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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노를 사랑한 남자, 쇼팽의 곡 ⓒ 박소영^^^ | ||
하지만 그 일은 위험한 작업일 수 있다. 며칠 전 신문을 펼치니 '우리나라 주부 4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12.3%는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같은 때에 이혼사유도 '경제' 가 두 번째 순위를 차지할 만큼 특히 가정경제의 실질적 운영자인 주부들에게 지금은 어려운 시기이다. 이런 때에 쇼팽을 알게 된다는 자체부터가 '절망의 늪에 빠지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쇼팽의 곡들은 그만의 감성으로 흡인력을 지닌다.
어떻게 그의 오묘함의 서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쇼팽은 우울증을 앓았던 바탕으로 그러한 갸날픈 애상적인 곡이 가능했다고 한다.
나는 봄에 쇼팽의 곡을 쳤다. 결코 가을에는 그의 곡을 다루기가 너무 힘이 들 것이기에 겁을 먹고 그의 감정과 대치되는 봄에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쇼팽은 진짜를 거부한 얕은 울림의 소리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쇼팽을 지금 같은 가을에 젖어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그 사람은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오랫동안 쇼팽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람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 무슨 이즘(ism)에 걸릴 확률의 빈도가 낮은 충실한 현실주의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반음의 미묘함과 트릴의 잔향...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그의 마주르카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쇼팽의 음악 중 밝은 편에 속하니까. 3/4박자의 두 번째 박자에 액센트가 선명한 마주르카, 폴란드의 색채가 강한 일련의 음악들은 상대적으로 밝은 색을 띠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곡 또한 자세히 느리게 멜로디를 음미해 보면 느낄 수 있다. 아, 역시 쇼팽이구나! 반음의 미묘함과 트릴의 잔향...
쇼팽에게도 당시 유행하던 왈츠가 있다. 하지만 그의 왈츠를 들어보라. 결코 춤을 출 수 있는 곡이 아니다. 그는 춤의 배경이 되는 음악보다 연주를 위한 음악을 원했던 것이다.
모차르트를 가장 존경했던 그는 결코 모차르트의 기질을 물려받지 못한 셈이다.
모차르트의 천연덕스러운 멜로디와 공기 방울처럼 가벼운 낭만과는 전혀 다른 쇼팽, 그의 고독과 절망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집안 배경과 당시 조국 폴란드의 불운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피아노를 사랑한 남자. 그의 연약한 손가락만큼이나 그의 폐 또한 부실해 이렇다 할 큰 무대에 서지 못하게 만들고 그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흙 속에 진주를 발견하듯 세계는 그의 '피아노이즘(pianoism)'에 빠진다.
때론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이, 때론 예술지상주의를 꿈꾸는 탐미적 아티스트 같이, 때론 누추한 현실의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여인네 같이. 그의 음악은 가을이라는 계절에 몰려 있다.
젊은 피아노 연주자들, 특히 여성 연주자들은 쇼팽을 연인으로 삼아 지갑 속에 그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 그런 사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터이다.
그의 음악은 짧은 가을처럼 스치고 지날지 모르지만, 가을의 깊이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들 생애의 한 지점을 뒤척이게 만드는 힘을 뿜어낸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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