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15) 메소포타미아 문명(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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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15) 메소포타미아 문명(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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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아카드(Akkad) 왕국

한편 수메르의 북쪽인 키시(Kish)에는 수메르 인들보다 조금 늦게 셈어(Semitic: 히브리어, 아라비아어 등이 셈어에 속함)를 쓰는 셈족(Semite)의 한 갈래인 아카드인들도 도시국가를 만들었다. 아카드는 사르곤 1세 대왕(Sargon the Great)때에 도시국가들을 통일하고 오늘날의 시리아지역에 아가데(Agade: 아카드와 같은 뜻이며 아직까지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고 있음)를 수도로 하여 왕국을 수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원전 2340년부터는 수메르 도시국가들까지 모두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함으로서 그를 사루킨(Sharru-kin: 진정한 왕(true king)이라는 뜻임) 또는‘아가데의 신(神, the god of Agade)’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통용어도 수메르어에서 셈어로 바뀌게 되었다. 사르곤대왕은 기원전 2334년부터 기원전 2279년까지 재위 56년간 아카드와 수메르는 물론 아나톨리아와 엘람(Elam: 지금의 서부 이란)까지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관료를 임명하는 등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 centralism)를 확립하고 도량형(度量衡, weights and measures)을 통일하기도 하였다.

▲ 메소포타미아 고지도 ⓒ뉴스타운
▲ 사르곤 1세 대왕 ⓒ뉴스타운
▲ 사자상 저울추 ⓒBritish Museum

그의 후계자가 된 두 아들은 별로 신통치 못하여 변두리지역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결국은 둘 다 암살당하고 말았지만 대왕의 손자인 제4대 왕 나람신(Naram-Sin)은 기원전 2254년에서 기원전 2218년까지의 재위기간 동안에 반란을 진압하고 사르곤시대의 제국을 회복하여 ‘사계(四界)의 왕(King of the four quarters)' 으로 불렸고 또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아가데의 신’으로 신격화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국력이 점점 쇠퇴하여 기원전 2150년경 이란고원에서 온 구티(Guti)족에게 멸망당했다. 아카드는 수메르문명을 셈화하여 후대에 전달하였으며 특히 예술면에서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사르곤왕으로 보이는 청동제 두부상(頭部像, bronze head)과 나람신왕의 전승비(戰勝碑, victory monument)가 유명하다.

▲ 나람신왕의 전승비 ⓒ뉴스타운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

아카드가 멸망하자 라가시의 왕 구데아(Gudea)가 수메르문명을 다시 부활시켜 신전과 운하를 건설하고 많은 종교적 문서를 남겼으며 빈민과 과부의 보호, 여자의 상속권 확인 등의 조치를 했는데 이 시기를 기르수 왕조(王朝, Girsu dynasty) 또는 제2왕조라고 한다. 뒤를 이어 기원전 2112년 우르의 우르남무(Ur-Nammu)왕은 우르 제3왕조를 세워 수메르문명의 번영을 되찾았는데 이를‘수메르 르네상스(Sumerian Renaissance)’라고 하며 공문서는 다시 수메르어로 작성되기 시작하였으나 통용어로는 셈어가 그대로 사용되었고 수메르어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우르 제3왕조는 5대 왕까지 100여년을 지속하다가 기원전 2,004년 엘람인(Elamite)들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 기르수 왕조의 구데아 왕 ⓒ뉴스타운
▲ 우르남무 왕 ⓒmorganlibrary_org

당시까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인과 아카드인이 각축을 벌렸으나 이 이후에는 타민족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기원전 1595년까지의 시기를 구 바빌로니아(Old Babylonia)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서(西)셈족 계열인 아모리인(Amolite)들이 수립한 이신(Isin)이 우세하였고 한때는 라르사(Larsa: 지금의 도시 이름은 신카라(Sinkara)이며 역시 아모리인들이 세운 국가임)가 이신을 정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763년에 같은 아모리인들이 세운 바빌론 제1왕조의 6대 왕 함무라비(Hammurabi, 재위 기원전 1792년~ 기원전 1750년)가 이신과 라르사는 물론 주변지역을 모두 평정하여 엘람에서 시리아와 가나안(Canaan)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수도 바빌론에 성벽을 쌓고 바빌론의 수호신이던 마르두크(Marduk)를 메소포타미아 최고의 신으로 승격시켜 종교를 통한 국가통일을 도모하는 한편 왕은 마르두크의 대리인으로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확립하였는데 이때부터 바빌론은 성(聖)스러운 도시(holy city)로서 1,000년 이상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는 또 아카드어를 국어로 정하고 역(曆, calendar)을 통일하였으며 282조(條, article)로 된 함무라비법전(法典, the Code of Hammurabi)을 제정, 공포하였는데 그 안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잘 알려진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lex talionis)의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 함무라비 왕 ⓒ뉴스타운
▲ 일부 복원된 바빌론시 ⓒfanaticus_org
▲ 마르두크 ⓒ뉴스타운
▲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비석 ⓒdaviddfriedman_com
▲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비석의 상단부 ⓒclendening_kumc_edu
▲ 비석 뒷면에 새겨진 함무라비 법전 ⓒphilo_ucdavis_edu

카시트(Kassite/Kossaean) 왕국

그 후 바빌로니아왕국은 점점 더 번영하여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으나 약 200년이 지난 기원전 1595년에 무르실리(Mursili) 1세가 이끄는 히타이트(Hittite: 현재 터키의 동부에 해당하는 시리아 북쪽에 살던 인도 유럽계의 민족 또는 그들이 세운 나라이름임)에게 멸망당했으며 바빌로니아는 이란의 산악지대에서 온 카시트인(이들 역시 인도 유럽어족에 속함)들이 차지하고 카시트왕조를 수립하였다. 카시트는 바빌론을 카르두니아시(Kar-Duniash)로 개칭하고 계속 수도로 사용하였으며 이 도시는 여전히 서아시아의 성스러운 도시로 존재하였다. 카시트의 왕들은 아시리아의 왕족과 인척관계를 맺었고 사람들은 바빌로니아인들에게 동화되어 갔다. 이 시기는 문화적으로 빈약하였으며 바빌로니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로서 서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 시리아와 가나안은 독립하였고 아수르(Assur/Ashur)의 사제(司祭, priest)들은 스스로 아시리아(Assyria)의 왕이 되었다. 카시트왕조는 기원전 1155년에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했다.

▲ 전성기의 히타이트 영토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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