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 결혼식이 고향에서 있다며 아내는 딸아이를 데리고 내려갔다. 내려간 김에 처가에서 하룻밤 보내고 온다기에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이 그러라고 했다. 같이 따라나설 수도 있었지만 밀린 레포트와 다가올 시험때문에 집 지키며 공부하고 있겠노라고 잘 다녀오라며 하룻밤 이별을 했다.
아내와 딸을 보내고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갖겠구나하고서는 주말의 학습계획부터 세웠다. 계획이야 늘 그럴싸하게 아주 뿌듯하게 작성되기 마련이고 이제 그 계획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데 엄마 잃은 아이 마냥 아무런 의욕이 없다.
'나 혼자만 있으면 얼마나 자유로울까'하고 생각했건만, 막상 혼자 되고 보니 밥 차려 먹는 것도 귀찮고, 씻는 것도 미루게 된다. 설겆이와 방청소를 해야 되는데 몸에 힘이 솟질 않는다. 뭘 해도 의욕이 없다. 책가방을 싸들고 학교 도서관에 앉았지만 딸아이 얼굴만 아른거린다.
사실 딸아이와 둘만 있으면 귀찮을때가 있다. 어찌나 질문이 많고 모르는 것이 많은지 잠시도 날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때론 무응답이나, 딴청으로 딸아이의 호기심을 꺾어 놓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딸아이가 지금은 몹시나 그립다.
평소 집에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 딸아이는 책상 밑에 자기 책을 펼쳐 놓고 앉아서는 읽지도 못하는 글을 줄줄 읽는다. 엄마가 들려줬던 동화들을 모두 짬뽕해서는 즉석에서 소설을 만들어 읊고 앉았으니 집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없어도 공부를 못하는 것은 매 한가지니 참 웃긴 일이다.
폐인이라고 했던가. 나사 빠진 기계처럼 몸과 마음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질 않는다. 아내와 딸아이를 보낼때의 그 홀가분한 심정은 어디로 가고 지금 그 자리엔 허전함만 가득차 있다.
기러기 아빠들이 생각난다. 참 대단하다 싶다. 아니 솔찍히 못할 짓인것 같다. 가족을 떼어놓고 혼자 산다는 것, 애초에 그렇게 살았으면 몰라도 가족과 함께 공동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의 그런 삶은 훨씬 더 힘들것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확실한 자기관리나 가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없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붕괴는 시간 문제일 것이다. 하룻밤 아내가 없다고 이렇게 의기소침해진 나를 보면 절대 기러기 아빠는 못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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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들의 신발 - 어느 하나가 빠져도 허전하리라. ⓒ 구현모^^^ | ||
교회에서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족에 비유하기도 한다. 완전한 비유는 될 수 없지만 부부사이에 자식이 있음으로해서 셋이 하나의 가족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한사람이 아파도 모두가 아프니 셋이 완전히 하나라는 소리다.
그러나 가족 공동체는 인간의 것이기에 허점이 많다. 과신이나 불신으로 인한 문제, 이기적인 부부생활,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 등으로 인해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파탄되고, 결국엔 서로 죽이는 일까지 생기고 만다.
TV에서 '결혼생활 하면서 직장생활 하기 힘들지 않느냐'고 어느 신혼 부부에게 묻자, 아내쪽에서 '제가 밥하고 남편은 설겆이와 청소해주니까 좋아요'라고 답하였다. 힘들어도 서로서로 도우니 괜찮다는 뜻이다.
만약 남편이 설겆이, 청소 등을 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신혼 초에는 해줬는데 갈수록 나태해져서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초심을 잃어감으로써 부부사이에 권태가 찾아오고 다른데 한눈 파는 것이 아닌가 싶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겠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때의 그 순수한 열정, 그리고 딸아이를 가졌을 때의 그 무한한 기쁨을 바쁜 일상속에서 조금씩 까먹고 있었다. 이제 아내와 딸아이의 빈자리는 있을때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신혼의 초심으로 채워진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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