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에 호소합니다!
5.18 역사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에 호소합니다!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5.04 14: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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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의식이 전혀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 ⓒ뉴스타운

역사에 무관심한 사이에 국가는 붉은 영혼들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해방직후부터 북한은 민족통일이라는 미명하에 남한을 흡수하려 끝없는 공작을 자행하였습니다. 따라서 남한의 정치역사는 곧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였습니다. 1946년의 9월총파업, 41일간 3남지방을 붉게 물들인 10월 폭동, 4.3 반란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6.25 사변, 5.18 게릴라 폭동사건, 아웅산 폭파, KAL858 사건 등의 테러행위에 이르기까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만행들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만행을 저질러 놓고 북한은 미리부터 남한에 길러 놓은 역사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역사를 끝없이 왜곡해 왔습니다. 지금 현재 역사학계는 99% 공산당 역사학자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쓴 역사책들이 학교 교과서로 선택되고,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아이들에 주입됩니다. 이들이 쓴 왜곡된 역사책들이 도서관과 서점들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 왜곡된 역사를 접한 사람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이 나라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고이 길러 놓은 자식의 영혼이 빨갱이 영혼으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겉만 기르고 속은 북한이 통째로 가로 채 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 기승하는 악의 세력을 직시해야 여러분이 살 수 있습니다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공산당 역사학자들이 독차지하고, 남한 사회의 주요 기능들은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이상한 정신병자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자? 북한은 지금 인권은커녕 목숨이 마구 달아나는 공포의 도가니 입니다. 이런 뉴스를 연일 접하면서도 그런 북한을 조국으로 추종하는 반면, 자기들을 호의호식하게 만들어 준 이 나라를 틈만 나면 파괴할 궁리만 하는 매우 이상한 정신병자들이 있습니다. 인격이 길러지지 않은 '소시오패스'들인 것입니다. 이런 정신병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대강 세 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뿌리는 반공정권인 이승만-박정희 치하에서 빨치산 노릇을 하거나 그렇게 의심받는 행위를 하여 국가에 의해 토벌됐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던 빨치산의 후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파생한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이 대대손손 이어온 것입니다.

둘째 뿌리는 북한으로부터 돈을 받았거나, 북한에 가서 성접대 등을 받아 북한에 코가 꿰인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정치인들, 언론인들, 기업인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저명 인사들입니다.

셋째 뿌리는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전라도 사람들입니다. 예로부터 파렴치한 짓들을 많이 해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 당해 한이 많다는 지역인들입니다. 이들은 성격이 천박 과격하여 쉽게 자극받고 쉽게 불같은 성질 자랑을 하며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는 태도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을 통해 자기들을 따돌림하고 손가락질 하는 타 지역 사람들에 대한 원수를 갚고 싶어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가 북한에 점령되어 타도 사람들 죽는 꼴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통계학적 의미로 전라도 대부분이 구조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승만의 건국 역사와 박정희의 부국강병 역사를 말살해 온
민주화 세력의 정체를 직시해야 합니다

▲ 파괴된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동상과 조국 근대화 산업화 영웅 박정희 대통령 동상 ⓒ뉴스타운

대한민국 역사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반공-건설 역사와  위와 같은 뿌리를 갖는 남북한 빨갱이들이 야합해서 만들어 가는 '현재 진행형'의 적화-파괴 역사로 크게 구성돼 있습니다. 이 적화-파괴 역사를 빨갱이들은 민주화 역사라며 아름답게 포장해왔습니다. 민주화의 지도자급으로 부상해 있던 손학규는 이렇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나는 자고 깰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파괴할까 그런 연구만 한 적이 있습니다."

생일 없는 사람, 생일 없는 국가가 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만 생일이 없는 사생국가가 돼 있습니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북한을 추종하는 민주화 세력의 기승에 지레 질려 건국절을 제정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건국' 이라는 말을 하면 마치 역적이나 되는 것처럼 따돌림을 당합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교과서에서 '건국' 이라는 말을 빼 버렸습니다. 건국이 없는 나라는 '임시 집단'일 뿐입니다.

건국이 없는 나라에 무슨 국가가 있고 무슨 대통령이 있는 것입니까? 참으로 이상한 나라입니다. 건국절을 이제라도 제정하지 않으려면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건국절이 없는 임시집단인데 김대중과 노무현은 왜 대통령으로 불렸습니까?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면 국가이고, 다른 세력이 집권하면 불법정권이라는 것이 민주화 세력의 주장입니다. 민주화 세력의 주장으로는 "대한민국은 친일파로 세운 정권이기에 태어나서는 안 될 더러운 정권" 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국한 이승만이 밉고, 6.25 남침 전쟁에서 한국을 구해준  미국이 밉고 맥아더가 밉다는 것입니다.

