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27)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1/6)
인류(27) 황허(黃河, Yellow River) 문명(1/6)
  • 임성빈 교수
  • 승인 2017.09.2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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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황허문명의 출현과 삼황오제(三皇五帝, Three Cultural Heroes and Five Kings)

중국에는 서부 청해성(靑海省)에서 발원한 두 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황허는 총길이가 5,460km로서 유역은 건조하여 가뭄의 피해도 입기는 하나 홍수도 자주 발생하였다. 한편 양쯔 강(揚子江, Yangtze River)은 총길이가 6,300km로서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길며 유역의 기후는 고온다습하였다. 이 두 강 유역에서도 고대문명이 발생했는데 주로 황허유역에서 시작하여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황허문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양쯔 강 중류인 팽두산(彭頭山) 부근에서는 지금으로부터 9,000년 전인 기원전 7000년경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하류지역인 하모도(河姆渡, Hemudu) 부근에서도 기원전 5000년경부터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쯔 강 유역에서도 독자적으로 고대문명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 황허문명발상지 ⓒ뉴스타운
▲ 싯누런 물살을 일으키며 흐르는 중국 어머니의 강 황하 ⓒ뉴스타운
▲ 장강이라고도 불리며 삼협을 감돌아 흐르는 양쯔강 ⓒ뉴스타운
▲ 중국 고대의 벼농사 ⓒ뉴스타운

황허 유역에는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지역에서 날아온 황사(黃砂, yellow sand)가 오랫동안 퇴적되어 두께 수십m의 황토층을 형성하였는데 황허가 범람하면 황토가 물을 흡수하여 기름진 흙이 되고 농사를 지으면 풍작이 되었다. 그래서 황허 유역 특히 중류지역 일대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지으며 풍요로운 삶을 누렸는데 이 지역에서는 양쯔 강유역과는 달리 주로 밀과 수수(millet)를 재배하였다.

또 황토는 바람에 잘 날리고 빗물에 쉽게 씻겨 내리는 결점도 있으나 굳으면 매우 단단해지기 때문에 황토로 집을 짓거나 토기도 만들고 경작지주변에 담을 쌓아 동물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황허는 유역에 있는 마을들을 연결시켜주는 수송로역할도 했기 때문에 마을들은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하여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기원전 4500년경부터 황허 중류지역의 남부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토기인 채도(彩陶, colored pottery)를 만들었으며 수혈식(竪穴式) 주거지(지면에서 1m 정도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풀, 나뭇가지 등을 얹은 고대인의 주거지임)에 살면서 수수, 조 등을 재배하고 돼지 등의 가축을 길렀는데 이를 양사오(Yangshao)문화(앙소문화/仰韶文化)라고 한다.

그 후 기원전 2500년경에는 황허 하류지역을 중심으로 골각기와 검은 토기(흑도/黑陶, black pottery)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를 룽산(Lungshan)문화(용산문화/龍山文化)라고 한다. 이 시기보다 조금 앞선 기원전 2800년~기원전 2600년을 전후하여 중국에는 고고학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전설적인 삼황오제가 등장한다. 첫 번째인 복희(伏羲, Fu Hsi)씨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의 모습이었는데 팔괘(八卦, the Eight Trigrams for divination)를 만들어 숫자를 알게 하였고 아직 문자가 없었으므로 새끼로 매듭을 묶어 의사전달을 하도록 하였다.

또 결혼제도도 만들었는데 한 쌍의 사슴 가죽을 예물로 교환토록 하였으며 그물을 사용해서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해서 고기를 먹는 법과 야생동물을 길들여 기르는 방법도 가르쳤다고 한다.

▲ 양사오의 채색토기 ⓒupf_es
▲ 룽산의 검은간토기 ⓒhist_umn_edu
▲ 여와와 복희씨 ⓒ뉴스타운
▲ 팔괘 ⓒ뉴스타운

뒤에 등장한 신농(神農, Shen Nung)씨는 강(姜)족이었는데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소의 모습으로서 나무로 쟁기와 보습, 그리고 가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밭가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소의 머리로 여러 가지 풀 맛을 보고 병을 고치는데 적합한 약초를 찾아내기도 하였고 시장을 열어 물물교환(物物交換, barter)을 하는 방법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을 다스리던 신농씨의 세력이 약해지자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졌으며 그즈음 헌원(軒轅)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반대세력을 규합하여 왕이 되고 신농씨까지도 굴복시켰는데 그가 삼황(문헌에 따라서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또는 泰皇)을 가리키거나 또는 수인(燧人) ·축융(祝融) ·여와(女와)를 지칭하기도 함)의 마지막인 황제(黃帝, Yellow Emperor)이다.

그는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누에를 쳐서 섬유를 뽑아 옷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십간(十干, ten celestial stems), 십이지(十二支, twelve horary signs)를 제정하여 역법(曆法, calendar)을 만드는 한편 바퀴달린 수레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그는 최초로 씨족사회를 통일하여 화하족(華夏族)을 이루었는데 이들이 바로 한족(漢族)의 전신이며 황제는 중국 민족통합의 상징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 신농씨 ⓒ뉴스타운
▲ 황제 ⓒ뉴스타운
▲ 고대중국의 방직술 ⓒ뉴스타운

요(堯, Yao), 순(舜, Shun) 시대

삼황의 뒤를 이은 오제의 첫 번째는 황제의 손자인 전욱(顓頊)이고 그 다음은 그의 아들인 제곡(帝嚳)인데 이 두 사람은 별다른 업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원전 2350년경 왕이 된 제곡의 아들 요는 매우 어질고 지혜로워서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모두 그를 사모하고 따라 해를 보듯 우러러보았다고 한다.

그는 평양(平陽: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임분현(臨汾縣)임)에 도읍을 정했는데 궁전이 지극히 검소하여 띠풀로 지붕을 잇고 추녀는 너덜너덜하였으며 정문의 계단은 진흙을 굳혀 세 층으로 쌓아올렸다고 전해진다.

요임금은 아들이 후계자로 적합지 않자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다고 소문이 난 순에게 두 딸을 주어 사위로 삼고 선위(禪位, abdication: 왕위를 자기 자식이 아닌 덕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하였는데 그때가 개략 기원전 2250년경이었다. 순임금 역시 요 못지않게 나라를 잘 다스려 ‘요순시절’ 하면 백성들이 매우 행복한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으며 아들이 변변치 않자 왕위도 아들이 아닌 우(禹, Yu)에게 선위하였다.

▲ 요임금 ⓒ뉴스타운
▲ 순임금 ⓒ뉴스타운

우의 아버지 곤(鯀)은 요의 명령으로 9년간 치수사업(治水事業, flood control)을 벌렸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요임금은 곤의 아들인 우에게 대신 이 일을 맡겼는데 그는 13년 동안이나 한 번도 집에 들리 지 않고 공적인 일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중국 전체를 개척하여 9개 구역으로 나누고 전국의 하천을 정리하여 물길을 통하게 한 후 못과 호수에 제방을 쌓아 물의 범람을 막았으며 산지를 측량하여 치수사업을 완성하였다.

순임금은 이것을 보고 우를 후계자로 삼게 되었으며 기원전 2070년경 순임금이 죽자 우가 왕이 되었는데 이것이 하 왕조의 시작이다.

우임금 역시 대단한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그가 죽자 아들 계(啓)가 뒤를 이어 이때부터 왕위가 세습되었다.

▲ 우임금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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