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제12탄]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 특별취재팀
  • 승인 2016.07.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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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북한군 침투 증언까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인가

광주 5.18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주장과 “아니다 왜곡이다”는 주장이 결국 법정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이 문제는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사실 이라면 북한은 남한을 침략한 침략국으로 UN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

반대로 사실이 아니라면 5.18 단체들이 말하는 역사 왜곡이다. 그런데 <뉴스타운>이 그동안 입수한 다양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5.18 당시 현장에는 광주도, 호남 사람도 아닌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수백 명이 있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뉴스타운>과 시스템클럽은 477명이나 찾아 내 공개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시각장애인이 아니라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들이다. 그동안 이들을 찾고자 방송은 물론 광주시까지 나서서 시청로비 및 지하철 등 대중의 발길이 잦은 곳에서 전시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나요”하고 나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것도 현재로서는 알리바이가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5.18 단체 등은 “침투했다”는 모든 주장과 증언까지도 무조건 거짓으로 몰아 버린다.

이러다 보니 이들의 실체를 밝히는 것보다 분쟁만 일으킬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이제 5.18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이들이 북한군인지, 중국군인지, 연∙고대생인지, 아니면 우주에서 광주를 구하러 날아 온 전사들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편집자주>

침투 증언, 증거 부정하려면 공개된 477명 광수 누구인지부터 밝혀야

액수는 둘째 치고 지금 <뉴스타운>과 시스템클럽이 공개한 사진 속 인물들이나 직계가족들이 나타나면 적어도 큰 액수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1991년 1월 광주 민주화 운동 보상금 2억원을 수령한 후 월북한 윤기권과 비교해 보면 이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방송과 광주시, 5.18 단체 <뉴스타운>까지 나서서 찾고 있지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드러난 5.18 유공자들의 활약상과 비교해도 이들은 나타나는 순간 거액의 보상금과 함께 ‘5.18 영웅’ 대접까지 받을 수 있다. 5.18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5.18 유공자가 된 점에 미루어 봐도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전면에 나섰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북한군인지, 광주사람인지, 호남사람들인지 밝혀달라는데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이 5.18 특별법 개정안으로 <뉴스타운>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은 또 다른 저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뉴스타운>이 추측컨대 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이 과연 광주 5.18의 장황한 역사적 실체를 알고나 개정안에 서명을 한 것인지 의심 스럽다. 적어도 <뉴스타운>과 지만원 박사가 광주 5.18과 관련 어떤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이건 국민의 알권리이자 국가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북한군 침투’주장을 왜곡으로 인정할 만한 정도의 해명도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라고 한다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옳고, 그것도 안 된다면 477명의 정체불명 5.18 영웅들이 누구인지는 밝혀야 하는 것이다. 앞뒤도 모르고 그저 <뉴스타운>과 지만원 박사 등 보수 논객들의 입을 법으로 강제할 속셈이라면 국민의당은 국민적 지탄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국민의당 38명 의원들은 지만원 박사의 북한군 침투 주장과 이를 뒷받침할 증언 및 증거를 부정하려면 공개된 477명 광수들이 누구인지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다.

직접 침투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까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광주 5.18 당시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다는 증언과, 이들 뒷받침 하는 증거들은 수두룩하다. 광주시와 5.18 단체들만 믿지 않으려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이미 국민들에게 수없이 회자 됐다. 인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10명이건 1,000명이건 침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증언자들의 증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육성 증언까지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법과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된다.

‘법정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률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뉴스타운>이 아닌 증언자들을 고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이런 증언자들을 가만히 두고 있는지 이 또한 아이러니다.

<뉴스타운>은 수많은 증언과 증거 중 몇 가지만 공개하고자 한다.

