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파이크래프트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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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스파이크래프트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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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정책분석센터(the Center for European Policy Analysis)의 비거주 선임 연구원이며, 러시아 비밀기관 활동을 감시하는 아젠투라(Agentura.ru)의 공동 창립자이자 편집자 안드레이 솔다토프(Andrei Soldatov)와 한 솥밥을 먹고 있는 이리나 보로간(Irina Borogan) 부편집장이 대외 무제 전문 매체인 ‘포린 어페어즈’에 27일 기고한 글에서 아래와 같이 질문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크렘린 공작원(Kremlin’s Operatives)과 서방 라이벌 사이의 판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 아래는 두 기고자 글이다.

2023년 4월 러시아 정보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한 저명한 러시아 국민이 이탈리아 당국으로부터 인상적인 탈출을 성공시켰다. 러시아 사업가이자 전 러시아 주지사의 아들인 아르템 우스(Artem Uss)는 민감한 미국 군사 기술을 러시아로 밀수한 혐의로 몇 달 전 밀라노에 구금됐다.

2022년 10월 뉴욕주 브루클린 연방법원이 발행한 기소장에 따르면, 우스는 탄도 미사일과 기타 다양한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를 불법적으로 밀매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됐다. 그러나 우스는 미국으로의 송환을 기다리는 동안 세르비아 범죄조직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탈출해 러시아로 송환됐다.

지난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도된 ‘아르템 우스’의 탈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 정보군이 얼마나 재집결했는지를 보여주는 일련의 최근 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2022년 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공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러시아 정보기관은 방향 감각을 잃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유럽 ​​국가들은 하나씩 러시아 외교관들을 쫓아냈다.

영국의 한 추산에 따르면, 약 600명의 러시아 관리들이 유럽에서 추방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아마도 400명은 ‘스파이’로 여겨졌다. 러시아의 내부 보안 기관인 FSB(Federalinaya Sluzhba Bezopasnosti)는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옛. 키예프)를 신속하게 점령할 수 있다고 가정,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직면할 저항을 잘못 판단했다. 이는 러시아의 굴욕적인 성과에 기여했다.

이제 러시아의 외국 정보 네트워크가 복수심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인에 대한 제한을 피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아르템 우스를 도왔던 세르비아 갱단과 같은 외국 국적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더욱 창의적이 되고 있었다.

* 푸틴, 과거 스탈린의 막강한 비밀공작의 영광을 회복하려 노력

전쟁 전에 서방 정보기관은 주로 러시아 국민이 수행하는 러시아 작전을 다루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러시아의 정보 활동에는 다양한 외국인이 참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서방 정찰,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수송 추적뿐만 아니라 전쟁이 시작된 후 해외로 도피한 러시아 망명자 및 푸틴 정권 반대자들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활동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활동의 ​​증거는 조지아와 세르비아에서부터 불가리아와 폴란드와 같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초 영국 관리들은 런던에 있는 러시아 망명자들을 감시하려는 노력을 포함해,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혐의로 불가리아인 5명을 체포했다.

동시에 러시아 정보기관도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전쟁 전에는 SVR(해외정보국-foreign intelligence), GRU(러시아 연방군 총참모부의 정보기관-military intelligence), FSB(국내 보안기관-domestic security)라는 세 가지 주요 정보 기관이 분업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SVR이 정치 및 산업 스파이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GRU는 군사 문제에 초점을 맞춘 반면, FSB는 주로 러시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해외 지부를 주로 해외 러시아인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됐었다.

권력을 잡고 있는 이웃 국가의 정권. 이제 이러한 구분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세 기관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세 기관 모두 최근 러시아의 해외 망명자들 중에서 새로운 자산을 적극적으로 모집해 왔다.

모스크바의 첩보 기관의 귀환은 러시아의 간섭과 러시아의 정보 작전에 대응하려는 서방의 노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의 징후가 정확하다면 유럽 및 기타 지역에서 러시아의 정보 활동은 전쟁 초기에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는 푸틴 대통령 자신의 전시 정권과 소련 시절 수십 년의 초기 모델에 따라 러시아 스파이 기관을 점점 더 재건하고 있는 정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푸틴은 20세기 후반 소련 KGB가 서방과의 대결에서 실패한 것을 만회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또한 볼셰비키 혁명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수십 년 동안 서방에 맞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스탈린의 막강한 비밀 공작의 영광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백년전쟁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 전면전을 시작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의 정보기관은 상당히 취약해 보였다. 그들은 기관 간 내분과 영역 전쟁은 물론 장군 및 하사관과 사병들(the rank and file) 사이의 신뢰 붕괴로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으며, 이로 인해 지상에서 최고 수준으로 정보를 얻는 데 상당한 지연과 실패가 발생했다.

