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21) 이집트(Egypt) 문명(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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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21) 이집트(Egypt) 문명(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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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신왕국(新王國, New Kingdom)(1/2)

아모세는 귀국하여 아모세 1세로서 제18왕조를 일으켰는데 이때부터 제20왕조가 끝나는 기원전 1070년(?)까지의 약 500년간을 신왕국이라고 하며 고왕국, 중왕국에 이어지는 세 번째의 융성기로서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기였다.

아모세 1세의 뒤를 이은 투트모세(Thutmose) 1세는 서아시아방면으로는 팔레스티나(Palestine)까지 파병하고 남쪽으로도 누비아지방까지 진출하는 등 군사원정을 거듭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으며 그의 대외정책을 계승한 투트모세 3세 시대에는 영토를 최대로 확대하여 오리엔트 전역의 지도적 국가가 되었다.

투트모세 1세는 카르나크의 아몬신전 앞에 아스완의 화강석으로 높이 약 23m, 무게 약 143톤의 오벨리스크를, 뒤를 이은 하트셉수트(Hatshepsut)여왕은 높이 약 30m, 무게 약 325톤의 오벨리스크를 각각 건립하였는데 오늘날 카르나크신전에는 이 외에 나중에 세티(Seti) 2세가 건립한 7m 짜리 소형 등 모두 3개의 오벨리스크가 남아있다.

그리고 투트모세 3세는 카르나크신전에 2개, 헬리오폴리스에 2개 등 모두 4개의 오벨리스크를 건립하였으나 이들은 지금 이스탄불과 로마 그리고 런던과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각각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수도 테베는 나일 강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동쪽 기슭은 상공업의 발달로 화려한 도시로 성장했으며 왕은 화려한 궁전에서 살았다. 투트모세 3세는 한명이던 재상을 두 명으로 늘려 상, 하 이집트의 내정에 전념토록 하였으며 광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하여 강력한 상비군을 두었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국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 당시 승리는 국가신인 아몬의 힘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어 왕이나 귀족은 토지를 기증하고 신전을 잇달아 건립하였으며 신관단(神官團, group of hierarch)은 큰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투트모세 3세 이후 아멘호테프(Amenhotep) 3세 때는 이집트가 가장 안정되고 융성한 시대로서 전쟁은 거의 하지 않고 신전 등의 건축공사에 힘을 기울였으며 서아시아제국과 활발한 교류를 함으로서 국제화가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를 아마르나(Amarna)시대라고 한다.

▲ 아모세 1세 ⓒancientneareast_net ⓒ뉴스타운
▲ 아모세 1세의 전투용 도끼 ⓒ뉴스타운
▲ 아모세 I세 비 ⓒ뉴스타운
▲ 투트모세 1세 ⓒMidland Travel, Egypt ⓒ뉴스타운
▲ 하트셉수트 여왕 ⓒegyptmyway_com) ⓒ뉴스타운
▲ 투트모세 1세와 하트셉수트여왕의 오벨리스크 ⓒ뉴스타운
▲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룩소르) ⓒ뉴스타운
▲ 투트모세 3세 ⓒ뉴스타운
▲ 이스탄불에 있는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 ⓒ뉴스타운
▲ 아멘호테프 3세 ⓒ뉴스타운
▲ 아멘호테프 3세 사원의 거대 초상 ⓒ뉴스타운

뒤를 이은 제10대 왕 아멘호테프(Amenhotep) 4세(재위 기원전 1379년~ 기원전 1362년)는 절대세력을 가지게 된 테베의 아몬 신관단에게 반발하여 아몬을 중심으로 한 전통 신들을 부정하고 태양신 아톤(Aton/Aten)만을 숭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의 텔 엘 아마르나(Tell el Amarna)의 땅에 아톤을 수호신으로 하는 새로운 도시를 조성하여 아케타톤(Akhetaton: 아톤의 지평선이라는 뜻임)이라고 이름 짓고 수도를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자신의 이름도 아멘호테프(아몬신은 만족한다는 뜻임)에서 이케나톤(Ikhenaton 또는 아케나톤/Akhenaton: 아톤에게 이로운자라는 뜻임)으로 바꿨다.

이러한 개혁으로 왕은 정치권력을 되찾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톤을 유일신으로 하는 신앙은 국민들에게 외면당하여 왕이 죽자 아톤신앙은 사라지고 수도가 옮겨간 아케타톤도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예술 분야에서는 고정적이던 전통이 무너지고 개방적인 분위가 도입되었으며 외국과의 문화교류도 이루어져 사실적이고 밝은 성격의 아마르나 예술이 등장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아케타톤 유적지 ⓒkuthumadierks_com ⓒ뉴스타운
▲ 아케나톤(아멘호테프 4세) ⓒ뉴스타운
▲ 태양신 아톤에게 기도하는 아케나톤왕과 왕비 네페르티티 ⓒhomestead_com

이케나톤의 뒤를 이은 제11대 세멘크카라(Smenkhkara)는 3년 만에 죽고 제12대 투탕카멘(Tutankhamen), 정확히는 투트 앙크 아멘인 그는 9세이던 기원전 1361년(?)에 왕이 되었는데 그 전에 이미 안케센아멘(Ankhesenamen)과 결혼을 했다.

그의 이름은 처음에는 아톤 신앙을 나타내는 투트 앙크 아텐이었으나 즉위 4년째에 아몬 신앙을 나타내는 투트 앙크 아멘으로 바꾸고 수도도 아마르나에서 다시 테베로 옮겼다. 어린 그가 왕 노릇을 하였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재상 아이(Ay)와 노장 호렘헤브(Horemheb)에게 있었으며 그는 왕이 된지 9년 만에 18세의 어린나이로 생을 마감했는데 사망원인이나 재위시의 업적에 대한 것은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그의 왕묘에서 발견된 눈부시게 아름다운 황금마스크와 화려한 부장품들로 유명해졌다.

그의 부장품으로는 조각상, 왕이 사용하던 전차나 무기, 침대나 의자와 같은 가구, 포도주단지, 장난감 외에 과일바구니, 구운 오리고기, 빵, 케이크 등이 든 음식물 상자와 함께 한 다발의 수레국화도 있었다.

그의 사후 재상이던 아이가 전 왕비 안케센아멘과 결혼을 하고 왕이 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호렘헤브도 왕이 되었으나 후사가 없자 기원전 1307년(?) 군인 출신의 람세스(Ramesses/Ramses) 1세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서 제18왕조는 끝이 나고 제19왕조가 시작되었다.

▲ 투탕카멘왕의 황금마스크 ⓒ뉴스타운
▲ 안케센아멘 ⓒglintofgold_org ⓒ뉴스타운
▲ 아이 ⓒKeith Schengili-Roberts ⓒ뉴스타운
▲ 아툼에게 봉납하는 호렘헤브 ⓒegyptarchive_co_uk ⓒ뉴스타운
▲ 투탕카멘왕의 소형관 ⓒ뉴스타운
▲ 투탕카멘 왕좌 ⓒMidland Travel, Egypt ⓒ뉴스타운
▲ 태양의 배 ⓒ뉴스타운
▲ 미라용 단지 ⓒ뉴스타운
▲ 부장 인형 ⓒ뉴스타운
▲ 부장 미술품 ⓒ뉴스타운
▲ 기타 부장품-1 ⓒ뉴스타운
▲ 기타 부장품-2 ⓒ뉴스타운
▲ 기타 부장품-3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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