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역사는 5.18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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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7.04.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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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실체는 북한특수군 600명과 이 작전에 이용된 사회불만세력

▲ ⓒ뉴스타운

[5.18 분석 최종보고서 에필로그]

북한 대좌출신의 거물간첩이요, 북한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던 ‘공화국영웅’ 김용규 선생이 1976년 9월, 동료 간첩 2명을 사살하고 귀순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소리 없는 전쟁’(1999, 도서출판 원민)의 표지말에서 “남한의 크고 작은 모든 소요에는 반드시 북한의 배후조종이 있다. 그것은 의심할 수도 없고 의심해서도 안 되는 필연이다”라는 매우 귀중한 증언을 해주었습니다.  

같은 책에서 그는 4⋅19도 북한이 조종한 것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김용규 말고도 ‘이석’이라는 간첩 역시 4⋅19를 자기가 배후조종하였다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이명영 교수(서울대 졸업, 정치학 박사, 중앙일보 논설위원, 성균관대 교수)는 그의 저서 󰡔통일의 조건ᐨ발상의 전환을 위하여󰡕(1989년 11월, 종로서적)라는 저서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1972년 1월, 간첩 이석과 그의 공작망이 국군보안사령부에 의해 검거되자 그는 수사관 앞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4⋅19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이명영 교수에 의하면 간첩 이석은 남로당 경북도당 간부로 1946년 10월, 대구 폭동사건에 간여했고, 중앙당 간부로 자리를 옮긴 후 체포, 투옥됐다가 6⋅25전쟁 때 구출되어 인민군을 따라 평양으로 월북했습니다. 1955년 4월, 그는 다시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쪽으로 상륙, 경남 마산에 아지트를 구축하여 2개의 친목계 모임을 결성, 40명을 조직, 의식화 작업을 시켰습니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자 그는 이 40명으로 하여금 마산 사태에 적극 개입하여 사태를 격화시키는 데 앞장서게 했습니다. 1968년 일망타진된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은 이 40명의 조직을 확대한 것이었습니다. 

5⋅18광주사건은 수많은 ‘이석’과 북으로부터 파견된 특수군 600명이 또 다른 수백 명의 광주 부나비들을 도구로 이용하여 감히 계엄군을 한껏 농락하고 대한민국을 능욕한 특수작전이었습니다. 이들 북한군은 계엄군과 직접 싸우기 위해 내려온 것이 아니라 광주 시민들을 선동하여 남남전쟁을 유도하고, 이런 전쟁을 전국으로 확대함으로써 남침의 구실을 마련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전향한 거물간첩 김용규의 적극적인 당부의 말이 뒷받침하듯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은 한결같이 “남조선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반동’, ‘인민과 미제’ 사이에 벌어진 대결”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발생한 남한의 ‘민주 시위’를 보셨을 것입니다. 반미, 반파쇼, 반재벌로 일관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1948년 제주도에서 대한민국에 선전포고를 했던 제주도 무장폭력배들을 민주화 열사로, 1980년 정부의 무기고를 털어 정부군을 향해 쏘았던 북한 특수군에 부역한 20대 양아치급 부나비들을 민주화 열사로 대우해 온 것만 해도 피가 끓을 일인데 이런 기현상이 영원히 굳어지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서야 어디 서로 얼굴을 들고 ‘나는 애국자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광주인들 주도의 시위대가 광주에 존재했다는 것을 막연한 사실로 믿었습니다. 1981년의 대법원 판결과 1997년의 대법원 판결도 광주인들 주도의 시위대가 광주에 존재했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각기 틀리게 내렸습니다. 2010년부터 저는 광주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참전하여 광주 작전을 기획ᐨ연출ᐨ기록하고 돌아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주에는 광주인들 주도의 시위대가 존재했고, 이와는 별도로 북한특수군 600명의 작전이 병행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놓고 ‘북한특수군 개입론’이라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9월 1일, 제가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북한군 600명 개입설’이 아니라 “5⋅18은 북한군 600명 주도의 대한민국 전복작전”이었다는 것과 광주인들이 구성한 시위대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시위대의 대장도 없고 시위대의 실체도 없었습니다. 5⋅18의 실체는 정확히 북한특수군 600명과 이 작전에 이용된 사회불만세력입니다. 결론적으로 광주에는 1980년 5월 18일 이후 민주화운동도 없었고 민주화 시위대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9월 1일 이전까지의 결론을 완전히 뒤엎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전이 실패하자 북한은 또 남한에서 부화뇌동하는 부나비들을 통해 미국과 남한 당국을 모략하고 적화통일을 열망하게 만드는 소설을 만들어 성가 높은 황석영 이름으로 ‘5⋅18’ 역사책을 발간케 해서, 실패한 북한의 작전을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하고, 광주인들을 국가의 성골집단으로 등극시켜 온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지금 현재 반수 이상의 국민들이 “5⋅18은 폭동이다. 민주화운동이 아니다”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정서는 계속 확장돼 가고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논리와 팩트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중요한 자산이 광주 사람들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5⋅18시절에 나돌던 유언비어들과 ‘넘어 넘어’에 실려 있는 북한의 속삭임들뿐입니다. 국민을 속이기 위해 발간된 ‘넘어 넘어’에는 허위로 구성된 모략들만 있고, 품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5⋅18분석 최종보고서’에는 논리와 팩트들이 가득 차있습니다. 광주 사람들이 이기느냐 지느냐는 오직 ‘5⋅18분석 최종보고서’를 뛰어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5⋅18광주 사람들에 부탁합니다. 더 이상 ‘조사천ᐨ조천호 부자’ 사진 내걸고 눈물에 호소하는 일 그만 두십시오. 더 이상 야당 정치인들과 정부관계자들을 끌어들여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파워게임하지 마십시오. 다른 지역 국민들에 신사도를 보여주십시오. 떼로 몰려다니며 폭력행사를 하는 등 비정상적이고 부적절한 게임하지 말고 논리와 팩트를 가지고 5⋅18을 신사적인 방법, 민주적인 방법으로 지켜보려는 자세라도 한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제 당신들의 사기놀음에는 조종이 울렸습니다. 국가와 국민에 깊이 사죄하는 길만이 용서받는 길이며 국민 통합에 이르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알아야 합니다. 북괴와 좌익들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농락해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5⋅18 광주 사람들을 포함한 영악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얼마나 어수룩하게 당해 왔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적을 경계하는 국민적 안목과 경계하는 마음의 수위를 한층 높여야만 우리는 생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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