러시아 정보 작전은 2018년 영국에서 전직 러시아군 장교 세르게이 스크리팔(Sergei Skripal), 2020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Alexei Navalny)의 독살 사건처럼 주로 엉성한 것으로 알려지게 됐다. 러시아 스파이 조직은 예전의 빛을 많이 잃은 것처럼 보였는데, 이 문제는 러시아의 침공 계획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당혹스러운 오판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접어들자 러시아 정보기관은 재편성되어 새로운 목적을 찾았다. 자신들의 실수를 곰곰이 생각하고 초기 침공에서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기관들은 서구 전체와의 대결을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힘을 얻어 전진했다.

그들은 유럽과 주변 국가에서 활동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FSB는 러시아 땅에서 우크라이나 작전에 맞서 싸우기 위한 노력을 강화했다. 푸틴 대통령이 2022년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보안 서비스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은 미덕으로 여겨졌다. 1990년대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보 지도부와 하사관, 사병들 모두 기관을 개편하려는 시도가 그들의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견해가 널리 공유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활동의 기저에는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전반적인 정보 전쟁을 활성화하는 더 큰 목표도 있었다. 러시아의 주요 기관들에게 이것은 소련 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쟁이었다. 러시아 정보 당국자들이 보고 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1917년부터 진행되어온 대규모 스파이 전쟁의 세 번째 라운드를 시작했다.

초기 소련 공작원들이 주로 영국 공작원들과 대결했던 이 투쟁의 첫 번째 라운드는 볼셰비키 혁명(Bolshevik Revolution) 직후에 시작됐다. 원래의 갈등에서 소련 요원들은 해외에서 볼셰비키 정권에 대한 저항을 조장할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타협했다. 그들은 가짜 반볼셰비키 조직을 돕기 위해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러시아 이민자들과 영국 스파이들을 소련으로 유인하는 코드명 트러스트(Trust)라는 대규모의 매우 성공적인 위장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이를 수행했다.

이러한 반(反)소련 활동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확인되고 살해됐다. 이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때 러시아 스파이들이 영국 정보부에 성공적으로 침투했고, 미국에서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에 접속해 원자폭탄의 비밀을 훔쳤다. 전반적으로 소련 관리들은 이번 첫 번째 라운드에서 서방이 승리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두 번째 정보 전쟁은 모스크바에서 그리 좋게 끝나지 않았다. 냉전기간 동안 KGB는 보호하겠다고 맹세한 소련 정권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에 그 기관은 쪼개지면서 거의 해체될 뻔했다. 붕괴는 권력을 잃은 러시아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이를 직접 목격한 푸틴 대통령과 그의 경호 엘리트들에게 지속적인 상처를 남겼다. (푸틴은 궁극적으로 이전의 KGB의 기반 위에 FSB를 구축했다.)

이제 서방과의 새로운 대규모 갈등이 ​​시작되면서 러시아 정보기관은 냉전 종식에 따른 좌절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정보 전쟁의 세 번째 라운드의 시작으로 보고 새로운 기회를 감지했다. 소련 전임자들과의 ​​연속성은 러시아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지난 9월에 러시아의 외국 정보부 수장인 세르게이 나리쉬킨(Sergei Naryshkin)은 SVR의 모스크바 본부 안뜰에 소련 비밀경찰 창시자를 기리는 새로운 동상을 세웠다. 11월에 FSB는 소련 비밀경찰기구인 OGPU의 100주년을 축하하고, 정치 이민자 조직을 분쇄하는 데 있어 OGPU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메시지를 강화했다.

그러나 연속성은 초기 소련의 공적을 축하하는 것 이상이다. 전쟁을 앞두고, 또 그 이후에도 푸틴은 소련 붕괴의 굴욕에 대한 복수를 열망하는 전직 KGB 장군들을 눈에 띄게 활용해 왔다.