좌익세력은 전두환의 서투른 정치와 부정-부패를 사실 이상으로 부각시키고, 군사정권에 대한 환멸을 부추겨 우리 사회에 민주화라는 쓰나미를 일으켰습니다. 선동에 매우 취약한 이 나라 국민들은 '민주화'에 열광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민주화' 라는 단어는 국가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이 민주화 세력의 전형이 바로 이번 5월 1일 서울도심에서 경찰을 폭행하고, 국가를 능멸한 민주노총과 같은 집단입니다.

대한민국을 점령하고 대한민국 호령하는 5.18 세력

민주화 세력이 한동안 국가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은 5.18이 민주화의 성지로 군림하고 부터입니다. 5.18이 바로 민주화의 혼이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빨갱이 종북 세력이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하게 된 것은 '민주화' 라는 용어가 그들이 신으로 섬기는 김일성이 만들어 준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이 강론한 '민주화'는 "남조선 근로자 모두가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을 숭배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을 널리 배우고 전파해야 하는데 이를 금지하는 남조선의 괴뢰정부가 문제이고, 남조선을 식민지화 하는 미국이 문제이고, 매판자본으로 근로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이 문제다. 이들을 깨부숴야 근로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이를 위해 투쟁하라'는 것이 곧 '민주화'에 대한 김일성의 정의인 것입니다. 돌이켜 보십시오. 5.18 신봉 세력 즉 민주화 세력이 1980년 5.18 이후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습니까? 미국과 남한정권(김대중 노무현 제외)과 재벌을 상대로 하여 투쟁해온 것 말고 무엇이 더 있습니까?

5.18 역사는 이제 대한민국을 호령하기 위한 정치적 존재에서
학문적 존재로 차원의 변화를 맞이 하였습니다

광주에는 조폭 조직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5.18 단체들이 포진하고 있으면서 5.18 역사를 누구도 터치 할 수 없도록 온갖 폭력과 협박과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5.18은 표면적으로는 국가와 광주시민들 사이에 발생했던 충돌의 역사입니다. 1980년대에는 한국군이 충신, 광주가 역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 '국가는 역적, 광주는 충신'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반역자가 충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옛날 충신들을 지배하는 빨갱이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학문적 연구로 35년 만에 새롭게 밝혀진 5.18 진실

빨갱이들에 민주화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5.18, 과연 그것이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 같은 순수한 민주화운동 일까요? 아닙니다. 이제까지 우리 국민에 알려진 5.18 역사는 민주화 역사가 아니라 북한특수군 600명이 와서 일으킨 게릴라 폭동이었습니다. 한국군과 싸운 주도 세력은 광주시민이 아니라 북한특수군 600명이었고, 북한군에 부화뇌동한 광주사람들은 광주에서 천대받던 계급이었습니다.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기획한 사람 전혀 없고, 지휘한 사람 전혀 없습니다. 광주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건 35년 만에 순전히 학문적 연구의 결과로 새롭게 발견된 진실입니다.

