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축제 - 3
스크롤 이동 상태바
가면의 축제 -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진은 진희에게 카페에서 들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김 PD를 용서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더구나 소영이에게까지 검은 손을 뻗치려고 했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진희는 그의 말에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내 행동에 참여하고 안 하고는 알아서 결정해.”
“…… 참여하겠어요.”

진희는 뜨거운 녹차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말했다.

“때론 위험한 순간들이 올지도 몰라.”

“알아요.”
“솔직히 난 모든 일을 혼자서 하고 싶었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한 번도 우리가 남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건 나도 그래.”

태진은 진심이었다.

“뭐라고 할까,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나고 내가 선생님 같은 느낌…… 이체동심(二體同心)이란 표현이 꼭 맞을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 자신을 거울에 비쳐보는 것 같았어요.”
“진희가 날 그 정도로 생각해 준다니 고맙군.”

앞으로의 일에 무공의 고수인 그녀가 참여해 준다는 것은, 누구의 도움보다 큰 힘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진희에게만은 비밀을 갖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진희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

두 사람은 거실로 갔다.

태진은 한 쪽 벽면에 세워진 책장의 두꺼운 국어사전을 들어냈다. 그리고 벽에 고정시킨 책장의 고리를 벗겨냈다. 진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태진은 바퀴가 달린 책장을 옆으로 밀었다. 책장이 한 쪽으로 치워지자, 그 곳에 대형 화면이 나타났다.

“이게 뭐예요?”
“잘 봐.”

태진은 리모컨의 파워 스위치를 눌렀다. 화면 가득 지하실 전체가 나타났다. 진희는 눈이 동그래졌다.

“여기가 어디예요?”
“지하실.”
“지하실이라고요?”

진희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또 보여줄 게 있어.”

태진은 이번에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볼 수 있도록 키 보드를 두들겼다. 대형 화면처럼 지하실이 모니터에 떴다. 거기까지 보여준 후, 진희를 데리고 주방으로 가서 대형 냉장고를 밀었다. 그리고 냉장고 밑에 깔려있던 두꺼운 아크릴 판을 치우고 마루판을 들어냈다.

그 밑으로, 방금 모니터에 나타났던 지하실로 통하는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진희는 앞장 서 내려간 태진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간 태진은 육중한 철문 열쇠 구멍에 키를 넣고 돌려 철문을 열었다. 그러자 비로소 20평 정도의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세상에!”

진희는 감탄사를 발했다.

벽 한 쪽에 간이 침대가 놓여있고, 탁자와 나무 의자 두 개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그 방을 경계로 해서 굵은 쇠창살 밖에 5평 정도의 공간엔 텔레비전과 오디오, 냉온풍기, 간단한 주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환기 시설과 배수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 놓여있는 철제 캐비닛을 옆으로 옮기면 곧바로 지하 보일러실과 통하는 철문이 나타났다. 지하실 반대편 보일러실에서 보면 공구 등을 담아 놓은 철제 캐비닛이 있었기에, 그 뒤에 이 곳과 통하는 비밀문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조차 못 하는 장소였다. 따라서 그 지하 시설은 완벽하게 독립된 또 하나의 공간이었다.

“어때? 이 정도면 이 곳에 한 달을 숨어있어도 밖에서는 찾을 수 없겠지?”

태진은 자랑스런 기분이 되어 물었다.

“언제 이렇게 다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시설은 뭐하려고 만들었어요?”
“보름 정도 작업을 했어. 앞으로 있을 우리 일을 위해서.”
“우리 일이라뇨?”
“아직도 모르겠어? 진희와 내가 납치해서 손을 봐줘야 할 인간들을 이곳에 가두려고 만든 거라고.”
그제야 진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방 앞에 교도소처럼 쇠창살을 박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물건들을 더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라고 했더니, 별로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어.”

태진은 캐비닛을 옮기고 보일러실로 연결되는 철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보일러실 한 쪽 구석에 설치된 가스 소각기도 보여주었다.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부서진 나무 의자를 소각기에 넣고 점화 스위치를 눌렀다. 소각기 안은 금세 맹렬한 불꽃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스위치를 끄고 소각기 내부를 보여주었다. 방금 전에 넣었던 나무 의자가 한 줌의 재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왜 필요하죠?”

진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 필요가 있어서 설치했지.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렇다면!”

