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들이 먼저 둘러 본 곳은 익산에서도 '쌍릉'이었습니다. 익산 톨게이트에서 10분 정도 차를 몰고 달려가다 보면 오른쪽에 '쌍릉'이라고 적혀 있는 초라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간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큰 무덤 2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모양이라고 해봤자 우리들이 늘 보아왔던 그런 무덤인데 크기만 3~4배 정도 큽니다. 두 개의 무덤 사이에도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약간 작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큰것을 무왕의 무덤이라고 하고 작은것을 선화공주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무왕은 백제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의 아버지입니다. 젊은 시절엔 '서동' 이라고 불렸던 무왕은 신라 경주로 가서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의 방을 찾아 밤마다 무얼 안고 뒹군다네' 하는 노래를 퍼뜨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화공주가 궁궐에서 쫒겨나게 되자 공주를 백제로 데리고 와 살았다는 겁니다. 선화공주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입니다. 그러니까 무왕은 진평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고, 진평왕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선덕여왕에게는 제부가 됩니다.
선화공주 이야기는 꾸민 얘기?
처음 쌍릉을 보았을 때는 참 신기했습니다. 전설로만 들어오던 선화공주의 무덤이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던 거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모든 게 거짓입니다. 선화공주는 원래 상상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런 소문이 퍼졌던거지요.
백제의 무왕이 기가 막힌 지략으로 아름다운 신라의공주를 차지 했다는 것이 그리 나쁜 얘기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되면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사위가 됩니다. 백성들 사이에 퍼져 있는 신라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시키고, 신라와 공동으로 북방의 고구려에 대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소문이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겁니다.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꾸며낸 것이라면 당연히 쌍릉도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일 리 없습니다. 사실 무왕의 무덤은 충남 공주에 있습니다. 그런데 익산에 쌍릉의 전설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왕이 익산에 각별한 정성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무왕은 익산을 제 2의 수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용화산 밑에 미륵사를 창건하였고 거기에 미륵사석탑을 세웠습니다. 옛날 임금들이 수도를 옮기려고 했던 이유는 언제나 민심을 새롭게 하고, 기득권을 쥔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입니다.
무왕이 사비(부여)가 아닌 익산에 힘을 쏟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지금도 익산에는 '왕궁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무왕이 익산을 제2의 수도로 생각하고 왕궁을 세우려 했기때문입니다. 익산에 세워진 미륵사는 백제인들을 미륵신앙으로 묶어내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왕 자신은 미륵의 화신으로 자처하면서 절대 왕권을 확보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미륵사 터에는 '사찰'이 아니라 거대한 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보고,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미륵사석탑을 쳐다보고 돌아 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익산은 보석의 도시라고 하더군요. 물론 거기 가서 들은 얘기입니다. 익산 톨게이트 바로 옆에 '보석박물관' 과 '화석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 월 화요일은 문을 닫는 답니다. 문 닫힌 박물관 앞에서 관람료가 3천원인 것만 확인하고 그냥 돌아서야 했습니다. 좀 아쉬웠습니다. 인천 강화에서 익산까지 내려갔는데 헛탕을 쳤습니다.
익산에서 올라오는 길에 부여를 들렸습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천안 - 논산 구간 고속도로를 통해서 올라오다 보면 서논산 톨게이트가 있습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20분 정도 가면 부여군입니다. 백제가 망할 때만 해도 15만 2300호(약 76만 명)가 살았다는 거대 도시였는데 지금은 충남에 속한 일개 '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들른 곳은 낙화암입니다. 백제의 여인들이 당나라군들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서 몸을 던진 곳입니다. 아무리 큰 슬픔도 시간이 가면 잊혀지는가 봄니다. 망국의 설움이 아무리 크다해도 세월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제 자신도 뭔가 좀 엄숙한 표정을 짓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들렸다 가는 관광객이 슬픈 사비성의 역사를 떠올리기엔 1,300년의 세월이 너무 멀었습니다. 그날 따라 비가 내리는 짓궃은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집 사람과 아이들도 다리가 아프다고 불평입니다.
가서 봐야 할 곳이 몇 군데 더 있었지만 그냥 떠나왔습니다. 부여를 떠나 오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를 몰라보고 '누구더라' 하면서 머리를 갸웃거릴때의 그 기분입니다.
다리가 아프다는 우리 가족들은 차를 타자 힘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기야 아내에게는 친정집, 아이들에게는 외갓집인데 얼마나 좋겠어요. 저는 처갓집에서 늘어지게 잠만 자다 왔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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