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의 만남 이후 선천성 소아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형과 함께 매주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다. 성당을 기준으로 각자의 집은 정반대에 있었지만 집까지 형을 바래다 주는 것이 주말의 일상이 되어 버렸고 생전 처음으로 장애가 있는 친구가 생겼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연락이 끊겨버렸지만 이렇게 날씨가 쌀쌀해질 때면 형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아르바이트로 월급을 받았다며 형에게 자장면을 사준 적이 있는데 곱배기 한 그릇을 눈 깜짝할 새에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팔과 입이 돌아가서 먹기 불편할 텐데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기회만 되면 또 사드려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장애가 있는 형에겐 두 가지 소망이 있었는데 하나는 과일장사를 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인연을 맺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소망 다 그저 희망으로 끝내야 했다.
동에서 지원해주는 보조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던 형에게 육체적 불편함보다 더 큰 아픔은 경제적 빈곤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자립해보고 싶은 그 마음은 욕심이라기보다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결혼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첫 번째 소망은 두 번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과일장사를 하기 위해 자리도 알아보고 도매상 등도 수소문 해보았지만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하나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다들 그저 보조금이나 받아서 조용히 살지 무슨 장사를 하냐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두 번째 소망은 더 큰 아픔을 가져왔다. 매주 한 번씩 형의 빨래와 설겆이, 밑반찬 준비 등을 도와주던 여대생 자원봉사자는 많은 희망을 가져다 주긴 했지만, 또한 그만큼의 절망감을 심어주었다. 언제나 그 여대생 얘기를 할 때면 수줍어하던 형이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 놓게 되었고 그것은 분명 용감한 행동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무모한 짓이었던 것이다.
주위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사람은 정상인과 결혼해서 잘 살더라며, 돈만 있으면, 아니 돈만 벌 수 있다면 좋겠다고 돌아간 목을 떨구며 한숨 짓던 것이 생각난다.
당시 형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가끔씩 자장면 한 그릇 사주는 것과, 형의 그 수줍은 속내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형은 언제나 나에게 고마워했고 나와 있는 걸 좋아했었다.
한번은 시립희망원이란 곳에 장애우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던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이것 저것 챙겨주자 갑자기 내 손을 잡고는 놓치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을 꼭 붙잡고는 희망원 여기 저기를 함께 거닐었다.
그때 지금의 아내와 같이 갔었는데 아내가 질투할 정도로 그 여자애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애에게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그저 같이 얘기해주고 웃어 준 것뿐인데 이렇게 날 좋아하다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장애우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다. 우린 '편견을 버리자'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벌써 '장애우는 편견을 버리고 봐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연말이면 정치가, 사업가들은 생색내기의 기부금이나 시설 방문 등을 할지 모른다. 물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했든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필요할 듯싶다.
요즘은 장애인 고용 박람회도 열리고, 중소기업에서 장애인 채용 비율을 높이는 등 사회적으로 장애우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여건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또한 제도적인 여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우도 첫사랑에 대한 순수한 기억이 있을 수 있으며, 가정을 꾸려 열심히 살아보고 싶은 열정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털어놓기엔 우리의 고정된 시선이 너무나 일방적이진 않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두꺼운 외투속에 꽁꽁 싸매져 있는 장애우들의 속내에 귀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짜장면 같이 먹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장애우 형과 미래를 설계하던 그때가 그립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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