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매아리만 울려퍼지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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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매아리만 울려퍼지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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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고는 무관하다며 나 몰라라 하는 유권자

▲ 싸움하는 국회
제노비즈의 경우(Genovese cas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64년 뉴욕 퀸스에서 발생했던 실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당시 ‘키티 제노비즈’라는 여인이 흉악범에게 살해를 당할 때 목격자 38명의 사람들이 현장을 지켜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경찰에 연락하거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경찰이 이들 38명의 목격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한결같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경찰에 연락을 하거나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옆에서 범죄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도 이를 수수방관하는 인간의 감정이 병적으로 무디어진 경우를 일명 ‘제노비즈의 경우’라고 한다. 48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제노비즈의 경우처럼 누군가가 내 이웃을 돕거나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말을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주의에서 이기주의적으로 바뀐 신(新)세대가 주도하는 요즘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미래가 걱정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불안하다. 몇 년 전만 해도 곧 경제나 문화, 사회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어르신이나 선배의 말에 경청했던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런 사회로 변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우선 국회의원들의 막말을 듣는 국민들은 불안에 떨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과 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의사표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성찰없이 일단 표현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행동이 이 같은 모습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공공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있다. 그래서 민주사회 일수록 이런 저런 요구를 담은 시위가 일상처럼 일어나는 것 또한 당연하게 보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의사표현 속에는 곡 사회적인 담론뿐만 아니라 이익단체들의 이기적인 요구도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전된 민주사회가 그렇지 못한 북한 사회와 다른 점은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합당한 요구와 그렇지 못한 요구를 명확하게 구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정부가 제재를 하지 않더라도 시민사회단체가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정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사회, 그것이 진정으로 발전된 민주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저 참담할 뿐이다.

최근 야당의 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급사’를 소원했던 것이 문제가 되자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가엽고 불쌍해 보였다. 아무리 미워도 현직 대통령에게 그 같은 막말을 할 수는 없다. 자기변명에 급급한 그 의원도 문제지만 야당도 그렇다. 법과 원칙에 의거 ‘당’을 떠나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어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제 새끼 감싸듯 감싸려고만 하고 두둔하려고 한다.

또 비무장지대 초소에서 총기사건이 벌어지고 또 GP초소장 등 간부들이 북한군 초소를 지척에 두고 술판을 벌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북한군 병사가 철장을 넘어 우리측 내무반까지 들어왔다는 것이 밝혀졌어도, 초급 장교들이 반공사상이 희박하고 누가 우리의 적인지 판단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어도 지구상에서 유일한 휴전국가로서 경계태세를 강화해도 부족한 판에 초급 장교들이 군기강이 흐물흐물해 졌어도, 모두가 나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다며 나 몰라라 한다.

48년 전 뉴욕에서 발생했던 ‘제노비즈의 경우’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 같다. 특히 위기를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느 때부터인가 모든 것을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로 구분하려는 성향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일명 좌파로 일컬어지던 정권이 10년만에 우파정권으로 바뀌고 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또 다시 대선을 눈앞에 두고 또 다시 상반된 이념으로 싸움판을 벌리며 여ㆍ야가 미쳐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유권자인 국민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저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해결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던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해답을 갖고 있으면서도 안타깝게 해결책은 없다. 국회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자신의 뜻만이 항상 옳은 것으로 착각하고 그 뜻을 관철시키고자 주위 사람들과 곧잘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서로가 한치 양보도 없이 오직 자신의 주장만 내세운다면 동화책에 나오는 염소들이 개울가 다리 위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 같이 시간만 소비하며 결국에 가서는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오늘의 민주화된 시대는 권위주의적 사회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점에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사회에로의 전환이 권위 그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면 이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권위를 떠난 사회, 권위가 무력해진 사회나 공동체의 궁극은 혼란만 야기시킬 뿐이다.

‘제노비즈의 경우’를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는 우리가 되어야만 한다. 정부의 권위, 교권의 권위, 국회의 권위, 단체의 권위, 선배들의 권위와 질서가 바로 설 때 이 사회의 의식과 문화가 제대로 성장하는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아무리 자유국가, 표현의 자유를 말하지만 ‘나는 좌파거든요’하며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어도 모두가 침묵 일색이다.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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