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제 시행착오 더 이상 용납 안 돼
통일문제 시행착오 더 이상 용납 안 돼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15.01.2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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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게 핵이냐 파멸이냐 양자택일을 요구 할 때

▲ 김일성이 1946년 6월 14일 '북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 제정당 사회단체회연석의에서 [태극기]와 소련적기를 걸어 놓고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타운
2015년 새해 들어 첫 번째 화두는 '통일'이다. 대한민국이 1992년 2월 19일 남북 당국이 서명 발효시킨 남북합의와 비핵화선언에 입각하여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전제로 상호신뢰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점진적이고 실용적인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북한은 흡수통일에 대한 막연한 우려로 체제통일 제도통일을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우리민족끼리 자주통일이란 궤변에 매달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달성해야 할 통일의 모습

대한민국헌법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 돼 있으며 헌법 제66조③에서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하여 평화통일정책 수립시행의 의무를 대통령에게 지우고 있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적기본질서에 입각'한다는 대전제를 벗어나는 어떤 통일도 있을 수 없으며, 대통령은"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고유책무를 해태(懈怠)하거나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달성해야 할 통일은 8,000만 동포가 각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최대로 보장되고 자유 민주적기본질서 아래 다함께 행복과 번영을 누리는 세계 초일류국가를 건설하는 통일이어야 한다.

소련군정의 개 김일성 행적을 돌려놓는 게 통일

1945년 9월 19일 소련군 수송선편에 김영환(金英煥)이라는 가명으로 원산항으로 입국한 소련군 한인정찰대 대위 김성주(金聖柱,33세)는 소련점령군 정치부 지시에 따라 적화준비를 위해 암약하면서 10월 8일~9일 개성에서 박헌영을 만나 평양에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 설치를 합의하고 10월 10일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을 설치했는바 이날이 오늘날 '조선노동당창건일'로 둔갑하여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소련점령군 지원과 배후조종으로 공산당조직 장악에 성공한 김영환(김성주)은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개최 된 '소련해방군환영군중대회'에 소련점령군사령부 정치장교 메프레르 중좌와 소련군통역장교 姜미하일 소좌에 이끌려 나와 '김일성 장군'으로 소개 되면서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 후 오늘날까지 김일성으로 행세를 한 것이다.

김일성은 1945년 11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3차 확대집행위에서 책임비서로 선출된데 이어서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회의' 위원장에 취임 행정권까지 장악한 후 1946년 6월 14일에는 소위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 대남 위장평화공세의 기틀을 마련하고 1948년 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을 창설 총사령관이 되면서 당.군.정 전권을 틀어쥠으로서 완벽한 소련괴뢰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1945년 10월 10일 당 창건, 1946년 2월 8일 인민위원회 출범, 1946년 6월 14일 남북합작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 심지어는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창설 때에도 김일서이 태극기 아래서 애국가를 제창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통일은 소련 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위장)대위출신 소련점령군의 개 김일성 일당이 1948년 2월에 태극기와 애국가 금지결의를 하고 7월 1일 '공화국헌법'제정기념 가두행진에 선을 보인 뒤 7월 8일 소위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를 끌어내리고 인공기를 걸기 이전의, 태극기아래 애국가를 제창하던 그 시대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역대정권의 오판과 과오를 되풀이 말아야

