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은 결코 수양대군이 될 수 없었다
장성택은 결코 수양대군이 될 수 없었다
  • 편집부
  • 승인 2013.12.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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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이 작심만 하였다면 정변은 얼마든지 성공할 수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 장성택이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개 끌려가듯 형장으로 끌려가 기관총과 화염방사기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믿을 수도 없고, 믿지도 않지만, 북한 독재정권의 발표대로 만약 장성택이 쿠테타에 성공을 하였다면 북한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북한의 2인자였던 장성택이 전격적으로 처형당한 사실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있었던 계유정난과 묘하게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었다.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쿠테타를 일으킨 계유정난은 지금으로부터 560년 전인 1453년 10월에 일어났다.

단종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한 수양대군이 정권을 빼앗고자 자기 측근인 권람, 한명회의 계책에 따라 무사를 거느리고 난을 일으켰다. 수양대군과 그 추종세력들은 권력의 최중심부에 있었던 좌의정 김종서를 찾아가 죽이고, 영의정 황보 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우찬성 이양 등을 대궐에 불러와서 죽였다. 이들의 죄명은 단종의 작은아버지인 안평대군을 추대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였다는 것이지만 목적은 정적 제거였다. 그때 사용한 무기는 철퇴와 도끼 그리고 장검이었다.

북한 김정은 세습왕조 독재정권이 발표한 대로라면 장성택은 국가전복을 모의한 쿠테타 주역인 셈이다. 북한 독재 정권의 발표대로 장성택에게 정말로 판을 뒤엎고자 하는 계획이었었다면 장성택이 성공할 기회도 있었다고 본다. 사실이 만약 그랬다면 그 시기는 지난 8월에서 10월 초가 성공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군부에게 과도한 경제권과 독자적인 사업권을 부여하여 군부의 충성심을 유도했다. 설탕과도 같이 달디 단 돈맛이라는 당근 유인책으로 군부의 충성심을 강요하는 정책을 택하여 군부의 흑심(黑心)을 원천 차단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달랐다. 당의 자금줄 관리책임이 장성택으로 넘어간 이후 김정은은 상당할 정도의 재정적인 난관에 부닥쳤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가장 먼저 취한 것이 김정일 시절 군에 부여했던 각종 이권을 당으로 귀속시키는 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군부가 동요하자 지난 8월 리영호 총 참모장을 전격적으로 해임했다. 김정은은 리영호의 해임만으로는 배후세력이 불안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속 조치도 잇따라 단행하게 된다.

김정각 군 총 정치국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격식 등 위협이 될 만한 머리들은 차례차례 해임을 시키고 빈자리에는 리영길 군 참모부 작전국장을 승진시켜 총 참모장의 자리에 앉혔고 장정남을 상장에서 대장으로 승진시켜 인민무력부장에 앉히는 등, 군의 요직 하나하나에 김정은의 사람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 조치가 일어난 시기는 지난여름을 전,후한 시기였다. 군의 수뇌부가 인사 조치를 당하고 군의 내부가 술렁일 무렵인 이 당시에는 장성택이 건재한 시기였는데다 재정권을 쥐고 흔들고 있었던 시기였던 만큼, 장성택이 작심만 하였다면 정변은 얼마든지 성공할 수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수양대군은 단종 주변 세력을 제거할 때, 좌고우면 하지 않았다. 권람과 한명회가 거사할 시기가 지금이라고 건의를 하는 순간, 수양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겠다는 말을 부인에게 남기고 자신이 앞장서서 번개처럼 행동하여 순식간에 정적을 제거하고 상황을 장악했다. 만약 장성택에게 정말 북한을 변화시켜야겠다는 과감한 소신과 결단력이 있었다면 처량하게 처형을 당하는 그 자리에는 자신이 아닌 김정은이 서 있었을 것이다.

북한 군부가 아무리 유일체제에 길든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뭉쳐있다고 해도 이미 돈맛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는 한 줌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증명이 된 만큼 장성택이 그동안 모아둔 자금을 확 풀었다면 군부의 맹목적이고 로봇과도 같은 충성심은 김정은이 아니라 장성택에게 쏠렸을 것이라는 추정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일이었다고 짐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장성택에게는 그런 추진력과 강단이 없었다는 점에서 장성택은 예고된 운명대로 삶을 마감했다고 보여 지기도 한다.

장성택은 알려진 바와 같이 경제가 무엇인지, 중국이 왜 상전백해와도 같은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북한 엘리트 사회에서도 몇 안 되는 독보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 중국 고위층에서 흘러나오는 전언이고 보면 북한 주민은 항구적으로 동토의 척박한 대지에서 고달프게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을 원천적으로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2002년 장성택이 남한을 방문하였을 때, 황장엽 선생이 북한의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장성택 말고는 없다면서 북한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방안을 적은 메모 쪽지를 건네려고 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다 보니 장성택의 처형에 묘한 여운이 남기도 한다. 지금쯤 공포정치에 벌벌 떨고 있을 북한 주민을 생각하니 절로 나는 생각이다.

글 : 장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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