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운
교육/과학교육/학술
인류(30)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4/6)[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임성빈 교수  |  msijwd@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10.11  11:31:32
   
▲ 낙양의 용문석굴 ⓒ뉴스타운

동주(東周, Eastern Chou),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그러나 기원전 9세기에 이르자 주 왕조는 차츰 힘을 잃었고 제후들은 독자적으로 힘을 축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770년경 북서쪽에서 이민족이 침입하여 도읍을 점령하자 도읍을 낙읍(洛邑, 지금의 뤄양 또는 낙양/洛陽, Luoyang)으로 옮겼는데 이를 기준으로 그 이전을 서주(西周, Western Chou), 이후를 동주라고 하며 동주시대에는 왕조의 힘이 극도로 쇠퇴하여 제후들 간의 분쟁이 더욱 격화되었다.

이때부터 기원전 453년경까지의 동주시대 전반을 춘추시대(Spring and Autumn period)라고 하고 그 뒤 진(秦, Ch'in)이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시대(Warring States period)라고 하며 이 둘을 합쳐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 이 5백여 년간 백성들은 한없는 전쟁에 시달렸다.

   
▲ 도전 ⓒpomexport.com ⓒ뉴스타운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때부터 중국도 철기시대에 들어가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났고 상공업도 발달하였다. 각국은 다투어 도전(刀錢, knife money: 칼 모양을 본떠 만든 청동화폐임)과 같은 청동화폐를 만들어냈고 큰 도시에는 저자거리(market)가 생겼으며 상품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등 사람들의 생활은 윤택해졌다.

   
▲ 공자 ⓒbeaconschool.org ⓒ뉴스타운

이렇게 상존하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관을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가 등장하였는데 이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 One Hundred Schools)라고 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공자(孔子, Kung Tzu/Confucius)이다. 기원전 551년에 노(魯)나라에서 태어난 그는 매우 현철하고 학문이 깊었으며 예(禮)를 가장 중시하여 예절에 의한 제도를 완비함으로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 시경 ⓒ뉴스타운

그는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예에 따른 도(道, truth)와 덕(德, virtue)을 설명하고 정치적 포부를 논하였으나 이상론(理想論, idealism)으로 여겨지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치에서 물러났다.

그 후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예로부터 내려오던 ‘시경(詩經, Book of Odes)’과 ‘서경(書經, Book of History)’을 재정리하였고 노나라의 역사책인 ‘춘추(春秋)’를 저술하였으며 만년에는 ‘주역(周易, Book of Changes)’에 심취했다고 한다.

   
▲ 춘추(책) ⓒ뉴스타운

공자의 제자들은 3천여 명에 달했는데 기원전 479년 그가 73세가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은 그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논어(論語, Analects of Confucius)’를 편찬하였다. 이같이 공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유가(儒家, Confucian)라고 하고 그들의 사상을 유가사상(儒家思想)이라고 하며 이것이 종교화한 것이 유교(儒敎, Confucianism)로서 후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 자사 ⓒ뉴스타운

그리고 그 후에도 공자의 손자이자 ‘중용(中庸)’을 저술한 자사(子思, Tzu Ssu), 그의 문하생이자 ‘맹자’를 저술하고 성선설(性善說: 사람들은 모두 착한 성질을 타고나지만 모두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착한 성질을 힘껏 배양하고 확충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는 학설임)을 주장한 맹자(孟子, Mencius), ‘순자’를 저술하고 성악설(性惡說: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감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양은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가르침이나 예의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쌓아올려야 한다는 학설임)을 주장한 순자(荀子, Xun Zi) 등의 사상가들이 뒤를 이었다.