1980년대 KGB 해외 정보국에서 해외 허위정보 작전 부국장을 역임한 니콜라이 그리빈(Nikolai Gribin)은 2021년 출범한 새로운 러시아 싱크탱크인 국립 통신개발연구소(National Research Institute for the Development of Communications)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러시아 주변 국가, 특히 벨라루스에 초점을 맞춘 친(親)크렘린 의견. (그리빈 자신은 벨라루스의 여론에 관한 여러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1980년대에 알렉산더 미하일로프(Alexander Mikhailov)는 KGB의 악명 높은 제5국(반체제 인사, 음악가, 교회 지도자를 포함한 이데올로기 전복을 근절하는 임무를 맡은 부서)에서 근무했다. 1990년대에는 FSB를 위해 허위 정보 작전을 수행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몇 달 전인 2021년 가을부터 미하일로프는 러시아 언론을 대상으로 FSB의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하며 우크라이나 사건에 대한 FSB의 견해를 홍보했다. 러시아 정보국이 묘사한 대로 전쟁은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상대로 대결하는 상황이며, 우크라이나인들은 단지 서방 첩보원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뿐이다.

푸틴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의 정보기관 역시 초기 소련 정보 전쟁에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러시아와 서방이 직접 대결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크렘린과 그 정보 기관은 1991년 이후 면밀히 연구되지 않았던 몇 가지 주요 국가 안보 문제를 재고하게 됐다. 정보 기관은 유럽 수도에서 추방된 러시아 외교관을 보충하기 위해 유럽 및 기타 인접 국가로의 새로운 러시아 국민 탈출을 활용할 수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소련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이동을 크게 억제하고 소련의 정보를 방해했던 냉전 시대에 저지른 실수를 피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크렘린에게는 또 다른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계급 내에서 규율을 집행하는 방법이었다. 푸틴은 스탈린의 접근 방식을 따라 대규모 숙청과 대량 탄압에 착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조치가 궁극적으로 소련에게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푸틴은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유용한 도구이지만, 소련의 외국 정보 기관이 가장 재능 있는 요원을 잃은 193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노골적인 숙청이 기관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FSB의 해외 정보부 책임자인 세르게이 베세다(Sergei Beseda)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첫 번째 비참한 날 이후 처음에 구금되어 연락이 금지됐었다. 그러나 몇 주 후에 그는 복직했고, 바그너 준군사 회사(용병회사)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이 2023년 6월 반란을 주도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군사 정보부와 FSB의 광범위한 숙청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푸틴 대통령은 숙청에 대한 늘 존재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자신의 정보 서비스에 대해 유연하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으며, 서방에서 입지를 되찾는 데 있어 기관들이 더욱 혁신적이 되도록 장려했다. 한 가지 결과는 사보타주 혐의, 이탈리아에서 러시아 요원의 탈출, 여러 NATO 국가에서의 채용 노력 강화 등을 포함하여 지난 1년 동안 보다 야심찬 해외 작전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 러시아 정부에 기밀 정보를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어 현재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독일 BND 정보기관 요원의 사례가 말해주고 있다.

* 스파이들

러시아 정보기관들은 복귀를 준비하면서, 옛 소련 시절의 또 다른 중요한 교훈, 즉 이데올로기의 전략적 활용을 내면화했다. 1930년대에 모스크바는 마르크스주의 교리를 홍보하기보다는 서구의 결함을 겨냥, 주장을 펼침으로써 많은 서구인들을 소련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당시 소련 요원들은 본격적인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팔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에 그들은 서방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소련을 묘사할 수 있었고, 서구의 이중 잣대와 위선을 강조하고, 대조적으로 세계 열강에 맞서는 지도자를 제시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3년 차 전쟁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보 기관들은 크렘린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편집증과 편견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스파이 활동이 크렘린의 보호를 신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이 푸틴 자신의 권력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푸틴 대통령은 광대한 국가와 해외에 퍼져 있는 자신의 방대한 보안 및 정보 커뮤니티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대 초반 그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스파이 활동 경쟁 개념을 무너뜨려 FSB를 최고 기관으로 만들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Crimea) 병합 이후, 푸틴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중급 장교 몇 명을 감옥에 보내 자신의 정보군을 굴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것이 기관에 대한 크렘린의 통제를 더욱 엄격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은 과거의 실수를 피하고, 정보군을 충성스럽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 당분간 전쟁의 이전 어느 시점보다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통제력을 향상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 푸틴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산업 규모로 자신의 기관을 숙청하는 스탈린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공산당이 KGB를 통제했던 소련 시대와는 달리, 자신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거의 없다. 전쟁에서 러시아의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이러한 일방적인 역학은 푸틴의 스파이가 그를 구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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