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의 날개 짓
스크롤 이동 상태바
허난설헌의 날개 짓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비는 허물을 벗어야만 하늘로 날 수 있다

 
   
     
 

전-현-후란 오직 마음이며, 모든 것도 또한 마음이다.
마음 말고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것 찾아 어데 쓸꼬.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 원효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중에서 -

우리의 전래동화는 대개 착한 사람이 “해피 엔딩”하는 줄거리를 가진다. 그런데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합방에 성공했다는 구도를 가진 “선녀와 나무꾼”은 사뭇 다르다.

나무꾼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그리다가 수탉이 되었다는 것이 그 결말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상팔담(上八潭)은 선녀가 목욕한 현장으로 지목되지만, 이 남자는 안 됐다.

선녀를 한 여자로 봤을 때,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고귀와 비천 - 귀천의 신분이 다른 여자를 만난 남자의 꿈같은 결합
2. 폭력과 굴욕 - 옷을 빼앗은 남자의 독제와 알몸으로 몰린 여자의 굴종
3. 지상과 천상 - 지상에서 만난 남자보다 천상의 구원받기가 더욱 중요
이 설화는 하나의 원형으로서 우리민족의 집단무의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몇 차례의 통과의례(passage rite)를 거친다. 최소한 출생과 사망,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통과해야한다.

그밖에 결혼이란 절차도 대다수는 걸쳐간다. 또 종교인이라면 나름의 통과절차를 밟는다. 예를 들어, 불승(佛僧)은 어려서 사미계를, 어른 되어 구족계를 받는 것과 같다. 개신교 신자라면, 세례와 장로임직 때에 물과 기름 부음의 상징적 의식을 거친다.

통과의례는 변환(transformation)이다. 변환의 전후에는 반드시 주체의 특성에 비가역 탈바꿈이 일어나야한다. 즉 과거의 이력이 죽고, 일정기간 숙성을 기다렸다가, 미래에 새롭게 태어나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곤충은 일생동안 두 번의 탈바꿈을 보여준다. 성충이 알을 통하여 유충이 되는 역방향 변환과 유충이 번데기를 통하여 성충이 되는 순방향 변환이 그것이다.

여자는 결혼을 통하여 자기만의 가정을 갖는다. 이때 가정이 고치라면, 여자는 번데기이다. 그리고 자기가 낳은 자녀가 슬하를 떠나면 마침내 나비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고치속의 허물벗기란 쉽지 않다. 일종의 금기(禁忌) 사항이요, 비밀이기 때문이다. 고치란 차단이요, 날개 짓이란 자유이다. 남편이 이것을 현실로 받아주지 않으면, 어떤 여자는 황혼이혼도 마다않는다.

남편에 대한 여자의 마음은 언제나 상생과 상극이 교차한다. 남편이 아내와 마음으로 소통한다면, 상극은 하나로 좁혀질 것이다. 반대로 무리하게 강압한다면, 양극으로 벌어져 둘이 될 것이다. 여자는 절대로 남편에게 엄마가 아니다.

여자는 남편을 가위질하듯 가른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내를 번데기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이미 날개달린 나비이기 때문이다.

손에 가위 잡아 옷감을 마르자니 手把金剪刀
밤까지 차가워 열손가락 곱아오네. 夜寒十指直
어느 사람의 시집갈 옷 지으면서 爲人作嫁衣
해를 이어 난 구부려 홀로 눕지요. 年年還獨宿
허난설헌의 “가난한 여인의 노래(貧女吟)” 연시(聯詩) 중의 한토막이다.

허난설헌 자신이었을까, 시인은 가난한 여인의 심정을 꿰뚫고 있다. 왜란의 난리 통에 가족과 헤어지고, 이후 홀로 남아 삯바느질하며 살아가야하는 애달픈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

정직하게 가르는 가위(1행), 하나도 빼놓지 않는 열손가락(2행), 나비의 날개 짓을 할 시집갈 옷(3행), 끝없이 단절된 삶의 극복(4행), 이 시에는 여자가 남자를 향해 지르는 아우성이 박혀있다.

광주 초월면(廣州 草月面)에는 27세에 돌아간 허난설헌의 묘가 시비(詩碑)와 함께 남아있다. 그런데 봉분의 배치가 재미있다. 즉 그녀는 죽어서도 남편과 계처의 묘에 일정거리를 두었고, 따로 작은 무덤 두 개를 앞으로 품고 있었다.

그것은 일찍이 세상을 등진 두 어린자녀의 무덤이다. 마치 선녀가 나무꾼을 뒤에 놔두고 자녀만 안고 날개 짓하며 하늘로 올라간 형상처럼.

허난설헌은 상제(上帝)가 지상으로 잠시 파견한 “파란 난새(靑鸞)”가 아니었을까. 나무꾼은 왜 아이까지 낳은 선녀를 끝까지 지킬 수 없었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