이제까지 국민에 알려져 왔던 5.18에 대한 평가는 두 개,  1981년 4월 1일의 대법원 판결과 1997년의 대법원 판결이 양립해왔습니다. 이제까지는 판사들이 역사를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학문을 하는 학자들이 평가하는 것이지 '정권의 하수인' 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판사들, 학문의 깊이가 없는 판사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포인트는 5.18에 대한 역사연구가 사실상 2004년 말까지 허가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5.18의 진실을 담고 있는 거의 모든 자료들이 "12.12 및 5.18"에 대한 수사-재판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자료들이 2004년 말까지 검찰의 지하 창고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학자들이 무슨 수로 5.18 역사 연구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5.18 역사에는 과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수사-재판 기록들을 일반에 공개하게 된 계기가 생기게 된 것은 5.18의 최고 영웅이라는 정동년 덕분이었습니다. 정동년은 김대중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200만원은 윤한봉에게, 300만원은 박관현에게 주어 5.18 폭동을 잉태 시켰다는 죄로 1980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실 5월 17일 야밤에 잡혀 가 5.18 폭동에 직접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정동년이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자격으로 1998년 2월, 서울지방법원에 '12.12 및 5.18 관련 사건기록'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그가 소송을 낸 이유는 5.18 희생자가 2천명이 넘는데 재판부가 겨우 166명이라고 판결했다는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소송에 대해 서울고법은 2003년 1월 23일, 정동년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두 사건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역사적 평가 작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고 판결문 등을 통해 당시 군사외교에 대한 정보 중 일부가 공개된 점으로 볼 때 기록 일체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검찰(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이는 일반 국민들이 역사를 평가할 시점이 됐고, 역사 평가를 위해서는 사건기록이 공개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2004년 10월 3일, 대법원 역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2004년 11월 11일, 사건기록의 공개범위를 확정해 누구든 5.18 자료를 복사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5.18에 대한 학문의 연구는 2004년 말부터 비로소 공식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동년의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전말이 말해 주듯이 2004년 말까지의 5.18은,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타협과 절충을 통해 평가한 정치 평가였고, 1980년의 판사들과 1996년의 판사들이 정권의 입김을 반영하여 평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모두가 객관성을 상실한 평가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각도로 표현 한다면 이제까지의 5.18 역사에는 1980년의 역사나 1997년의 역사 모두에 학문 즉 과학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인 것은, 학문으로 뒷받침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한국 사회를 점령한 민주화세력의 입김이 반영된 인민재판의 결과인 것입니다.

남한 전체가 신천박물관으로 가득

▲ 북한 "신천 대학살 박물관"은 미군에 대한 증오심을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황해도 신천에 대규모로 만든 박물관입니다. 전시 내용은 6.25때 미군이 여인의 이를 뽑고, 여인을 불고문을 하고, 여인을 소 등에 묶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지를 찢고, 유방을 칼로 도려내었다는 등 온갖 북한만이 상상할 수 있는 거짓들을 지어내 그림에 담은 것들입니다. 황석영의 '넘어 넘어'와 빼닮았습니다. ⓒ뉴스타운

북한의 황해도 신천군에는 '신천박물관'이 있습니다. 6.25 때 미군이 그 지역에 가서 저질렀다는 만행들을 표현해 놓은 박물관입니다. 짐승 같은 미군이 어여쁜 북한의 여인을 묶어 놓고 머리 위에 종이 조각을 덮은 후 대못을 박는 그림이 리얼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가슴이 열린 여인을 소 등에 묶어 태우고 가서 소의 힘으로 사지를 찢어 죽였다는 그림, 아름다운 여인을 묶어 놓고 미군 두 명이 달려들어 젖가슴을 도려내는 그림, 어린 아이들과 남녀노소 모두를 구덩이에 넣고 생매장하는 그림, 동굴 속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마을 전체를 날려 버렸다는 그림 등 참으로 많은 그림과 설명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가면 일본이 증오스러워 지듯이 신천박물관을 보면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기막힌 거짓들이 창조돼 있는 신천박물관은 1960년 6월 25일 개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후인 남한에는 이를 그대로 본 따 만든 기념관들이 참으로 많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미국과 미국의 앞잡이인 대한민국을 증오하도록 만들어진 모략물들인 것입니다.

광주시 전체가 제2의 신천박물관 입니다. 신천박물관에서는 미군이 여성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것이고, 광주에서는 공수부대가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1991년 김일성이 5.18을 왜곡해 제작한 북한판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개봉하였습니다. 그 영화 내용은 신천박물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복사한 것입니다. 단지 가해자를 미군 대신 공수부대로 바꾸어 놓은 것이 다를 뿐입니다. 공수부대가 처녀 젖가슴 도려내고, 아이들까지 집단 생매장을 하고, 시민 한 사람을 두 개의 차량에 묶어 찢어 죽이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화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신천박물관에는 동굴 속에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설치했다는 것이고, 광주박물관에는 전남도청 지하실에 다이너마이트 폭탄을 설치해 광주시 전체를 날려버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신천박물관을 그대로 글로 그려낸 것이 황석영'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입니다. 광주 5.18 단체들이 운영하는 '5.18 체험학습장'이 신천박물관이고 제주도 봉개동에 있는 '4.3 기념관'도 신천박물관의 복사판 입니다.

