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워커(Gen.Walton H. Walker)의 대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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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워커(Gen.Walton H. Walker)의 대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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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장군은 "나는 한국을 죽음으로 지키기 위해 왔다"는 선언과 함께 "결사항전(stand or die)"을 최후명령으로 내린다.
워커장군은 낙동강 라인(워커라인)을 구축하고 진지전과 기동전을 결합한 낙동강 전선의 승리는 미군이 아시아 공산주의와 싸워이긴 최초이자 최후의 대승리였던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폰소 도데는 '꼬마철학자',  '마지막 수업', '퀴퀴니앙의 신부'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쓴 작품이 공연될 때 그는 언제나 아무도 모르게 극장에 갔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느끼는 한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하봉규 부경대 명예교수

일 년 전 '워커 장군 진혼제'(2022년 5월 17일/부경대학교 워커하우스)를 참관했던 박창화 감독(극단 창)으로부터 워커 장군 연극을 제작하고 싶다는 의견을 받고서 정말 기뻤다. 왜냐하면 영화각본 '워커스토리'를 작성한 이래 영화나 다큐 뿐 아니라 연극, 만화, 오페라(뮤지컬) 등 종합적 문화컨텐츠로 확산되기를 기원했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연극 프로젝트는 작년 정권교체가 되고 국가보훈처로부터 지원을 받게 됐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자행된 종북좌파의 기나긴 어두운 그림자가 마침내 비켜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문산당(문재인+공산당)과 코로나에도 워커 장군 기념사업에 매달린 것은 '도전과 응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6.25의 또 다른 이름은 잊혀진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선 안되는 전쟁이다. 왜냐하면 6.25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었으나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한국은 기적의 나라이다. 절대빈곤과 문맹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건국에 뒤이은 참혹한 전쟁을 겪었으나 불과 한세대만(30년)에 산업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오천년 역사상 가장 비극적 시대를 살았던 불행한 세대가 있었다. 

흔히 식민시대와 두 번에 걸친 전쟁(태평양전쟁, 6.25)을 겪은 세대이다. 대표적으로 이병철(1910), 정주영(1914), 박정희(1917), 신격호(1921), 최형섭(1921), 박태준(1927), 장기려(1911) 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식민시대에 태어나 수모를 당했고, 젊은 시절 두 번에 걸친 대전쟁을 겪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게으름과 거짓을 국민성으로 하는 조선인이 아니라 결사와 애국을 가진 새로운 인종이었다. 이들의 분투는 20세기의 경이(한강의 기적)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인으로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경제기적을 만드는데 워커장군은 하나의 초석이었다. 6.25 개전 초 불과 한 달여 만에 한국은 국토의 80%를 적에게 유린당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워커장군은 부하 장병들에게 "나는 한국을 죽음으로 지키기 위해 왔다"는 선언과 함께 "결사항전(stand or die)"을 최후명령으로 내린다. 워커장군은 남북 190km, 동서 90km 에 이르는 낙동강 라인(워커라인)을 구축하고 진지전(국군, 미육군)과 기동전(미공군, 해병대)을 결합했다. 결국 그의 대승리로 한국은 자유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워커 장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 속에 백선엽 장군, 박정희 소령 등 국군과 함께 전선을 지켜 한미동맹의 초석이 된다. 낙동강 전선의 승리는 미군이 아시아 공산주의와 싸워이긴 최초이자 최후의 대승리였던 것이다. 워커 장군과 함께 싸웠던 국군들은 20년 후 월남전에서 미군과 함께 싸웠으며, 1970년대 이후엔 중동의 열사를 누빈다. '한강의 기적'은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전 참전으로 시작된 드라마였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내전으로 불리우는 한국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것은 역사와 영웅들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영웅이 위대한 것은 역사를 압축하고 미래의 지침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워커장군은 한국을 구한 남자, 구세주로 불리운다. 우리가 워커장군에 감사하고 기려야 하는 연유이다. 

연극 워커가 끝났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3층을 메운 객석에는 눈시울을 적시는 관객들의 진한 감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고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보아야 합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원작가로 행복하기 그지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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