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브라질에서 2주간 개최됐다. COP30에는 194개국이 참석했지만, 역사적으로 ‘세계 최대 화석 연료 생산국’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불참했다.
심각한 일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13억 에이커(5,260,913.35km2)에 달하는 연안 해역을 새로운 석유와 가스 시추에 개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COP30 회의 자체는 좌초와 파국 직전의 상황 끝에, 회원국들은 더 나은 (혹은 적어도 덜 파괴적인) 미래를 향한 ‘작은 발걸음’(baby steps)이라는 표현으로 간신히 합의에 도달하기는 했다.
아메리칸 엠파이어 프로젝트의 공동 설립자 이자 냉전 시대 미국의 승리주의에 대한 역사서인 ‘승리 문화의 종말’(The End of Victory Culture)의 저자인 톰 엥겔하르트(Tom Engelhardt)는 “최종 합의안에는 ‘화석 연료’라는 단어조차 포함되지 않았고, 화석 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명시적으로 재확인하는 내용도 없어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만족했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미 백악관 대변인은 해당 회의에 대한 답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 중인 화석 연료 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전 세계에 강력한 모범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히 밝혔다. 다른 나라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모호한 기후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미국의 경제와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석 연료만이 ‘국익의 핵심’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기후 위기 운운하는 것은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소의 트럼프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인류가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론 핵무기이다. 인류는 스스로와 이 지구를 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생각해 낸 놀라운 생명체임에 틀림없다는 게 엥겔하르트의 지적이다.
2025년 1월20일(현지시간) 두 번째로 취임한 전직 부동산 왕이자 모든 것은 ‘거래’(deal)이라고 주창해온 트럼프는 역대 대통령 후보 중 최고령이었고, 만약 임기를 마친다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될 것이다.
심지어 노령의 조 바이든이 퇴임할 당시보다도 나이가 많을 것이다. 2기 임기 11개월 동안의 언행을 볼 때, 트럼프가 과연 퇴임할지는 불명확하다. 엥겔하르트는 “트럼프에게 충분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그는 사실상 지구를 파괴하는 두 가지 방식 모두를 지지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트럼프는 또 1992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이 다시 핵무기 실험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최근 발표했으니, 분명 트럼프는 기후 위기와는 별도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상하고 기묘한 인간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인 핵무기와 관련, 최초이자 마지막 원자폭탄 두 발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지 80년이 지난 오늘날, 핵실험이나 핵 대피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마지막 지상 핵실험은 1960년대에, 마지막 지하 핵실험은 1992년에 실시되었다. 이제는 핵무기나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지구 파괴적인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정치적 도구의 하나로 작용하는 게 핵무기일 것이라는 좀 안일한 생각도 있기는 하다.
현재 9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핵무장국인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현재 전쟁 중이라는 사실, 한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사용을 암시적으로 위협했던 사실, 그리고 지난 5월 핵무기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약 170개의 핵무기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대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핵전쟁을 막았다고 주장했던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또, 대규모 핵전쟁이 지구에 “ 핵겨울”을 초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지구 자체가 황폐화 될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한편, 미국은 1992년 이후 핵무기 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다시 핵실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다른 나라들이 핵실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국방부(혹은 전쟁부)에 우리도 동등한 자격으로 핵무기 실험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 과정은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은 시작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현재 다른 어떤 나라도 실제로 핵실험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비록 러시아가 핵무기 운반 시스템 시험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는 미국 군이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핵실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1990년대 이후 공개적으로 핵무기 실험을 한 나라는 북한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12,000개 이상의 핵무기 중 5,00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 핵무기들은 전 세계 해양을 누비는 핵잠수함 (현재 차세대 핵잠수함 건조 중), 육상 미사일 격납고, 또는 저장 시설에 보관되어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군이 앞으로 30년간 미국의 핵무기를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무려 1조 7천억 달러(약 2,503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숫자가 틀린 게 아니다. 게다가 앞으로 더 많은 핵무기를 생산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과연 이스라엘이나 미래의 이란, 혹은 현재의 북한이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는 분명히 그렇게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와는 달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핵무기 감축, 더 나아가 핵무기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 있는 시위운동은 찾아볼 수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종말의 잠재적 형태이자 궁극적인 파괴 수단으로서의 핵무기는 (물론 핵무기를 생산, 취급, 저장하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시되어 왔다.