▲ (북한출판)광주의 분노(좌상) 1985 조선노동당출판사.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좌중) 1982 조국통일사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좌우) 1985 황석영 저(국내판).
(국내판)조갑제 저 '조갑제의 광주사태'(좌하). 김대령 저 '역사로서 5.18'(좌하중). 지만원 박사저 '5.18 분석 최종 보고서'(우) ⓒ뉴스타운

지금 이 시각, 현존하는 5.18 역사는 두 개, '판사의 역사'와 '학자의 역사'가 있습니다

1980년과 1996년의 5.18 재판은 모두 정치재판이었습니다. 전자는 김대중을, 후자는 전두환을 단죄하기 위해 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 재판과 1996년 재판은 둘 다 엉터리 재판이었습니다. 두 재판 모두 광주에 광주인들이 구성하고 지휘한 시위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문적 연구결과 광주에는 광주인들이 스스로 구성한 시위대도 없었고, 그것을 지휘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개의 재판이 다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두 개의 재판을 주도한 수사기관이나 법관들은 5.18 광주에 북한군이 수백 명 단위로 왔다는 가정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 때 예리한 정보관들이 있어 "폭도의 주력은 북한특수군일 것이다" 이런 착안만 했어도 그들이 스스로 작성한 수사기록에서 '북한특수군 600명'의 존재를 충분히 밝혀냈을 것입니다. 모든 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존경받아야 하는 것은 그 분야에 훈련된 '예리한 직관'(Conjeture)입니다. 직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차이를 냅니다.

2014년 10월, 저는 논리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사책을 썼습니다. 무려 12년 동안 5.18을 연구하여 총 8권의 5.18 책을 쓴 것입니다. 이 연구 내용을 서울과 부산의 넓은 공간에 만장하신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러 시간 동안 자세히 설명드렸습니다. 이 두 개의 보고회 역시 5.18 역사의 한 분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학문으로 연구한 최초의 연구결과를 국민에 직접 알린 이 두개의 행사가 어찌 5.18 역사의 한 구성요소가 아니겠습니까.  오신 분들은 단 한분의 이의 제기 없이 만장일치로 제가 내린 결론을 환영하셨습니다. 이 사실도 역사입니다.

이 두 개의 보고회에 참석하신 국민들은 과학적 논리전개에 대한 훈련이 없는 판사들이 단기간에 걸쳐 평가한 기존의 5.18 역사도 평가 하셨고, 제가 새롭게 내놓은 5.18의 진실도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자에 절대적 공감과 많은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5.18에 북한군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목숨 걸고 보장한다"고 적극적 대응을 해왔던 조갑제와 광주의 여러 단체들에 "5.18이 왜 민주화운동 인지 팩트와 논리로 이 자리에 와서 발표해 달라"는 초청장을 내용증명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알고 있는 5.18은 과학이 없는 역사에 해당하는 것이 었기에, 과학이 있는 역사 앞에 감히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5.18 역사는 1980년의 역사와 1997년의 역사가 대립해 왔습니다. 1980년의 대법원 판단이 옳았느냐, 1997년의 대법원 판결이 옳았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김대중이 역적이냐, 전두환이 역적이냐에 대한 선택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선택에 대해 지금까지는 민주화 세력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1997년의 '민주화 역사' 즉 '김대중 역사'가 상대적으로 우세해 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판사가 평가한 5.18 역사가 있고, 학위가 있는 과학자가 분석한 5.18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5.18은 민주화 역사'라는 평가에는 과학이 없었고, '5.18은 북한의 대남공작' 이라는 평가에는 12년 동안의 과학이 있었습니다. '5.18이 민주화 역사' 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책은 오직 하나 황석영 명의로 발행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라는 책이었고, '5.18은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라는 사실을 증명한 책은 제가 12년 동안 쓴 8권의 책 약 3천쪽 분량의 책입니다. 황석영 명의로 발행한 책에는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들이 수사기록과 배치되는 모략물들로 가득하지만, 제가 쓴 후자의 책은 수사-재판 기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전자의 책은 북한의 대남사업부가 써서 황석영 이름으로 낸 책이지만 후자의 책은 대한민국 국민인 제가 제로 베이스에서 팩트들만을 가지고 12년 동안 연구해 쓴 책입니다.

학문적 역사 연구에, 연구 대상인 광주는 간섭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연구한 연구 결과는 지금 많은 애국자분들의 노력으로 많은 국민들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광주가 최근 여러 가지 비겁한 방법으로 방해하고 법적 대응을 한다며 좌경 매체들을 동원하여 협박하고 있습니다. 연구 활동에 대한 이런 모리배식 대응 행위는 민주주의 방식이 아닙니다.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면서 어찌 이런 천박하고 전근대적인 폭력행위를 자행할 수 있는 것입니까?