▲ 2006년 여동생, 딸 등과 함께 탈북한 전 북한특수군 출신 김명국(가명)씨 증언 ⓒ뉴스타운

먼저 탈북자 김명국씨(가명, 전 북한군 상좌)의 증언이다(김명국의 증언내용은 압축해서 팩트만 적는다) ▶1980년 5월 18일 야간훈련 중 철수명령 받음. ▶총탄 300발, 수류탄 2발, 권총, 카빈총 1정, 단도, 포승 끈, 구급치료약 등 소지. ▶5월 19일 오후 4시경 대양리에서 전투조 50명 갱생지프차로 출발. ▶5월 19일 밤 9시경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북한대남연락소 기지에서 승선. ▶직속부대에는 3개조가 있었는데, 내가 소속된 1조는 12명, 2조도 12명, 3조는 15명, 나머지 10명은 16정찰에 배속된 남한 전문가들. ▶내가 속했던 소조 12명 중 조장은 23세의 리상국 중위, 부조장은 22세의 한광호 소위. 기타조원들의 이름은 김일룡(21), 최길산(20), 황보석(21), 한철수(21), 김명국(가명/19) 등으로 기억. ▶내가 호위한 파견대장의 이름은 문제심. ▶우리 나이 또래에선 5.18 사건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은 상식화 돼 있다.

광주폭동에 참가했던 조장-부조장들은 모두 군단장급으로 승진. ▶17여단, 61~63저격여단 등에서 차출됐으나 임무는 모두 달라. 정치공작조도 있고, 몽둥이질 잘하는 애들도 있었음. ▶고기배로 위장(길이 20m, 추진기 4개, 시속 70km, 자체 폭파 가능). ▶21일 새벽 2시경 전남 광주 앞바다로 잠입, 안내원 몇 명이 대장한테 와서 결과보고.(“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음.) ▶2일간(22일까지) 광주 근교 야산에 잠복하여 북한과 무선교신을 하며 광주봉기의 추이를 살핌. ▶27일 새벽 북한으로 철수하기 시작. 아침 6시경 산 중턱에서 국군특전사와 교전 중, 내가 공수대원 3명을 사살함. ▶30일 새벽, 우리 일행이 ‘문경고개’ 근처에서 행군할 때 부조장이 여자에게 발각되어 죽여서 땅에 묻음. ▶6월 4일 밤 11시, 휴전선에 도착. 지뢰밭과 철조망은 정찰국 성원들이 앞서 나가면서 해제해 주었고, 휴전선을 넘고 보니 5일 아침 9시경이었음.(지역은 북한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 ▶북한군 포사격장에 들어갔다가 한참 훈련 중인 포탄에 맞아 2명이 즉사하고, 본인은 다리에 부상을 입음. ▶남한에 침투되었다 살아서 귀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됐고, 분견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 사령부) 작전부대에 승급되어 배치. 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 대좌의 군사칭호 수여. ▶조장들은 7명이 살아 돌아왔는데 모두 상좌로 승진시켜 각 군단 부사령관으로 임명.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은 5월 전투공로로 조선로동당에 입당함. 목숨 바쳐 지휘관을 보위한 공로로 국기훈장 1급을 수여(참고로 국기훈장 두 개면 공화국 영웅 칭호와 맞먹음). ▶2006년 7월 남한에 입국하여 위와 같은 사실들을 증언하였지만, 당시 국정원 직원 이병영이 “그런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고 협박. ▶문제심은 2006년 당시 국방차관급으로 출세. 그의 말에 의하면 “남파부대들에서 270명이 남파되었다가 거의 다 죽고 살아 돌아 온 사람이 70명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함.

▲ ⓒ뉴스타운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의 증언 ▶ “김일성은 광주사태로 인한 향후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대비하여 5월말까지 예정 되었던 루마니아 방문일정을 단축하고 5월 13일 귀국하였다. 광주에 투입된 북한 특수부대들의 실무 작전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5월10일 북한군 정찰국 소속의 황해북도 신천군 주둔 제1321부대(일명 신천복수대대)의 인원 300명이 폭풍명령을 받고 남포시 와우도 인근 지역에 집결하였다(서해루트를 통해 침투시킨 300여 명).

