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광장(논객방)
국무총리 과연 필요한가 (경향)
 상돈_admin
 2015-02-22 15:26:54  |   조회: 4576
첨부파일 : -
경향신문 2015년 2월 17일자 [이상돈칼럼]

국무총리 과연 필요한가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1987년 6월 민주혁명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논의될 당시의 일이다. 직선제 개헌을 한다는 데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어떤 대통령제를 도입할 것인가를 두고 법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소장 학자들은 4년 임기에 재임을 가능하게 하고 부통령을 두는 방안을 선호했다. 반면 중진 학자들은 단임제로 하고 국무총리를 두는 안을 주장했다. 개헌 논의를 주도하던 정부는 5년 단임과 국무총리를 두는 안에 무게를 두었다.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김영삼, 김대중 등 당시 야권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러닝메이트로 대통령과 함께 선출되는 부통령은 2인자로 부각되기 마련이라서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향유해 왔던 우리의 정치 경험상 생소할뿐더러,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기에 앞서 국가원수이자 통치권자이기 때문에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당시에는 지배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5년 단임 직선제 대통령에 국무총리를 두는 현행 헌법이 탄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명망가를 국무총리로 임명해서 야당과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방탄막으로 이용했다. 3당 합당 전까지 여소야대 정부를 운영해야 했던 노 전 대통령으로선 이현재, 강영훈 같은 총리의 도움이 절실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고건 등 잠재적 후계 그룹을 총리로 기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총리를 사람을 키우는 자리로 보았던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 자리를 'DJP 연합'의 도구로 사용해서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자민련 총재가 연이어서 총리직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보수층을 인식해서 고건 전 총리를 첫 총리로 기용했고, 정권이 안정되자 이해찬, 한명숙 등 정치적 동반자를 총리로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기용해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고 후계자로 키워 볼 생각을 했으나 박근혜 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정 총리는 반쪽 총리로 전락했고, 그 후엔 관리형인 김황식 총리에 만족해야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 책임장관제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다른 대선 공약과 마찬가지로 이 약속 또한 공허하게 되고 말았다. 세종시로의 정부부처 이관을 약속한 박 대통령으로선 책임 내각제를 운영해야 할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 총리는 물론이고 대부분 부처가 세종시로 내려간 상황에서 전처럼 청와대가 친정(親政)을 하다가는 정부가 마비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웬만한 사안은 세종시에서 총리와 내각이 스스로 결정하고, 총리가 정기적으로 대통령을 만나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고 내각의 의견을 전달하는 구도가 되어야 세종시가 행정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밤새워 보고서를 읽고 모든 사안을 일일이 지시하는 만기친람형 미시(微視) 관리를 하고 있어 총리는 아무런 용도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총리는 행사에 참석해서 인사말이나 하고 국회에 나가서 내용 없는 답변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소신형 장관을 찾아볼 수 없는 행정부이다 보니 명색이 행정수도라는 세종시에선 어떠한 결정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총리와 장관은 세종시와 서울 사이를 끝없이 떠도는 유랑객이 되고 말았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기를 들고 행정수도를 관철한 박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는 일도 없는 총리이지만 총리라는 자리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기만 한 것도 아이러니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이 총리를 못 구해서 정부 자체가 골병이 든 형상이다. 돌이켜 보면 대통령제 정부에 어정쩡한 총리를 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총리를 통치 수단으로 이용했고, 1987년 개헌 후에도 총리는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방탄용으로, 연립정부에서는 연정 파트너를 배려하기 위한 자리로 이용됐다. 헌법은 총리가 국정을 통할한다고 규정하지만 그런 기능을 비슷하게나마 했다고 평가받을 총리는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하다.

기회가 되면 개헌을 해서 총리라는 자리를 아예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경복궁 위에 베르사유 궁전처럼 버티고 있는 청와대를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와서 총리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다.
2015-02-22 15:26:5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토론광장(논객방)
#번호 제목 작성자 첨부 날짜 조회
공지 [공지] 토론광장 활성화를 위한 개편안내HOT 뉴스타운 - 2014-06-17 154777
공지 [공지] 뉴스타운 토론광장 이용 안내HOT 뉴스타운 - 2012-06-06 163181
609 해리 트루먼의 리더십을 생각한다 (매일신문)HOT 이상돈 - 2015-03-07 4948
608 김기종의 미국대사테러와 배후 토양의 문제HOT 현산 칼럼니스트 - 2015-03-06 4780
607 기상천외한 대통령 특보단 (광주일보)HOT 이상돈 - 2015-03-06 4841
606 박근혜는 노무현을 계승했는가?HOT 비바람 - 2015-03-06 4445
605 살인마 한테 무슨 존칭인가?.....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3-06 4600
604 김기종은 살인미수죄로 극형에 처하라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3-05 4794
603 하나님의 길과 마귀의 길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3-02 4801
602 요즈음 속상하는 일이 하나 있어요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2-28 4819
601 서울대 나온 이해찬 의원의 수준HOT 현산 칼럼니스트 - 2015-02-26 4778
600 풍운아 김종필과 아내 박영옥 여사의 부음HOT 현산 칼럼니스트 - 2015-02-25 5055
599 문재인은 제2의 노무현인가?....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2-24 4814
598 토사구팽과 박사모HOT 이병화 - 2015-02-24 4664
597 조갑제 기자는 논객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야한다.(경기병)HOT 경기병 - 2015-02-24 4988
596 지만원과 조갑제의 5.18 (비바람)HOT 비바람 - 2015-02-24 4447
595 지만원박사는 애국자인가? 반역자인가?..... (1)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2-23 4850
594 민주와 자유는 오누이인가 계모와 신데렐라인가?HOT 현산 칼럼니스트 - 2015-02-22 4781
593 통일은 젊은 그대들이 좌익을 알게 되는 날에HOT EVERGREEN - 2015-02-22 4822
592 국무총리 과연 필요한가 (경향)HOT 상돈 - 2015-02-22 4576
591 다음 차례는 충청권이다.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2-20 4689
590 신임 통일부장관, 문제없습니까?...HOT 김루디아 칼럼니스트 - 2015-02-20 4723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