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봄, 우리 집 뜰에 밝은 햇살이 따뜻하게 나리고,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버드나무 가지에 파란 새순이 돋을 때면 할머니는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조용히 하시곤 했다.
때로는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나서는,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셨다.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 알수 없는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동요처럼 무척 쉬운 노래였다. 할머니는 무슨말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나를 돌아보고 씩 웃기도 하셨다.
그게 무슨 뜻인지 그냥 한번 물어보기만 하면 단번에 그뜻을 알수 있었을 텐데 왜 한번도 그 노래의 뜻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는지, 왜 할머니는 한번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나에게 그 노래에 관해 설명해 주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
나는 지금도 그 뜻모를 가사를 외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해져가는 어린시절의 기억중에서도, 유독 생생하게 단어 한마디 한다디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아도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자연히 그 뜻을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봄이 왔네’ 그 노랫말의 뜻은 바로 이것이었다. ‘봄이 왔네. 봄이 왔네. 여기에 왔네...’ 할머니가 부르시던 노래의 가사는 그런 것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그 노래가 배어있다. 할머니는 그 일본노래를 일본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이 가끔씩 그렇게 하는 것처럼 고개를 내리누르듯이 목에 힘을 주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면서 부르셨다.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할머니의 인상적인 모습중 하나이다. 그래 지금 할머니는 나에게 그런 모습을 남기시며 살아오셨다. 할머니께서 그 노래를 부르실 때마다 봄은 그렇게 찬란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다가오곤 했었다.
봄이 왔다. 다시 봄은 이곳에 그 황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어린 나를 앞에 두고 그 노래를 부르시곤 하시던 할머니는 이제 많이 늙으셨다. 88세. 적지 않은 연세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정정하시다. 자주 어지러워하시고, 근력이 많이 약해지고, 눈이 침침하지만 나이에 비하면 건강하신 편이다. 밥도 직접 지으시고, 집안 일도 하시고, 마당의 풀 정리도 혼자서 다 하신다.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이, 할머니가 아직은 건강하시다는 것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그러나 그 건강하다는 기준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일 뿐이다. 할머니를 뵙는 우리의 눈길은 그렇지가 않다. '하루라도 더...’ 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우리는 할머니께서 하루라도 더 이곳에 머물러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봄은 가버린다. 매년 그렇게 봄을 노래 부르셨던 할머니의 청춘은 어느듯 꿈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예감하시듯 할머니는 그렇게 예사롭지 않게 - 할머니는 그 삶의 연륜을 일제시대를 지내면서 더해오셨고, 실제로 몇 년간은 일본에서 살기도 하셨지만 평소에는 거의 일본말을 쓰지 않으셨다 - 봄이 온 것에 대해 노래를 부르셨던 것 같다.
일장춘몽. 하루밤의 아름다운 꿈결이란 말처럼, 봄은 꽉 쥔 주먹의 손가락 틈새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어느 듯 그렇게 사그라져 버린다. 할머니의 젊음도 그렇듯이.
나의 인생도 언젠가는 그러할 것이다.
봄은 다시 여기에 와 있다. 나는 오늘 내 주위에 머무르는 화창한 봄날을 보면서, 정원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의 오늘 하루를 무엇으로 채워갈 것인가.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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