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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나무 길 ⓒ 네이버포토^^^ | ||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엔 가을이면 온 교정이 단풍으로 가득하였다. 굳이 단풍이 물드는 나무가 아니더라도, 나는 유난히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었다. 한 강의가 끝나고 다른 강의실을 찾아 부산히 움직이다가, 건듯 바람이 불고 잎이 하늘에서 마치 눈송이 내리듯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보기라고 하면 나는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곤 했었다.
그 길로 수업을 잊어버리고 사색에 잠기거나,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도 했다. 때로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면, 그대로 학교 밖으로 달려 나가곤 했었다.
그래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을 달려서 종점에 내리면, 그곳은 도시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시골이었다. 그곳의 가을은 도시에서 느끼는 가을보다 훨씬 진한 모습을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동안 시골길을 거닐다가 가슴 가득히 가을을 담고서 돌아오곤 하였다.
왜 그렇게 단풍이 물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좋아했을까. 글쎄? 지금도 난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다. 아마도 내 가슴 한구석엔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우수가 또아리를 틀고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그 무엇이 한동안 삶에 몰두하여 열심히 살아가던 나에게,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던 그 페이소스를 다시 되살려내곤 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낙엽이란 깊이 숨겨진 우울이란 상자를 여는 열쇄와 같은 무엇인가 보다.^
그 우수는 무엇 때문인지, 그 우울이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확실한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매년 동일한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나에게 그런 점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뿐이다. 그렇지만 나도 가끔씩 궁금해질 때가 있다.
왜일까? 젊은 시절부터 수없이 그런 질문들을 물어보았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 질문에 관한 대답을 알 수 없었다. 그래! 세상에는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많이 있는 법이다.
지금도 가을이면 매년 꼭 한번씩은 일부러 시간을 낸다. 그래서 강원도 원주부근으로 차를 몰고 짧은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 부근에 은행나무가 유난히 많이 늘어선 아름다운 길을 우연히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운 좋게 날짜를 잘 잡아서 가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가슴하나 가득히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담아 올 수 있다. 가을마다 아직도 알지 못하는 무엇 엔가에 떠밀려 그런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벌써 몇 해가 되었다.
무슨 사정이 있거나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한가로이 가을여행을 떠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할 때에는 대학로에 나가곤 한다. 젊은 시절. 문화에 대한 욕구에 굶주려 있던 내 가슴을, 그렇게도 울려대던 대학로는 지금은 참 많이도 변해버렸다.
하지만 대학로에 깊이 뿌리박은 은행나무만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잠간 동안 대학로를 거닐면서 그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가을 여행을 대신한다. 잠시 메말라 버린 내 가슴에 숨어있는 우수를 펼쳐내 본다.
그리고 때로 처음 대학로를 찾았을 무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시절. 알 수 없는 동경과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에 직장을 정하고 서울을 찾았을 무렵. 대학로는 왠지 한없이 깊은 우수에 젖어 있는 것만 같았었다.
그때 대학로의 이미지가 서울에 대한, 인생에 대한 내 인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새로운 시기와 함께 했었던 대학로를 떠올리기도 하고, 첫날 대학로에서 처음 마시던 커피 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렇게 과거를 밟고 낙엽을 밟으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다 보면, 가슴이 후련해져오는 것을 느낀다. 가을이란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절인가 보다. 그러나 난 가을에서 과거를 추억하지 만은 않는다.
발에 밟히는 은행잎이 사그락 그리는 느낌에서 나는 그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의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가을이 물들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마음껏 뛰어다니며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가을을 밟으며 삶이란 것이 얼마나 진실 된 것이고,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느끼며 몸을 떨곤 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 한계가 있는 모든 것들은 그래서 그토록 진실 된 것이다.
사라져 가는 삶. 훨훨 불타며 타오르는 삶. 그리고 조용히 잊혀져 가는 삶. 무명에서 무명으로. 그리고 진실 된 노력의 흔적만을 남는 삶.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마지막 순간 눈을 감을 때 스스로에게 한마디 위안의 말을 던지기 위해. 나는 가을이 오면 다시 힘을 내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움과, 후회로움과, 열정과, 열정이 차차 식어가면서 남기는 안정감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면서, 나는 또 한 해의 삶이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자라고 성장하고 세상을 달리고 또 서서히 지쳐가던 그 모든 순간에, 은행나무는 오랜 친구처럼 내 곁에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서 있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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