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미술은 1960년대부터 그 활동의 맥을 갖추는데 K씨 등 고교 미술교사를 주축으로 2~3인의 주된 서양화가가 풍경이나 인물을 인상파 또는 표현주의 앙포르멜의 영향 아래 활동했다. 70년대에는 L씨를 중심으로 경쟁적이며 급진적인 몇몇 그룹으로 과도기적 양상을 보였다.
80년대 그것을 바탕으로 지역으로 돌아온 소위 유학파들도 국가 대표전이나 주요 미전에서 경쟁적 입상을 통하여 그들 나름의 정통성(?)의 확인을 갈구한다.
지방미술은 언제나 개념적인 풍경이나 인물 또는 비구상을 바탕에 깔고 소위 안정적이고 서정적인 목가를 추구하는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작품의 줄거리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시각성의 미적 정물이나 풍경을 선호한다.
여기에 지역미술의 한계와 미술지도의 모호성이 있다. 그 모호성은 지도교사의 요구에도 불과하고 원생들은 대부분 스승을 닮아가고 스승은 제자들의 작품을 수정할 때 더욱 꼭 같은 자신을 양산해 내는 것이다.
일부 지역 미술 단체전에 가보면 인큐베이터 복제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용케도 자신의 내면이나 자신만의 컨셉으로 그려진 그림은 더욱 없다. 이것이 현재의 살아있는 미술, 세계의 미술, 치료의 미술, 심상의 미술을 죽여버리는 훼파의 현장이다.
기능의 아카데미, 사실은 천국처럼, 미술기본은 사실로부터라는 인수분해 같은 암기식 이해는 소위 프랑스인의 의식을 따라 잡기는 반세기에 이른다. 그들은 가장 기초적 묘사와 색채만을 기초로 시대적 유행과 무의식을 일구어 낸다. 뽕피두에서 루브르 까지 오직 순수와 일그러진 개성이 아동화 같이.
자! 이제 우리의 지역 아카데미즘의 미술도 저급한 복제와 기능의 사습을 떠나 오감과 의식의 문을 활짝 열어 자아의 노래를 맘껏 부르는 시대로 달려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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