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26) 인더스(Indus)문명(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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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26) 인더스(Indus)문명(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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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하라파문명(2/2)

인더스의 여러 도시들은 최초의 도시계획대로 철저히 유지되어 나중에 확대된 일이 없었으며 내부구조도 성채와 아랫마을로 나누어지는 등 비슷한 형태였다. 또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는 햇볕에 말린 벽돌이 주로 사용되고 구운 벽돌은 신전 등의 주요 건축물에만 사용되었으나 인더스에서는 일반주거지에도 구운 벽돌이 사용되었으며 그 크기도 정확하게 세로 4, 가로 2, 두께 1의 비율로 규격화되어 있었다.

인더스에서는 도량형(度量衡, weights and measures)도 정확하게 통일되어 있었으며 무게를 잴 때 쓰는 저울추로는 입방체의 돌이 사용되었는데 가벼운 물건에 쓰는 가장 작은 것은 0.856g이었고 다음은 2배, 4배, 8배, 16배 등으로 증가하여 일반적으로는 16배인 13.7g짜리가 가장 널리 쓰였다. 그리고 더 무거운 것들을 달 때에는 그것들의 10배, 100배 짜리들을 사용함으로서 2진법과 10진법을 동시에 적용하였으며 이때 이미 원둘레와 지름의 비인 원주율(圓周率, π) 값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표준화된 벽돌 ⓒ뉴스타운
▲ 저울추 ⓒharappa_com

그러나 인더스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전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성벽은 있으나 너무 낮아서 군사적 목적으로는 적합지 않았고 그보다는 홍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리로 만든 창이나 화살촉이 있었으나 실전용은 못되었으며 개량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왕과 왕의 가족들이 살던 왕궁이나 왕묘는 물론 신전조차 없다.

인더스의 최고권위자는 신관왕으로서 도량형을 통일하고 치밀한 계획 하에 여러 도시들을 건설한 것으로 볼 때 여러 도시를 통솔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지역들처럼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는 아니었다. 시민들은 대부분 무역상이나 숙련공(熟練工, artisan)들로서 같은 직업을 가진 이웃들과 사이좋게 잘 지냈으며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수직적 위계로 차별화되지 않은 인류평등주의(人類平等主義, egalitarianism)가 구현된 사회였다.

▲ 시민상(1) ⓒ뉴스타운
▲ 시민상(2) ⓒ뉴스타운
▲ 시민상(3) ⓒ뉴스타운

인더스문명 초기에는 당시 한창 번영하던 메소포타미아와의 교역이 주로 이란고원을 경유하는 육로로 이루어졌으며 수송수단은 소가 끄는 수레가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2,500년 전 이후에는 육상교통이 쇠퇴하고 수상교역이 활발해졌는데 강은 연안도시들을 연결시켜줄 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해 먼 나라와의 교역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수송로였다.

인더스 강에서는 요즈음도 이용되고 있는 작고 바닥이 편평한 배가 이용되었겠지만 바다에서는 큰 배가 이용되었을 것이며 나침반이나 지도도 없던 당시 바다를 항해할 때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기보다는 육지를 보면서 연안을 따라 항해하거나 육지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상품으로서는 인더스의 특산품인 목면이 특히 인기가 있었으며 그 외에도 금이나 보석으로 만든 팔찌나 목걸이, 상아, 목재, 채문토기 등이 수출되었고 양모나 직물이 수입되었다.

▲ 인더스강의 배 ⓒharappa_com ⓒ뉴스타운
▲ 홍옥수와 금으로 만든 장신구 ⓒ뉴스타운

인더스문명의 쇠퇴

이렇게 번영하던 인더스문명도 기원전 2000년경이 되자 도시들이 흔들리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원인은 홍수설, 지구 건조설, 염해설 등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치 않으며 아마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진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되자 메소포타미아의 교역중심도 자연히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인더스의 경제는 더욱 기울고 도시는 황폐화하여 기원전 1800년경에는 그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물을 성스러이 여기고 목욕을 습관화하며 소를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는 등 인더스문명은 오늘날 인도의 일상생활에 아직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더스에서 바닷길로 메소포타미아에 가려면 페르시아 만을 거쳐야 하는데 이곳 연안에는 마간(Magan)과 딜문(Dilmun)이라는 나라가 두 지역의 교역을 중계하면서 크게 번영하여 메소포타미아나 인더스에는 못 미쳤지만 나름대로 고대문명의 꽃을 피웠었다. 마간은 오늘날의 오만반도 일부 지역으로서 움안나르(Umm an-Nar: 오늘날의 아부다비(Abu Dhabi)임)섬이 중심이었는데 구리가 많이 산출되어 이를 메소포타미아에 수출하기도 하였으나 인더스가 쇠퇴하기 시작한 기원전 2000년경부터 같이 쇠퇴하여 번영의 중심이 딜문으로 넘어갔다.

딜문은 오늘날의 바레인(Bahrain) 섬과 그 연안 일대로서 다양한 과일과 지하수가 풍부하여 ‘낙원의 섬’(일부 고고학자들은 이곳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함)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선박들의 보급기지이자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특산품의 중개무역항으로 크게 번영하였는데 이곳에서 인더스 본토에서는 흔치않은 둥근 모양의 인더스 인장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딜문 역시 인더스가 사라진 기원전 1800년경부터 내리막길로 들어서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

▲ 메소포타미아와의 무역로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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