진희의 눈이 다시 한 번 커졌다. 그제야 진희는 태진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납치한 자들의 옷이나 하다못해 작은 소지품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들의 흔적이 밖으로 노출되므로 태우는 것만이 완벽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죽은 그들을 이 곳에 넣고 화장을 하듯 태워버려야 할지도 몰랐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해 놓은 줄은 몰랐어요.”
“원래 작가들은 머리가 좋거든. 머리가 나쁘면 어떻게 글을 쓰겠어? 글이란 것이 본디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직물이라고 생각해 봐. 어떤 일이든 한번 마음만 먹으면 철저하고 완벽한 준비를 할 수 있지.”
“갑자기 선생님이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어차피 일을 시작하려면 완벽을 기해야지. 안 그래?”
“…….”

두 사람은 다시 지하실로 들어갔다.

“눈을 감아 봐.”

태진은 진희를 의자에 앉혔다. 진희는 눈을 감았다. 태진은 작은 콘덴서 마이크를 와이셔츠 깃에 꽂았다.

“나진희, 너는 오늘 내 손에 죽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

진희는 생소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용수철이 튕기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놀랐지?”

태진은 소리내어 웃으며 음성 변조기 스위치를 내렸다. 그 때까지도 진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태진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놀랄 것 없어. 음성 변조기를 썼을 뿐야.”
“아!”

진희는 그제야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았다.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지?”
“그럼 납치한 상대방의 눈을 가리고, 말을 할 때는…….”
“이제야 사이클이 맞아가는구만.”

태진은 그 외에도, 납치한 자들을 매달아 둘 쇠고랑과 그들을 집 안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설치한 CC TV 카메라 등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거실로 올라왔다.

“김 PD 일은 언제 추진할 거예요?”
“일단 그 자식의 행동 반경을 미행 좀 하고 다음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겠지.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해 와야 할 테니까.”

태진은 서랍 속에 든 칼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피 맛을 본 칼은 오랫동안 피에 굶주려 있었다. 피는 피를 부르는 법. 한 시라도 빨리 갈증을 채워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참아라. 이제 머지않아 너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마. 그 짐승 같은 놈의 피가 빨간지 파란지는 네가 먼저 확인할 테니까.

“선생님의 표정이 마치 정의의 사자 같네요.”
“내가? 그렇게 보여?”

진희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은 어쩜 선생님 같은 사람이 필요한지도 모르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온갖 추잡한 짓을 저지르는 짐승들에게 경종을 울려줄 사람이…….”
“경종이라…… 좋은 말이군.”
“우리, 한 잔 해요.”
“좋지.”

태진이 간단한 안주와 술병을 챙기는 사이에 진희는 페치카에 불을 지폈다. 태진은 거실의 전등을 껐다. 페치카 안에서 타면서 내는 백양나무 냄새와 이따금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이 적당한 온기와 밝기로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태진은 진희의 잔에 위스키를 반쯤 따랐다. 태진의 잔은 진희가 채웠다.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건배.”
“건배.”

두 사람은 잔을 단숨에 비웠다. 싸한 알코올 기운이 빠른 속도로 태진의 식도를 따라 위에까지 짜르르 전달됐다. 태진은 연거푸 몇 잔을 비웠다. 페치카의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술 기운때문일까, 갑자기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진희도 취기가 올랐는지 머리에 손깍지를 한 채 카펫 위에 누웠다. 짧은 스커트가 한껏 위로 올라가 허벅지와 앙증맞은 분홍색 꽃팬티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타오르는 장작불 불빛을 받은 그녀의 속살은 잘 구워낸 도자기의 표면처럼 매끈해 보였다. 숨을 쉴 때마다 스웨터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무덤이 바람 없는 날 잔잔한 수면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낚시찌처럼 시선을 자극했다.

태진은 그녀 옆에 누우며 팔베개를 해주었다. 가만히 있었다. 태진은 팔베개를 한 손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진희의 얼굴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진희는 아무런 표정도 담지 않은 얼굴로 태진의 눈을 응시했다. 태진은 병아리 부리처럼 입술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에 도장을 찍었다.

“이제 우린 한배를 탄 거야.”
“…….”

진희는 눈을 감았다.

“내 말 듣고 있어?”

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팔베개를 한 손에 힘을 주어 꼭 끌어안았다. 머릿결에서 풍겨오는 아카시아 향기가 태진의 코 끝을 간지럽혔다.

태진의 가슴에 안긴 진희가 잠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말했다.

“자고 싶어요. 이대로…….”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