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역사체험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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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역사체험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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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보화석박물관
ⓒ 영덕군^^^
경보화석박물관

경보화석박물관(경보화석박물관#이고시오)은 화석들을 시대별, 지역별, 분류별, 특징별로 분류하여 5억년(지구역사 46억년중 생물의 진화가 다양했던 기간) 장엄한 지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여 학생들에게는 교육의 장, 일반인들에게는 자연의 신비와 변화의 경이로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교육문화공간이다. 한 개인의 20여년 간 집념과 정성으로 1996년 6월 26일에 제1종 화석전문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하게 되었다.

국내 유일의 화석박물관으로, 제1전시관에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20여 개국의 산지를 갖는 약 1,500여 점의 화석들이 시대별, 지역별, 분류별 특징에 따라 전시되어 있고 여러 가지 보석을 포함한 광물들도 전시되어 있으며, 제2전시관은 식물화석테마관으로 규화목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화석들과 특별전시로 세계 24개국 지폐가 전시되어 있어 한층 볼거리가 다양하다. 아울러, 무료수석전시관이 있어 화석과는 또 다른 수석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화석이 만들어지는 환경, 과정과 방법 등에 관한 생생하고 폭넓은 이해를 위한 배려있는 전시로 학생들과 교사, 일반인 모두에게 유익한 방문이 될 것이다. 시대별 주요화석으로 고생대의 삼엽충류, 중생대의 암모나이트류, 신생대의 메머드 이와 상아 등이 구분 전시되어 있고 야외 전시장에는 나무가 암석화 된 규화목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 신돌석장군생가
ⓒ 영덕군^^^
신돌석장군생가(신돌석장군생가#이고시오)

조선 말기에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려고 일어선 의병장들은 많지만 신돌석장군(1878년~1908년)처럼 약관의 나이에 평민으로서 의병대장이 되어 활약한 예를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신돌석장군은 을사보호조약 다음해 1906년에 의병을 일으켜 영해, 영덕, 평해에서부터 삼척, 양양, 강릉, 원주, 안동, 영양 등 경북북동부와 강원도 일대까지 신출귀몰하게 왜군에 저항했던 의병장이다.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큰 활약을 벌인 장군의 구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초가집은 1995년에 복원되어 학생들의 문화유적탐방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체 면적 245㎡로 신돌석의 아버지 신석주가 1850년 무렵에 지었다.

신돌석은 1896년부터 1908년까지 영덕, 영양, 울진 등 경상도와 강원도 일대의 여러 전투에서 일본군을 전멸시키는 공적을 세웠다. 신돌석의 생가는 일본 관헌들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는 정치적 의도로 1940년에 불태워 일부가 불타 무너졌다.

1942년 상량주 연목 일부를 새로이 세우고 기와집으로 꾸몄으나 1995년 현재의 초가로 복원하였다. 안채는 남향이고, 경역 입구는 싸리문이 정면에 위치하며 마당 왼쪽에 신돌석장군생가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대지의 북, 동, 서쪽으로 낮은 구릉이 형성되어 있으며 남쪽에 진입로와 논이 있다. '순국의사 신돌석장군 기념비'는 영덕읍 우곡리에 세워져 있다.


^^^▲ 대소산 봉수대
ⓒ 영덕군^^^
대소산봉수대

봉수대(대소산#이고시오)는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놓은 곳으로, 밤에는 햇불[烽], 낮에는 연기[燧]를 올려 변방의 동태를 중앙으로 알리던 통신시설이다. 원래 봉화는 밤에 피우는 횃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로 오면서 낮에 올리는 연기까지 포함해서 봉화라 통칭하게 되었다. 이곳 봉수대는 조선시대 초기에 만든 것으로 영덕 축산포 방면의 변경 동태를 서울까지 알리던 곳의 하나로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소산은 해발 282m의 영덕 남동쪽 해안의 주봉인데, 여기에 설치된 봉수대는 산의 정상부에 방어벽을 돌로 쌓고, 그 안에 원추모양의 직경 11m, 높이 2.5m의 봉돈을 쌓았다.

남쪽으로는 별반 봉수대, 북으로는 평해의 후리산 봉수대, 서로는 광산봉수대를 거쳐 진보의 남각산 봉수대로 이어지도록 되어있었다. 이들 여러 봉수대들 가운데 가장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 영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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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향교

현 소유자는 영해 유림이며 고려시대의 향교로서 수량은 6동이고 목조와가이다. 1346년(고려시대 충목왕 2년)에 장서기 이천년(李天年)이 대성전(大成殿) 및 동서무를 현 위치에 이건 하고 그 당시부터 향교(鄕校)라 명칭(名稱)을 개칭(改稱)하였다.

1529년(중종 24년)에 영해부사 공서린(孔瑞麟)이 성균관제도(成均館制度)를 받아 중건(重建)하고 1846년(현종 12년)에 1719년(중수 숙종 45년)에 3년 역사(役事)로 중건하니 참으로 웅장하였다. 이 영해향교는 성균관 규모와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 3.1의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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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의거탑

탑은 1919년 3월18일(음력 2월19일) 장날에 영해를 중심으로 축산, 병곡, 창수면 수만 군중들이 일제에 항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의사, 열사들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3월 18일 기공식을 거쳐 1983년 11월29일 제막식을 거행하였으며 매년 3월1일 영해면 여러 선열들의 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3.1절 행사가 거행되는데 이때 그 당시의 독립만세운동 상황을 영해시가지를 돌며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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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지도서비스 2005-08-12 13:38:03
문기자님 글 속에서 샵(#)을 이용한 지도서비스는
정말 편리합니다. 클릭만 하면 지도가 .......
고객을 생각하는 뉴타와 문기자님 홧팅~

문형식 2005-08-12 13:45:23
ㅎ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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