5.18 역사는 광주사람들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모든 역사는 도전받고 반론되는 과정을 거칠 의무가 있는 존재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가 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도 지금은 진흙 속에 처박혀 있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당장 '1980년의 5.18 역사'도 1995년에 도전을 받아 1997년에 뒤집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1997년 대법원이 내놓은 5.18 역사에 대해서 만은 도전과 재평가가 거부돼야 한다는 말입니까. 1997년의 대법원 판결 만은 신성불가침이라는 것입니다.

광주가 역사를 뒤집는 것은 괜찮고, 다른 지역이 역사를 뒤집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광주만이 대한민국을 지배한다는 이런 자세가 대한민국을 지배해왔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오직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화 역사만 인정되고, 이승만과 박정희 등의 반공-건설의 역사는 인정이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런 광주의 자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18 역사는 충돌의 역사이고, 충돌에는 당사자가 있습니다. 충돌의 당사자가 그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 연구에 간섭하는 것은 야만이고 당장 김영란법에 정면 배치됩니다. 광주는 또 이해당사자 입니다. 5.18 역사가 '민주화 역사'에서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로 바뀌면? 이제까지 세월호 유공자들에 버금가는 5.18 유공자 5.700명, 그들이 받아온 신의 대우는 박탈돼야 합니다.

이러한 이해 관계가 있기 때문에 광주는 학문적 역사 연구를 죽기살기로 방해해 왔고, 지금도 국회와 행정부(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방해 공작을 해오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광주의 이런 옳지 못한 자세를 깨우쳐 주시고 나무라 주시기 바랍니다.

학문적 연구를 한 사람은 저 혼자이지만, 5.18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은 5.18 단체들만이 아니라 각자의 이념적 생명이 걸려 있는 좌경세력 모두인 것입니다. 이러 하기에 저는 이런 광주와 좌익들로부터 지난 12년 동안 물리적 테러를 당했고, 또라이라는 모략도 받았고, 감옥도 갔습니다. 여기에 더해 도합 6년 동안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5.18 연구 만큼은 중단 없이 계속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진실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5.18 자체도 역사적 사건이지만, 광주가 제게 저지른 만행들도 5.18의 역사의 한 장르임에 틀림없습니다. 5.18이 과연 민주화운동 입니까? 광주가 과연 민주화운동의 성지입니까? 이에 대한 답을 직감적으로 판단하실 수 있는 근거는 제가 쓴 책보다는 광주가 제게 행했던 야만행위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런 야만의 광주사람들이 민주화의 영웅들일 수는 없는 일이며, 이런 야만의 고장이 민주화의 성지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저는 5.18 민주화의 성지라는 광주의 야만을 온 국민들께 고발하고자 합니다.

니미씨발 좃 같이, 이 씨발놈아, 니 시방 5.18 이라 씨부렀당가~

2001년, 김대중은 북에 엄청난 퍼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대북지원금이 핵 개발에 악용된다는 말은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다. 만약 북에 핵이 개발 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2002년 김대중은 유엔사 해군교전규칙을 고쳤습니다. 적군에 먼저 사격을 당할 수밖에 없도록 고쳐서, 우리 해군이 북괴의 기만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 여기에서 대통령 덕분(?)으로 억울하게 전사한 장병들이 6명이나 발생했습니다. 김대중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들 전사자들을 냉대하면서 빨간 넥타이 매고 일본으로 월드컵 축구 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이런 김대중을 어찌 이 나라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1989년 동의대에서 경찰 7명을 불에 태워죽인 최고 악한에게 김대중 정부는 2002년, 6억원의 보상금을 주었습니다. '군사정권의 개' 경찰을 죽인 것이 최고의 민주화 업적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북한의 총독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비판하는 광고를 동아일보 등에 냈습니다. 3,500자의 광고문 중에는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 이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김대중을 신봉하는 광주는 이 문장을 5.18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깡패경찰 4명을 안양의 제 숙소로 보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있는 집에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는 마치 적군에게나 하는 태도로 거칠게 몸싸움을 해서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제게 수갑을 뒤로 채웠습니다. 이를 목격한 식구들은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멸시감정과 적개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수갑을 뒤로 채우면 보통 사람들은 10분을 견디기 어려워 할 것입니다. 

