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나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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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못난 양심을 씻을 수 있는 기회

모돌이는 우리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처음 교동에 이사왔을 때, 교회 옆 비닐 하우스엔 조그마한 개 집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 살던 온 몸이 시커먼 멍멍이와 우리 가족들이 친해지는데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요. 전에 계시던 목사님이 키우던 개인데, 아무래도 우리가 낯설게 보였을 겁니다. 그래도 하루 이틀 밥도 갖다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니까 나중엔 꼬리를 흔들며 다가 올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마침,우리 집 애들 항렬이 '모'자 돌림이었기 때문에 '모돌'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습니다.

모돌이는 참 순하고 착한 놈이었습니다. '여기서 '놈'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숫놈이 아니라 암컷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여자 개니까 '모순', '모자' '모숙' '모희' 등등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모'자 가지고 여자 이름 짓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애들 이름을 '모은', '모영' 이라고 지을 때도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결국 그놈은 죽을 때까지 '모돌'이로 행세하며 살았습니다. '모돌'이가 우리 가족으로 함께 산 날은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사온 게 5월 이고 '모돌'이가 죽은 것은 이듬 해 1월 중순경이니까 8개월 정도네요.

'모돌'이가 이상해 진것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절이었습니다. 이상하게 털도 빠지고 음식을 줘도 본체만체하길래, 처음엔 어디 아픈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사실 저는 한 번도 짐승을 키워 본 적이 없습니다. 죽여놓고 변명하는 것 같지만, 개가 감기걸린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내 자신이 무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가면 저절로 괜찮아 지겠지' 하고 아픈 '모돌'이를 그냥 내버려뒀는데, 제가 너무 했습니다. 낙옆이 지고 앙상한 가지엔 차디찬 눈이 덮이던 겨울 어느 날, 몸에서도 한 줌 한 줌 털을 털어내던 '모돌'이는 썩은 고목처럼 드러누운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모돌'이가 죽기 전, 저는 밥그릇에 수북이 먹을 것을 쌓아 주고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왔습니다. 제 어머님 생신이 양력으로 1월 중순이거든요. 어차피 오래 있지는 못할 거고, 목요일에 갔다 토요일에 올거다 하고 '모돌'와 인사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토요일 밤 늦게 도착해서 잠시 쉬다보니까 개짓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겁니다. 이상하다 싶어 밖에 나가 살펴봤는데 '모돌'이는 이미 죽어서 뻣뻣하게 굳은지 오래된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은 주일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죽은 '모돌'이를 종이 상자 속에 넣은 다음에 근처 야산에 가서 버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끔 "기르던 개는 어디에 있어요" 하고 묻는 교인들이 있었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은 듯 "아, 그 개요? 병들어 죽었어요"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 참동안 괴로왔습니다. 몇 달 후 '모돌'이를 버린 곳에 갔다 왔습니다. 갔더니 반쯤 썩어 뼈가 허옇게 드러난 우리 집 '개'가 아직도 거기에 누워있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개 한마리 지켜주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목사'라고 하면서 무던히도 속을 태웠습니다. '모돌'이가 죽고 1년이나 지났을까, 저는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천국이라고 하는 곳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이쁜 꽃들이 여기 저기 피어 있었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엔 우리 집 개가 웃으면서 뛰어 가고 있었습니다. 꿈 속이었지만 저는 우리 모돌이가 천국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샘명이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라 살았는 모든 것들이 다 귀합니다. 비록 기분나쁜 추억이었지만 그래도 내 못난 얌심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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