인류의 기묘한 역사와 지구상에서 점점 늘어나는 핵무기를 고려해 볼 때, 그리고 80년 동안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가 다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정으로 확신은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스스로와 지구를 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생각해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열 상승은 이미 지구상에서 매분 한 명씩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 이는 매년 수백만 명에 달하는 수치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에 관해서는, 과거 핵전쟁과는 달리 경보 사이렌이나 대피소도 없고, ‘무기’가 무기고에 저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기묘한 방식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생산되고 폭발하는 것이다. 또 놀랍게도, 아직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기후 변화라는 형태의 전쟁은 분명히 진행 중이다. 인간이 생각하든 안 하든, 각자는 지금 삶 속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세상의 종말에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지구의 물은 뜨거워지고 수위는 상승하고 있으며, 산불은 더욱 맹렬 해지고, 홍수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으며, 지구 기온은 분명히 불안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1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따뜻한 시기였고, 2024년은 역대 가장 따뜻한 해였으며, 2025년은 역대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따뜻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핵전쟁으로 인한 궁극적인 파괴와는 달리, 기후 변화는 비록 느린 속도로 진행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 기후 위기(전쟁)는 심화되는데, 헤드라인 뉴스는 없다. 인간의 무감각 ?
그런데 정말 소름 끼치는 점은, 주류 언론이나 TV 뉴스를 보면 기후 변화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는 우리가 바로 이 순간,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분명히 종말론적인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정치적 진영논리에 휩싸여, 기후 위기는 안중에도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행위들에 비하면, 기후 변화는 기껏해야 부차적인 뉴스일 뿐이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만 보도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하는 모든 행동, 심지어 코를 파는 것, 더 나아가 백악관에서 뉴욕 차기 시장인 ‘조란 맘다니’와 만나는 것까지도, 내란의 끝판왕이라 할 김건희, 윤석열 관련 소식은 매일 전파를 타고, 신문지 인쇄 잉크는 매일 많은 양이 소모되고 있다. 매일 밤낮으로 겪고 있는 ‘세계적인 재앙’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엥겔하르트는 “언젠가 역사가들이 이 지구에 여전히 존재한다면, 도널드 J. 트럼프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암울한 의미에서 이 기괴한 시대의 섬뜩한 경이로움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아마겟돈에 직면한 대통령이 화석 연료 생산을 위해 더 많은 땅과 바다를 개방하는 것부터 재생 가능한 무탄소 에너지 생산과 관련된 모든 것을 중단하는 것까지, 아마겟돈을 자초하는 모든 일을 했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조롱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오늘 태어나는 아이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기후 재앙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아이에게는 몸을 숨기거나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지도자들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3억 에이커에 달하는 연안 해역을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에 개방하기로 한 결정, 중국이 상당수의 신규 석탄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의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 어떤 활동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배출하는 인간 활동을 지속하고 심지어 강화하려는 의도, 그리고 모든 종류의 군사 활동, 특히 전쟁을 일으키려는 의지까지 모두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COP30 기후 정상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 최대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이자 모든 종류의 친환경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와 만났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ARAMCO)는 여전히 거대 석유·천연가스 생산국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루어진 만남이 기후 변화를 통제하려는 모든 노력을 무산시키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겠다는 암묵적 약속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엥겔하르트는 이같이 질문하고 있다.
지구는 기후 변화라는 측면에서 핵전쟁과 같은 느린 속도의 재앙을 겪고 있는 것인데, 이는 거의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이상한 일일까 ?
고(故)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몇 명이 죽어 나가는 것보다 오늘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급락하거나 급증하는 소식은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라며 현실을 개탄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을 직간접으로 위협하고 있는 이상기후, 기후 위기, 자연재해 등에 대해서는 ‘어쩌다 한 번’ 뉴스 데스크에 오르는 현실은 이상해도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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