(多同盟, multialignement)정책을 추구하는 것도 이 같은 일부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을 경우의 폐해를 줄이자는 전략이다.

중국은 한미일 정상회담에 대해 중국 내정에 간섭했다며 경계감을 표시했지만, 북한에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비쳤을 것이다.

김정은은 2018~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네 차례나 만났고,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다. 당시 중국을 이용해 러시아를 자극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북-중-러 3국 관계 강화로 연결하려 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의 전형적인 줄타기 외교(tightrope diplomacy)가 작동하고 있다.

북한에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계속하고 이는 러시아에 공급할 포탄이 다량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스커드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수송으로 이용하는 북-러 간 철로는 노후화가 심해 ‘물리적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북한이 요구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등 최첨단 기술을 러시아가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거부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라 할지라도 선을 넘어 제공한 후 과연 북한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볼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도 문턱이 꽤나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군사 정찰위성의 해상도 향상 기술이나 재래식 무기 부품 등을 제공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러시아)의 드미트리 트레닌은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한 주된 이유는 침략 중인 우크라이나의 배후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러 양국에는 현재 미국이라는 ‘공통의 지정학적 적’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북한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유엔 결의 투표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푸틴은 이 같은 북한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대가로 러시아로부터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북한과 접근함으로써 현실적인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봤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는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침공 이후 러시아의 군산 복합체는 무기와 탄약을 여러 차례 증산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서의 탄약 소비는 어마어마한 수량이다.

러시아는 현재 무기나 탄약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 무기나 탄약을 구입하려고 할 것이며, 당연히 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중국의 시각에서 볼 때, 북한은 중요한 전략적 완충지대이고, 러시아는 최대의 전략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는 중국이 러시아 북한과 연계하는 북중러와 한미일 두 가지 틀이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

한미일에는 미국이라는 분명한 보스(boss)가 있지만 북중러에는 보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스가 없는 북중러는 정세 판단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 예기치 않은 충돌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때에는 통제 역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중국 대두에 맞서기 위한 한미일 간 협력 강화는 분명 북중러의 전략적 접근을 유발시키고 있다. 희망적인 미래 한국을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자세와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