수도권 사람을 광주로 끌고 가는 것은 형사소송법 제4조, 토지관할조항에 위배됩니다. 하지만 당시 광주는 대한민국 위에 있었습니다. 그 며칠 전에 5.18 부상자회 회장 김후식은 검은 유니폼을 입는 어깨 12명을 서울로 데려와 제 사무실, 아파트 대문, 차량을 파괴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력행사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여기에 빨갱이가 삽니다. 지만원 이 개새끼 빨갱이입니다. 왜 이런 자를 이웃에 살게 한다요?" 경찰들이 현장에 왔지만 그들은 경찰 위에 군림했습니다. 광주가 곧 법이었습니다.

저를 구겨서 뒷좌석에 태웠습니다. 얼마 전 인천지검 공안부장으로 승진한 최성필 검사의 조치였습니다.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보낸 경찰 4명은 한참 아들 벌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광주 교도소에서 환갑을 맞았으니 까요. 이들은 출발하면서부터 아래와 같은 욕설과 구타를 하였습니다, 호송 6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면서 턱과 뺨과 머리를 쉴 새 없이 쥐어 박았습니다.

"니미 씨팔 좃 같이, 뭐 이런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씨발놈아,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건드려, 이 씨발 개새끼 가다가 목을 비틀어 파묻고 가야 한당께,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다 있어, 야, 이 새끼야, 너 이회창으로부터 얼마나 받아 처먹었냐, 이회창 그 개새끼, 칼로 배지를 쑤서부러야 쓴당께, 이런 새끼가 무슨 대령 출신이야, 이런 새끼가 무슨 육사 출신이야, 대령질 하면서 돈은 얼마나 받아 챙겼것냐, 부하 꽤나 잡아 처먹었을 거다. 이런 쥐새끼 같은 개새끼, 우익새끼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당께. 너 이새끼 가다가 죽을 줄 알아, 너를 때려 죽여서 파묻어도 증거가 남냐? 증거가?..."

저는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송되는 동안 이들은 각기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김용철 입니다" "네, 이일남 입니다" "네 박찬수 입니다" "네 이규행 입니다"

뒤로 채인 수갑의 아픔을 견디면서 저는 수 없이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가슴에 적었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다가 몰매를 맞았습니다. "야 이 씨발 개새끼야, 바지에 흥건히 싸부러, 좃대가리를 팍 뭉겨버리기 전에" 광주검찰청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했더니 바짝 옆에 붙어 "야 이 씨발놈아 빨리 싸부러" 수갑을 뒤로 채였는지라 팔과 손가락이 퉁 퉁 부어 움직여지지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인간 이하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끝자락이요 생지옥이었습니다.

최성필 검사가 저를 보더니 곧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삿대질을 했습니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 이회창에게서 얼마나 받아 처먹었어, 돈 벌려고 한 짓 아냐? 이 개새끼 수갑 풀어주지 말고 밤새워 조사해."

검사로 보이는 이웃 여성이 살랑살랑 최성필 검사실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이 자가 지만원이라는 그자랑가? 엥~, 이 보소, 얼굴 좀 들어 보소 잉, 당신 눈에는 광주시민 전체가 빨갱이로 보이요? 당신 눈에는 여기 있는 우리가 빨갱이로 보이요? 이 자도 인간이랑가 잉~, 참말로라 잉, 광주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무신 민주주의가 생겼겠소. 어림도 없재이 잉~ 이 보소, 당신이 시스템공학 박사요 엥? 시스템공학이란 게 있당가, 어디서 학위를 받았소? 처음 듣는 건디 이거 가짜 아닝가벼, 좀 알아봐야 겠구만, 어이 좀 알아보소."

이후 영장실질심의를 한 정경헌 판사(1957, 전남 함평)는 저의 변호를 맡은 광주출신 변호인이 그보다 21세나 많았는데도 "변호인은 광주 시민들에게 무슨 욕을 들으려고 서울 사람의 재판을 맡았소" 라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변호인과 저를 노려보며 고성을 질렀습니다. 10월 30일, 구속적부심 재판을 주재한 김용출 부장판사(1959년생 전남 장성)가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나의 형님도 아무런 죄 없이 계엄군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고초를 받고 왔소. 이런 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요?" 전라도 판사들은 색다른 이방인들 같았습니다. 계엄군에 자기 형이 붙들려가 조사를 받은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판사였습니다.

형사소송법 제4조는 토지관할권이 규정돼 있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저는 서울에서 재판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15조는 지역정서가 작용하는 본 사건을 광주지법 이외의 다른 지역 법원으로 이송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저의 서울지역 변호인들은 이 지역정서와 관할권을 이유로 관할이전 신청을 3회씩이나 냈지만 광주지법은 이러한 법의 정신과 실정법을 무시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검찰과 법원이 저질렀다는 그 정도의 사실들만으로는 광주가 지역정서를 가지고 재판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이런 판결을 낸 대법관은 강신욱(재판장) 조무제(주심) 유지담, 손지열 이었습니다.