   
▲ 맹자 ⓒ뉴스타운
   
▲ 순자 ⓒ뉴스타운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고 서로 만난 적도 있다는 노자(老子, Lao Tzu)는 초(楚)나라 사람이고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시절 사람인지 또는 실존인물인지조차 불확실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이자 ‘장자’를 저술한 장자(莊子, Chuang Tzu)는 확실한 실존인물인데 그들은 유가의 인위(人爲)적인 제도에 의한 통치를 반대하고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천지만물의 생성원리인 도(道)의 뜻을 체득하도록 하여 유약하고 겸손하면서도 강인하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도의 능력으로 이 세계가 스스로 다스려지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다.

   
▲ 소를 탄 노자 ⓒ뉴스타운

즉 일체의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하는 속에서 자유스러운 삶을 추구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도가(道家, Taoist)라고 하고 그들의 사상을 노장사상(老莊思想) 또는 도가사상(道家思想)이라고 하며 이것이 종교화한 것이 도교(道敎, Taoism)로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노자와 공자 ⓒthetao.info ⓒ뉴스타운
   
▲ 노자 도덕경 ⓒ뉴스타운
   
▲ 장자 ⓒ뉴스타운

 

또 묵가(墨家)를 창시한 묵자(墨子, Mo Tzu)는 박애(博愛, philanthropy)를 주장하여 유가의 형식주의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하늘이 모든 사람을 널리 사랑하듯이 사람들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리사욕을 타파할 것을 역설하였으며 절검(節儉, economy)과 근면(勤勉, diligence)을 내세웠다.

   
▲ 묵자 ⓒ뉴스타운

한편 법가(法家, Legalist)의 사상을 대성시키고 ‘한비자’를 저술한 한비자(韓非子, Han Fei Zi)는 한(韓)의 왕족이었는데 유가나 묵가의 주장은 인간사회를 너무 좋게만 본 공론(空論)에 불과하므로 군주는 그런 공론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 묵자(책) ⓒ뉴스타운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세(時世)에 즉응(卽應)하는 법을 제정하여 법치주의(法治主義, legalism)의 원칙에 따라 관리들의 평소의 근태(勤怠)를 감독하여 상벌을 시행하고 농민과 병사를 아끼는 동시에 상공(商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 한비자 ⓒ뉴스타운

나중에 한의 사신으로 진나라에 간 한비자를 보고 시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그를 아주 진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시황제의 심복이자 한비자와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이사(李斯)는 내심 이를 못 마땅히 여기고 시황제에게 참언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한 후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하였다.

   
▲ 한비자(책) ⓒ뉴스타운

춘추시대에는 독립된 소도시 국가가 100여 개나 산재하고 있었으며 전투는 주로 귀족들의 전차전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농업생산력의 향상과 상업경제의 발달에 따라 강대한 영역국가가 형성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동방의 제(齊), 남방의 초(楚), 서방의 진(秦), 북방의 연(燕) 그리고 중앙의 위(魏), 한(韓), 조(趙) 나라를 전국7웅(戰國七雄)이라고 하여 서로 호각을 다투었으며 전투는 주로 활을 가진 기마부대와 서민들로 이루어진 보병부대에 의해 치러졌다.

이 중 진나라에서는 기원전 246년, 조(趙)나라의 대상인(大商人)인 여불위(呂不韋)의 공작으로 즉위했던 장양왕(莊襄王)이 죽고 그의 아들 영정(嬴政)이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처음에는 태후의 신임을 받은 여불위와 노애가 권력을 농단하였으나 기원전 238년, 영정이 친정을 시작하여 노애의 반란을 평정하고 여불위를 제거한 후 울요(尉繚)와 이사(李斯) 등을 등용하여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기원전 230년에서 기원전 221년까지 주를 비롯한 한, 위, 초, 연, 조, 제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셴양(함양/咸陽, Xianyang: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Xi'an) 부근의 함양시임)에 도읍을 정하여 중국 역사상 최초의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 centralism)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

< 저작권자 © 뉴스타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인류(29)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3/6)
인류(28)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2/6)
인류(27)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1/6)
임성빈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이용약관게시물게재원칙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담당자:심광석)이메일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