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이름의 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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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이름의 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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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의 슬픈 분장을 보면서

마임은 종류가 많다. 흔히 보는 피에로 분장을 한 배우들이 나오는 프랑스 마임에서부터, 퍼포먼스, 특이한 몸짓으로 색다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전위예술에 이르기까지 정의상으로 대사가 없는 연기행위는 모두 마임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나도 한때는 그런 것들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서울의 구석에 숨어있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극장이나 카페에서, 마임 페스티발이 벌어지는 지방 도시에까지 찾아가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마임의 범위를 가능하게 넓게 잡아서 다양한 종류의 마임들을 주마간산 식으로 한번씩은 눈에 익혔었다.

여러 종류의 마임들이 나오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들도 서로 다른 것들이 많다. 때로는 이 이론에 혹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 이론에 깊은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깊이 빠져들었었던 것은 퍼포먼스였다. 퍼포먼스도 이론의 갈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극단적인 이론. 즉 삶 자체가 퍼포먼스라는 이론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 이론을 따라가다 보면 삶이 곧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내 삶은 하나의 작품이다. 그리고 내 삶의 하루하루 그 모든 순간들은, 곧 바로 내가 만드는 인생이라는 단 하나뿐인 작품의 구성요소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내 삶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를 만들어가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신은 나에게 예술에 대한 조금의 감성을 주었다. 음악을 듣고, 미술을 보면 좋은 줄을 아는 미감을 주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미학에 대한 조금의 지식도 들어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늘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한때 그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연극부에 들었었지만, 내 몸은 뻣뻣하고 내 혀는 둔하기만 해서 결국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래서 슬픈 사람이다. 나에겐 예술이란 걸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 해보면 나는 순식간에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지휘봉을 들고 멋있게 폼을 잡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삶의 매 순간마다 비지땀을 흐리며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대면하는 그런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내 삶이 고달팠었다면, 그만큼 오늘분의 내 예술은 진한 감동으로 장식될 것이다. 내 삶에 온갖 세상의 모습들이 경험되었다면 내 작품의 범위는 그만큼 스팩타클 한 것이 될 것이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인생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생각하는 나는 마음가짐은 항상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 삶에 티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만들고, 내 삶에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고통을 마다하지 않도록 만든다. 삶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대면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극적인 감동이 샘솟아나는 장면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내 삶에 큰 위로가 된다. 몹쓸 세상. 힘들면 힘든 대로, 때로 기쁘면 기쁜 대로.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내 작품의 주인공이니까. 모든 장면들에 충실해야지. 기쁘면 기쁨에 충실하고, 슬프면 슬픔의 깊은 곳에 빠져들어야지. 그리고 내 하나뿐인 작품을 보람으로 채워가야지.

어려우면 역경을 이기고, 힘들면 고난을 극복하는 수많은 장면들로 채워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남들은 알 수 없어도 마지막 날 내가 그 작품을 되돌리며 감상을 할 때.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내 눈매에 감격에 젖은 눈물이. 그런 것들이 비치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 될까. 나는 요즘 그것만을 생각하며 내 앞을 스쳐가는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다.

마음의 길을 따라가다 마주치는 이론들 중에서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보는 마임으로는 전통적인 삐에로 분장을 한 마임이 그래도 가장 마음이 끌린다. 머리와는 달리 가슴은 어려서부터 친숙했던 그 마임에 익숙해 하는 것인가 보다. 삐에로 분장의 마임은 그 해학에 포복절도 하게 웃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슬픈 느낌의 여운을 남긴다.

삐에로의 얼굴분장에는 항상 눈물자국이 커다랗게 남아있다. 입가의 붉고 커다란 미소와 이상하게 잘 어울리는 그 슬픈 표정에서 나는 삶을 느낀다. 삶이란 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직물과 같은 것이다. 한 올의 기쁨과 한 올의 슬픔이 어울리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삶인 것일까. 때로 과장되고 때로 우스광스럽기만 한 그 몸짓의 뒤에는 삶에 대한 어떤 열정이 숨어있는 것일까.

때로 그들의 연기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로는 아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그들의 열띤 연기가 애처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얼굴분장에 그려진 눈물자국처럼 그들의 몸짓이 슬프게 느껴진다. 혹 그들의 표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생이란 이렇게 우습고 허전한 것이다' 는 메시지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삶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힘들면 고난을 이기는 의지로, 또 세상을 사랑하고 삶의 모든 순간을 아끼는 사랑 많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는 않다. 지나치게 인생을 아름답게 보지도, 지나치게 무감각하지도 않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삶 속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감동을 주지 못하는 마임이 때로 바보스럽고 허허롭게까지 느껴질 때도, 나는 쉽게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버리지 못한다. '바보' '병신'을 연발하면서도 작품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작품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연기에서 애틋한 슬픔을 느끼듯, 나는 내 권태로운 삶에서도 어떤 슬픔을 느끼는가 보다. 감동이 없는 마임에서 느끼는 슬픔처럼, 감동 없이 보내는 내 하루는 얼마나 슬픈 것일까.

나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작품’의 긴 마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이란 페이지에는 무엇을 채워야 할 것인지, 그것은 내가 늘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끝나지 않는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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