● 한미양국의 오판

★ 1991.9.27: 부시 미국대통령 한반도 전술핵 철수발표

★ 1992.1.7: 한미양국 국방부, 한미연합사 T/S훈련 중지선포

★ 1993.11.11:김영삼 T/S훈련 영구중단

★ 1994.10.21: 미북 제네바핵합의 직후 파탄

★ 2003.8.27~2008.12.11: 6자회담중단

★ 2008.10.12: 국제테러지원국명단 삭제

● 남쪽 얼간이들 오판과 실책

-1991.11.8: 노태우 대통령 비핵화방침선언

-1991.12.18: 노태우 대통령 한반도 핵부재 선언

-1991.12.31: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 비핵화합의 가서명

-1992.1.14: 판문점에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문본 교환

-1992.2.19: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 동시발효

-1993.3.19: 김일성 환심사기 미전행장기수 이인모 북송

-1995.6.25: 쌀 15만t지원 1차분 2000t 출항 인공기계양 굴욕

-2000.6.15: 김대중 5억$ 뇌물 정상회담

-2007.10.4: 노무현 14조(140조?) 조공(朝貢)약속

※ 김대중 노무현 70억 $ 북한 핵 개발비 전용

● 북한의 간계와 김정일 김정은 핵실험

-1992.1.31: IAEA-북한 간 핵안전협정체결

-1992.5.23: IAEA임시사찰단 14개 신고시설 특별사찰

-1992.6.10: 북한 IAEA사찰거부 협상결렬

-2006.10.9: 김정일 1차 핵실험

-2009.5.25: 김정일 2차 핵실험

-2013.2.12: 김정은 3차 핵실험

※ 2015.1.10: 4차 핵실험 잠정중단 조건으로 한미합동훈련중단 요구

김정은 위장평화공세 간계를 분쇄해야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대남공작 및 선전선동기구를 중심으로 관영매체를 총동원하여 제도통일, 체제통일을 극력 반대한다면서 소위 "우리민족끼지 자주통일 대통로를 열자."는 김정은 신년사 관철을 부르짖으며 위장평화공세에 광분하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사상과 제도를 초월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입각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기 위해 ▲최고위급접촉재개, 부문별회담, 최고수뇌회담 개최용의 표명 ▲대화와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평화분위기 조성이 필수 ▲대북삐라살포금지와 대규모합동군사훈련중단을 요구함으로서 내외적 압박국면전환과 새로운 도발 및 전쟁준비 은폐와 동시에 한미이간 남남갈등 조장 등 동시적인 다중효과를 노리고 있다.

어쨌든 한반도 안정과 대한민국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된 북핵문제를 간과, 방관 방치한 상태에서 평화타령이나 통일논의는 무의미 하다. 북한의 합의위반과 약속불이행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지 않는 한 어떤 합의도 약속도 무의미하다. 천안함폭침 및 관광객사살 등 도발과 범죄에 대한 시인 사과가 전제되지 않는 한 어떤 접촉도 회담도 의미가 없다.

통일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지구상 최장기 분단과 최장기 휴전이라는 기록을 가지게 된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생각할 수 있는 통일방안은 '자유민주적지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외에는 어떤 대안도 없음에 반하여 북한 김정은은 통일과정에서 자연히 전개 될 수밖에 없는 제도통일 체제통일을 극력반대하면서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입각한 자주적통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김정은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이념자체가 있을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김정은이 생각하는 우리민족은 '한반도전체 8,000만 중에서 적화통일에 반대 또는 지장이 되는 반민족적반동세력과 내전 또는 전쟁시 김정은에 등을 돌릴 북한 내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을 제외한 김정은 결사옹위 총폭탄과 그 가족 등 소수지지세력 만의 민족'이다.

이에 대하여 김정일은 1995년 말 북한 당군정고위간부를 대상으로 "현 시기에 출로는 전쟁밖에 없다. 20%가 행복해진다면 80%가 희생도해도 좋다"고 한바 북한 인구의 20%라면 북한 내 특권 및 수혜계층 500만이 '우리민족'이며 여타1,800만은 '희생의 대상'에 불과 하단 뜻이 되며, 남한 내에 북한에 부역(附逆)하는 일부 맹종분자를 포함한다 할지라도 우리민족끼리 대상은 불과 몇 백만에 불과하여 여타는 피정복 노예집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떠벌인 소위 자주통일이란 "미군을 철수시킨 후 남북이 판 갈이 싸움을 통해서 적화통일을 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통일관에 입각하여 김정일은"통일을 하자면 판 갈이 싸움이 불가피하다.(2010.10)"고 했는가하면, 김정은은"풀뿌리를 캐어 먹어도 전쟁준비를 완성 할 각오를 가지라(2010.12.30)"고 주장한 바 있다. 전쟁이나 폭력혁명을 통한 적화통일이 북한의 변치 않는 통일노선인 것이다.

특히 한반도 안정과 통일의 필수조건인 북 핵과 관련하여 북한은 외무성을 통해서 비핵화포기선언(2013.1.23)을 한데 이어서 3월 당중앙전원회의(2013.3.31)에서 경제개발 및 핵개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이를 헌법에까지 명시함으로써 핵 불포기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도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북핵 불능화조치를 전제로 북한 정권을 교체 후 흡수통일을 추진하는 것 밖에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음을 솔직히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김정은에게 파멸이냐 핵이냐, 대결이냐 공존이냐 분명한 선택을 요구해야 한다. 김정은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은 1992년 2월 19일 약측이 하브이 발표키로 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을 실천하는 것 외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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