남포에 집결한 전투인원들을 환송하는 연회장에 김정일을 대동하여 김중린, 이하일이 참가했으며 김정일은 당시 전투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을 고무하였다. 이날 환송에서 김정일은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그 자료는 현재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2동 대남 사적관 지하전시실 2관에 보관되어있다.

환송회를 마친 남파 인원들은 1천톤의 대형 뜨랄선에 승선하여 남포항을 출발하였다. 당시부터 남파된 부대의 전체 지휘는 정찰국 5부장 이하일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남포루트를 통해 침투되었던 당사자들은 공해상에서 탄광복 같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남한 서해안의 백암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지역으로 들어갔다고 증언하였다.

당시 총책 이하일은 공해상에서 광주 현장에 침투된 무장인원들을 지휘하였다. 현장을 총괄 지휘하던 이하일은 계엄군에 의해서 광주정세가 역전되자 인원들의 철수를 지시했으며 1980년 5월25일. 부상인원을 포함한 약 400명 정도의 남파되었던 인원들이 1차로 남포항으로 도착했고 나머지 인원 70여명은 광주에서 죽은 40여명의 시신에서 일부 부위만을 채취하여 중부전선인 강원도 철원군 상요리 일대의 전선을 넘어 귀대하였다.”

탈북자 김유송씨 증언 ▶ “인민군 총정치국 지시로 124군부대에서 한국에 파견 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한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황해남도 삼천군과 안악군에 ‘남조선혁명가묘소’를 만들어 놓고 부대원들의 충성심 교육과 계급교양에 이용하여 왔습니다. 60구에 달하는 묘소 중 12구 묘에 사망 일자를 1980년 5월로 표기 하였습니다. 북한 로동당은 광주 5.18사건은 수령님께서 구상하시고 장군님께서 진두지휘하신 남조선혁명의 위대한 승리라고 선전하며 김정일의 우상화 교육의 장으로 이용 하였습니다.”

다양한 증언과 증거들이 실린 책도 많이 있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광주5.18에 대한 탈북자들의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에서 발행한 책). 김대령 박사가 쓴 ‘역사로서의 5.18’ 지만원 박사가 쓴 ‘수사 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솔로몬 앞에선 5.18’ 등 많은 책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정권 교육성이 발행한 국정교과서에는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 시위와 반정부운동, 파업은 모두 김일성 교시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 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 교육도서출판사 주체92년이 출판한 소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 제40과 광주의 어린 용사라는 ‘철수’가, 소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누나의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5.18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누나를 잃었다는 ‘남철’이라는 소년이 등장해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지난 2013년 4월 22일의 TV조선 방송에서 전 월간조선 편집부장이었던 김용삼씨가 1996년과 1998년에 황장엽과 김덕홍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확인한 내용 중 ▶황장엽 “광주학생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남한에) 전가한 일”. ▶김덕홍 “조선노동당 대남부서에 소속된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민주화운동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 받았다.”는 내용도 상당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내용들이다.

▲ ⓒ뉴스타운

북한의 주장을 뒤엎을 단서가 있어야 한다

<뉴스타운>이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북한교과서 등에서 북한이 광주 5.18을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 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주장을 뒤엎을 수 있는 단서가 있어야 한다. 이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북한이라는 집단이 광주 5.18을 이용해 남한 정권과 미국을 빗대 반파쇼투쟁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5.18 단체들은 물론 국민의당 38명 의원들은 북한이 이런 발언과 교과서에 광주 5.18을 자신들이 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탈북자들의 증언과, 북한의 주장을 뒤엎을 수 있는 단서를 내놓고 모든 것이 거짓임을 국민들께 반드시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든 증언과 증거들을 무조건 “왜곡이다”는 말로 짓밟아 버리면 그것은 훗날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밖에 없다.

역사는 어느 한사람이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세력에 의해 왜곡되게 전해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실여부를 정확히 판단해 광주도, 남한 정부도, 국군도, 경찰도 모두가 피해자는 아닌지 이런 증거들을 기준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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