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새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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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새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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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조용했다.

커다란 집이 불빛 한 점 없이 빗속에 유령의 집처럼 적막하게 갇혀있었다. 번개가 일 때마다 집이 순간적으로 환하게 드러났다가는 이내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날씨가 이래서일까, 괴기스러운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진희는 어디를 간 것일까.

지하실에 이 회장만 남겨두고 집을 비운 거 같았다. 태진은 차를 차고에 들여놓고 거실로 들어섰다. 집 안에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누군가가 숨어 있다 갑자기 덮칠 것만 같아 머리털이 서는 듯한 공포감마저 들었다. 혼자서 밤을 새울 것을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마저 들었다.

태진은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거실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진희야!”

태진은 너무 놀라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사람을 보고 이렇게 놀라기는 처음이었다. 진희는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석고상처럼 앉아있었다. 탁자 위엔 안주도 없이 위스키병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재떨이엔 담배 꽁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적어도 몇 시간은 이 상태로 꼼짝도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진희는 끝내 태진을 돌아보지 않았다. 시선은 창 밖의 번개와 천둥과 쏟아져 내리는 폭우에 고정되어 있었다.

“웬 술야, 혼자서…….”
“…….”

진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태진은 이 숨 막히는 정막과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진희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마시다 조금 남긴 위스키를 병째 들고 단숨에 목구멍에 털어넣었다. 싸한 느낌이 금세 전신에 신열처럼 번져갔다.

“별일 없었어?”

태진은 진희가 대답을 하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 물었다.

“네.”

그러나 의외로 진희는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미안해, 너무 늦어서.”
“…….”
“이 회장에게 저녁은 줬어?”

진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태진은 이 회장의 상태를 보기 위해 리모컨 스위치를 눌렀다. 지하실 전경과 함께, 쇠고랑에 매달린 채 축 늘어져 있는 이 회장이 보였다. 이 회장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클로즈업시키던 태진은 너무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회장은 양복 윗도리가 벗겨진 채 흰 와이셔츠와 얼굴이 피 범벅이 된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축 늘어져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태진은 진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진희가 이 회장을 죽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모니터에 비친 이 회장의 얼굴은 마치 문둥병을 앓는 사람같이 아주 흉칙하게 변해있었다. 눈썹과 속눈썹이 보이지 않고, 머리털도 복날에 그슬린 개처럼 되어 있었다. 도저히 이 회장의 얼굴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죽인 거야?”

태진은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얼음 조각을 내뱉듯 차갑게 물었다. 그러나 진희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밀랍으로 빚어 놓은 인형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 아직 죽진 않았어요.”

진희는 느리게, 전혀 감정이 담기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태진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태진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도대체 자신이 소영이 집에 있는 사이에 무얼 어떻게 했기에 이 회장이 저토록 처참한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자기 멋대로 혼자서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 몹시 기분을 상하게 했다.

“어차피 죽어야 할 놈이에요.”

진희가 처음으로 태진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여전히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태진은 그런 진희를 노려보다 지하실로 향했다. 낙지의 흡반처럼 끈적끈적하고 집요하게 뒤통수에 와닿는 진희의 시선을 느끼며.

이 회장은 쇠고랑에 매달린 채 축 처져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벌겋게 익고, 군데군데 크고 작은 물집이 잡혀있었다. 뭔가 강렬한 불꽃으로 얼굴을 그슬린 흔적이 역력했다. 그의 몸에서는 아직까지도 역겨운, 머리카락과 살이 타는 노린내가 풍기고 있었다. 눈썹조차 없는 그의 얼굴은 흉물스러웠다. 괴기 영화에 나오는 괴물의 모습과 흡사했다. 찢겨진 흰 와이셔츠 사이사이로 보이는 가슴팍엔 까만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가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짐작이 가는 몰골이었다. 그는 태진이 옆에 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고통에 잠겨있었다.

태진은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

그제야 이 회장은 고개를 들고, 거의 감기다시피한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태진을 보았다. 이 회장의 눈자위 주변은 푹 꺼져 음산하고 어두운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려있었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 나라의 경제를 쥐고 흔들던 대재벌 총수의 위엄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복날 줄에 목을 매달려 죽기를 기다리는 똥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 제, 발 나를 살려, 주, 시오.”

그는 밤톨만하게 부풀어오른 입술을 힘겹게 달싹거리며 애원했다. 속눈썹조차 타 없어진, 벌겋게 충혈된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

태진은 순간적으로 연민을 느꼈다.

이제 그에게서는 권위도 교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그가 매스컴에서 보여주던, 가장된 위엄조차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한낱 늙은이의 추한 모습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몸이 쇠잔해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늙어가는 자신이 안타까워 더욱더 젊은 여자를 밝히던, 아직은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맹목적으로 심취하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빨은 물론 발톱마저도 빠져버린 맹수의 추레함만이 남아있었다.

태진은 그를 보며 허망함을 느꼈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며 찾았던 인간이 바로 이런 초라한 작자였단 말인가. 태진의 마음 한 구석에는 당당하고, 거짓일지언정 자신의 여성관에 대해 소신을 굽힐 줄 모르는 그와 대면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지금 그런 태진의 기대를 송두리째 꺽어버렸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상대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허망한 일이었다.

태진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도 태진을 보았다. 그는 태진의 눈빛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조금 전보다도 한결 더 애처로운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어쩜 그는 태진의 마음 한 구석에 여울져 흘러가는 연민의 물줄기를 보았는지도 몰랐다. 이 늙고 초라한 영감탱이는 이 순간에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태진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거대한 기업을 이끌어오면서 그만한 눈치도 없었다면 지금껏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왜일까?
왜였을까?

태진은 순간적으로 가슴 가득 치밀어오르는 불꽃 같은 격정을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의 고개가 뒤로 휘청 젖혀지며 코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태진 자신도 몰랐다. 왜 갑자기 그의 얼굴을 강타했는지는…… 차라리 그가 뻔뻔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쩜 태진은 그에게서 휘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에게서 어떤 상황 앞에서도 갈대처럼 휘어지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끝까지 버티다 최후의 순간에 거목답게 딱 부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는지도 몰랐다.

“짝, 짝, 짝…….”

난데없는 박수 소리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내려온 것일까. 진희였다. 느리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진희가 치는 박수 소리가 넓지 않은 지하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파문처럼 퍼져갔다.

“내가 심문은 이미 다 끝냈어요.”
“…….”
“녹화해 놨으니까 보세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영 씨는 아직 건드리지 못했대요.”
“…….”

태진은 기분이 묘했다.

진희를 만난 이후로 이런 느낌을 갖기는 처음이었다. 지금 자신은 그녀로부터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진희가 한 행동이나 말에 크게 잘못된 것도 없는데, 마치 목에 생선 가시 하나가 걸려있는 듯이 몹시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무슨 까닭일까. 진희의 입에서 소영이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소영이와 자신의 관계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꼭 그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불쾌한 느낌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이번 일은 내가 끝까지 책임을 지겠어요.”

누가 책임을 지고 안 지고 할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 회장은 우리에게 죽음을 당할 처지였다. 처음부터 그를 살려주려고 납치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그걸 알고 있었다.

“알아서 해!”

태진은 팽개치듯 한 마디 던지고 획 돌아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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