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환부를 도려낼 기회로 삼아야
정치권 환부를 도려낼 기회로 삼아야
  • 석우영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5.04.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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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정치인 척결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 ⓒ뉴스타운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쓴 황무지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년과 올해의 우리나라 4월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이미 고인이 된 망자(亡者)가 잔인한 4월의 주인공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메모지 한 장을 남겼다. 성완종이 남긴 메모지 한 장은 즉시 성완종 리스트가 되었고 이 리스트는 어쩌면 정치권 전체의 게이트로 변질 휘발성을 지니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완종 다음에 등장할 일광공영 이규태의 콘테이너 속에는 성완종의 메모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인화물질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성완종의 구명로비가 적어도 현 정권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이 복수에 대한 앙심을 품고 세상을 등지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소연할 방법이 없게 마련이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데 대해 억하심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증오하는 의미에서 이름만 적어놓고 세상을 떠나면 그렇게 되는 법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평소의 몸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삼 일깨워 준다.

성완종의 메모가 남긴 단서는 비단 메모에 적힌 정치인들뿐 만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전체 정치인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종편의 보도에 따르면 성완종은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지난 3월29일, 온양관광호텔에서 한씨 성을 가진 어떤 목사와 만났다고 했다.

이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성완종이 "정, 관계 인사 100여명에게 1억 원 이상씩 총 150억 원을 주었다" 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4시간 동안 이루어진 대화에서 성완종은 "내가 먼저 줬겠냐. 달라니까 줬다"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달라니까 줬다"고 덧붙였고도 했다. 성완종은 여,야 정치인을 막론했다고 했다. 이 대목이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그렇다면 성완종의 메모에 등장하는 8명의 정치인 외에도 앞으로 수많은 정치인이 주연급 혹은 조연급으로 등장할 폭발성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많은 정치인이 등장한다면 여, 야 정치인을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성완종이 회장으로 있었던 경남기업은 원래는 대우그룹 계열사였다. 2000년에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경남기업은 워크아웃을 통해 매물로 나온 기회를 잡아 성완종의 대아건설이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했고 이듬해였던 2004년 9월 경남기업이 대아건설을 흡수 합병하는 절차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회사였다. 그 당시 규모가 작았던 대아건설이 덩치가 큰 경남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보고 업계와 시중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먹은 꼴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하니 성완종의 사업수완은 참으로 탁월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을 하기 전, 자신의 구명을 위해 여러 요로에 로비를 한 것을 보면 관계 요로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치권에서 성완종의 덕을 안 본 정치인이 없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왕성한 대인관계를 엿볼 수가 있다는 점에서 여당 정치인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야당 정치인도 성완종의 덕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해 진다.

보도에 따르면 3월 말부터 이달 초 사이에 성완종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자기 회사의 임원들과 법무법인 사무실 등에서 수시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 나눈 대화가 녹취로 남아있었는데 검찰이 이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대책회의 녹취록에는 '용처를 밝힐 수 없는 현금 32억 원'을 검찰에 어떻게 소명할지를 두고 논의한 대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책회의의 주 내용은 현장전도금 명목으로 적시된 이 32억 원의 용처에 대한 답변의 조율과 협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책회의에서 회사 관련자들이 말했다는 "경조사비로 썼다고 하자" "회사에 필요해서 썼다고 하자"라는 등 대응방안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다고 전해졌다.

특히 문제가 된 32억 원은 2007년 이후 지난해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5000만 원, 1억 원 단위로 인출된 금액이라고 알려졌다. 성완종이 전도금으로 사용했다는 이 32억 원은 공교롭게도 공사가 이미 완료된 현장에 지출되었다는 점에서 현장 전도금 명목으로 회계장부를 허위로 만들어 놓은 후에 정치권으로 흘러가는 자금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다.

여기서 이상한 대목이 발견된다. 전도금이란 가지급금과 같은 성격의 돈이므로 현금이 필요한 부서에 수시로 돈이 지급될 수 있도록 미리 현금을 보관하여 지출하다가 공사가 완료된 후에 정산되는 성격을 지닌 돈으로써 공사완료 후에 지급되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된 현금 32억 원은 2007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수시로 인출됐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그리고 현 정부까지 3대 정권에 걸친 불법정치자금의 일대 파노라마가 될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이기도 한다. 특히 과거 성완종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 등으로 두 차례 기소됐던 전과가 있었으니 예사로 볼 일도 아니다.

이처럼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의 혐의로 과거 두 번이나 기소된 전력이 있었지만 성완종은 노무현 정부 당시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특별사면을 받았다. 여기에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특히 2007년 11월엔 서울고법의 유죄 판결 직후 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고 한 달여 만에 사면 수혜자가 되기도 했다. 국회에 출석한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아주 예외적인 사안이라고 했다.

검찰은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 중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2월 성완종이 '행담도 개발 비리 사건'으로 두 번째 특별사면을 받기 전에 경남기업 관련 계좌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포착했다고 알려졌다.

성완종이 이때 사면을 예상한 듯 항소를 포기한 것을 보면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게 로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바로 문재인 새민련 대표였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가 성완종 회장을 사면 대상에 급하게 포함시키느라 사면 일정을 연기하기도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하니 조만간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 이런 점이 노무현 정부와 성완종 간의 관계를 반드시 조사해야할 이유다.

박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문재인 새민련 대표는 "검찰이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할 경우 국민이 특검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직접적인 특검 도입 주장을 피했다. 반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특검으로 가는 것도 결코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성완종 사건 후속편으로는 이규태 콘네이너 사건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특검으로 바로 가서 공소시효가 지났건, 안 지났건 간에 여,야를 막론하고 걸리는 족족 신속하게 위법 처리를 함으로써 정치권의 고질적인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정치권 정화를 위한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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