광주 법원이 제게 내린 판결문의 요지는 "5.18은 비상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등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벌인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5.18 특별법이 규정해놓고 보상법으로 보상도 받고 있는데 사망한 자들이 마치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하여 선동되어 일으킨 폭동인 것처럼 허위로 묘사하여 사자와 생자의 명예를 다 같이 훼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01일 동안 광주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5.18에 대한 학문적으로 연구한 책을 썼다고 5년 동안 또 재판 받았습니다

2008년 저는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이라는 1,720쪽의 다큐멘터리 역사책 4권을 썼습니다. 5.18 부상자회 회장 신경진 등 여러 명이 저를 또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고발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안양 검사 박윤희가 기소 했고, 2009년부터 2012년 12월 27일까지 만 4년 동안 1,2,3심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1,2,3심 모두 다 무죄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여파로 저는 2013.1.경 4차례에 걸쳐 TV조선과 채널A에 출연하여 새로운 연구결과에 대해 방송을 했고, 이후 두 방송국은 앞을 다퉈가면서 탈북자들과 다른 5.18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수많은 횟수의 방송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박근혜 대통령이 광주에 날아가 태극기를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에 박자를 맞추었습니다. 대통령이 5.18 재조명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이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13년 6월말과 7월 초에 걸쳐 두 방송국에 중징계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앞으로 5.18과 북한특수군을 연결짓는 내용은 일체 방송하지 말 것이며, 방송에 출연한 탈북자들 및 그들과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모 변호사를 영구 출연금지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요새 세상에서는 참으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분서갱유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스스로 알아서 5.18의 종노릇까지 한 것입니다.

이어서 방송통신심의위는 제가 게시한 유튜브 동영상을 차단하고, 거기에 제 동영상이 마약, 음란물과 동급의 불법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차단 한다는 경고 딱지를 붙였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봉쇄한 폭거이기도 하지만, 저 개인에 대한  엄청난 명예훼손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네이버 등에서 게시돼 있는 100개가 넘는 글들을 삭제하는 소나기식 제재를 가하였습니다.

제가 연구한 연구결과를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파급력이 강한 방송과 인터넷을 모두 사용할 수 없게 한 독재조치 였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야만이었습니다. 저는 위 네 개의 행정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했고, 소송은 지금 막바지에 이르러 있습니다. 방송국에 대해 방통심의위가 내린 조치는 비록 저에 대해 내린 직접적인 조치는 아니지만 제 연구결과를 방송을 통해 발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저는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송국 제재 처분에 대해서도 제가 소송당사자 적격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송국이 해야 하는 소송을 제가 대신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통심의위의 법정 답변이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5.18에 대해서 만큼은 법적-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와 다른 역사관은 역사왜곡이고, 5.18 관련집단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이고, 거룩한 5.18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방통심의위를 구성하는 9명의 심의위원인 것입니다.

역사 의식이 전혀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 북한에서 제작한 광주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이다. 이 영화 주제곡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뉴스타운

2014년 3월 18일, 대통령은 4월 3일을 '제주민중항쟁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추념일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하나만 보아도 박근혜에는 역사 의식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저는 2014년 11월 2일 "대통령께 직접 드리는 진정서""5.18 분석 최종보고서"라는 8권 중의 마지막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제8권과 함게 보냈습니다.

진정서에는 "12년 동안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5.18은 북한의 대남공작요원 600명이 와서 저지른 이간목적의 게릴라 작전이니, 가용한 국가 두뇌를 동원하여 이를 최종 확정해 주시고, 그 시기까지는 국가가 나서서 5.18을 기념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중단해 주시라"는 요지의 글이 짤막하게 기술돼 있었습니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5.18에 대한 이 끔찍한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리 문고리 3인방이 엉터리 같은 사람들이라 해도 대통령에게는 특별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막중한 건의를 받은 대통령은 제게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몇 달이 흘러서야 보훈처 모 사무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통령에 진정한 내용이 보훈처장에게 내려와 있고, 보훈처가 검토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생각났습니다. 2005년 그는 탈북자 수기 "평양의 수족관"을 읽고 그 저자인 강철환 기자를 40분간 만났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탈북자 수기를 일독하라고 권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 관심 조차 갖지 않는 탈북자 수기를 읽고 그 저자를 만나고, 북한인권을 유엔기구에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습득한 5.18에 대한 정보를 방송에 나와 말했다는 이유 하나로 영원히 방송출연을 금지시켰습니다.

