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듣기에는 음식이 남는 사람과,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그냥 연결만 해주면 되는 간단한 사업 같지만 가만히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남는 음식은 아무래도 기간이 조금 된 음식들이다. 따라서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으로부터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로 전달되는 시간간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자칫 조금만 늦어버리면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자칫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버리기 쉽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재정되어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조금이 나온다고 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는 액수만으로 생활이 충분히 해결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제도상의 허점으로 실제로는 어려움에 처해있는데도, 여러 가지 이유로 기초생활보장법의 적용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독거노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분명히 호적상에는 생활능력이 있는 성인인 자식이 있다. 그래서 기초생활보장법의 수혜자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아들과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순전히 자신의 힘과 이웃의 도움만으로 홀로 살아야 하는 노인들이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많다. 제도상으로 아직도 고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보장체계가 완벽해 진다고 해도, 여전히 그늘에 남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항상 문제는 법보다 먼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발전된 사회에서도, 제도가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전씨 아저씨는 관악사회복지의 푸드뱅크 담당실무자이다. 물론 그가 혼자서 푸드뱅크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푸드뱅크는 상당히 큰 조직이다. 지역별로 나오는 음식을 수거하고, 상하지 않도록 재빨리 대형 냉장고에 저장을 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지역별로 소요량만큼 분배를 한다. 그러면 지역담당 책임자들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께 직접 배달을 해 드린다. 무론 무료이다.
그러나 그런 일상적인 작업이 아닌 경우는 대개가 그의 몫이다. 그는 오래된 1톤짜리 냉동차 한대로 전국을 날아다닌다. 마음씨 좋은 시골아저씨 같은 그가 날아다니는 이유는, 물론 음식이 조금이라도 더 싱싱한 상태로 최종목적지에 도달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때로는 멀리 지방에서 국수 면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올 때도 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냉국수는 얼마나 좋은 먹거리인가!
그런 날 김씨 아저씨는 밤새 운전을 한다. 칠흑 같은 새벽에 국수를 가져가라는 곳 앞에 도착해 차를 세워놓고 졸다가, 아침이 되기가 무섭게 국수를 싣고 서울로 올라온다. 냉장고에 넣는 걸로 그의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적극적인 성격은 음식을 나누어주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누어 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식사시간이 지나기 전에.
지역에 음식을 배달하는 역할은 대개 ‘햇살’회원들의 몫이다. 인근 고등학교의 동아리 회원들이 주축이 된 그들은, 그 지역 골목골목을 훤히 꾀고 다니면서 정성껏 음식을 배달한다. 플라스틱 그릇을 보자기로 조심스레 싸서, 어제 갖다드린 것과 교환해서 가지고 온다. “할머니 오늘은 많이 안 드셨네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병원에 모셔다 드릴까요?” 그래서 그들은 단순한 배달담당에 그치지가 않는다.
관악구의 인구는 53만 명, 이제는 재개발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관악구를 떠났다. 그러나 아직도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역시 관악구는 이들의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 또한 결집되고, 조직화 되어 있다. 푸드 뱅크에서 이렇게 음식물을 지원하는 사람들만 1200명이라고 한다. 빨리 살기 좋은 사회가 되어서, 푸드 뱅크가 도울 대상자가 줄어야 하는데, 좀처럼 줄지가 않는다.
전씨 아저씨는 항상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닌다. 누가 선물로 준거라고 한다. 한 일년쯤 꼭 같은 야구 모자를 쓰고 다니더니 언젠가 모자가 바뀌었다. 항상 꼭 같이 성실하고 항상 겸손하기만 한 그에게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패션감각이 나아졌다고 놀리면 그는 “일년쯤 쓰니까 모자가 땀에 절어서...” 라고 변명을 하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사실은 그 속의 무엇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관악사회복지의 운영위원회가 끝나면 우리는 가끔 이차로 저녁 겸 술을 마시러 간다. 우리가 잘 가는 단골음식점이 몇 군데 있다. 지역에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니 우리 일행들을 무척 반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기는 모습이 부담스럽다. 우리의 제법 상당한 숫자에 비해 우리가 올리는 매상은 빈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문을 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결국 대략 열명가량이 둘러않아서 김치찌개 2인분과 공기 밥 열개, 삼겹살 삼인 분 정도를 주문한다. 물론 소주는 몇 병을 시켰다. 모두가 깡 술을 먹는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갓 사회복지학과 휴학중인 아가씨 간사부터, 쉰 살 김씨아저씨까지 예외가 없다. 김치하나 주워 먹으면서 눈치를 본다. 그런데 이게 1980년대가 아닌 2000년대의 모습이다.
한두 번 경제적으로 다소 여유가 있는 내가 쏘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우선 사람들이 반대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건 옳은 일이 아니었다. 이들 모두가 잘 먹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로 아주 기분 좋은날이 있으면 다소 비싼 맥주 집에 간다. 주인에게서 공짜로 얻은 새우깡을 아껴먹으며 생맥주를 마시는 날은 다들 기분이 좋다.
김씨아저씨는 더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날 그는 전날부터 시작한 힘든 작업을 마쳤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작업을 하느라고 운영위원회가 끝날 무렵에야 저녁도 먹지 못한 채로 회의실에 겨우 들어왔다. 온몸이 땀에 절어 있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빈속에 맥주를 마셔대는 그의 배는 고플지라도 그의 마음은 든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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