방송에는 당시 분당에 살고 있는 탈북자가 등장하였습니다. 5.18때 북한특수군 신분으로 직접 지휘관을 호위하고 광주작전에 참전하여 계엄군에 총질을 한 사실과 당시 침투했던 50명 조원들의 구성과 임무를 소개하였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 탈북자의 증언이 사실인지 여부를 조사한 바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탈북자는 물론 방송에 출연했던 다른 탈북자들까지도 방송출연을 영구적으로 금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저 역시 사실상 영구중단처분을 받아 놓고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 누구보다 대통령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왜 이런 독재적인 탄압을 했겠습니까? 대통령이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빨갱이들이 만든 5.18 영화 '화려한 휴가'가 있습니다. 내용 모두가 북한판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와 일치 합니다.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7년, 이 영화를 일부러 광주에 가서 관람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가짜 스토리로 만든 영화 하나를 보고 그 내용을 신념으로 받아들인 단순 무쌍한 사람이 이 나라 대통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 대통령은 광주의 5.18 묘지를 조용히 찾아가 "광주의 마음과 마주하고 싶어 왔다"며, 역적들의 비석을 부여 잡고 누나의 모습으로 추모해 왔습니다.

결 론

국민 여러분, 이 나라는 주인 없는 무주공산과도 같습니다. 5년마다 우루르 메뚜기 떼들이 청와대와 국회와 정부조직, 공기업들에 들어가 한탕씩 해먹고 나가는 그런 무주공산 입니다. 대통령은 빨갱이들에 시달리다 나가고, 그를 따라 몰려온 인간들은 '메뚜기도 한철' 이라는 생각으로 겉으로는 대통령에 복종하는 척 하면서 대통령의 무능함을 틈타 해먹기에 바쁩니다. 이런 사람들에 무슨 역사 의식이 있고, 국가관이 있겠습니까? 도둑놈 일수록 말은 더 번지르하게 하고, 얼굴에는 누구보다 사명감이 줄줄 흐릅니다.

결국 이 나라는 주인의식이 있는 국민들이 지켜야 합니다. 뭉치면 힘이 되겠지만 주인의식이 있는 국민들 마저도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흩어져 있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5.18 역사를 공부하시고 대국민 사기극인 5.18 역사를 지옥에 보내는 일입니다. '나도 공부하고 남에게도 공부시키는 일'을 하면 그것이 지금은 최상의 애국입니다.

지금부터 5.18이니 민주화니 입에 담는 인간들은 거의가 다 의식화된 빨갱이들이라 간주하십시오. 이제는 그 더러운 빨갱이들과 맞붙어 싸워야 합니다, 싸움을 피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배운 사람들은 체면도 있고, 수치를 알아, 늘 그렇지 못한 상놈들에 양보하고 침묵을 지키며 품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면 이 나라는 망합니다.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누구보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로 세상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 엘리트들이 바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 이십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한참 낮아 보이는 사람들에 아쉬운 말을 하면서 굽실거리고 계십니다. 단 한 가지, 애국하는 죄 때문입니다. 이웃에서 거리에서 전단지를 권하시는 우리 회원님들, 하루에도 꽤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억하기 조차 싫은 불쾌한 순간들을 당하십니다. 그런데 시비를 거는 사람들, 거의 100%가 전라도 사람들입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당신 전라도지?" 이렇게 말씀해 보십시오. 금방 기가 죽습니다. 창피한 비극이지요. 전라도가 문제입니다. 하지만 더 비참한 비극은 그들을 묵인했을 때 찾아오는 비극입니다. 덤벼드는 전라도 사람을 퇴치하는 비법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5.18을 죽이는 전사가 되어 주십시오. 그래야만 민주화 역사가 죽고, 이승만-박정희 역사가 되살아 납니다. 이 두 역사가 소생해야 빈대 같은 빨갱이들이 DDT를 맞고 말라 죽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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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jacobson 2015-05-19 13:36:44
지만원 박사 수고 많습니다. 전라디언들의 광주사태와 김대중 이야기만 하면 큰일 납니다.
전라도는 별라도 이며 좌빨 종북세력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고2학년 윤기권이 광주사태 주도권에 있었으며 이후 보상금 2억여원을 갖고 김정일에게 바쳐고자 북한으로 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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