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과 이경해님의 죽음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라크 파병과 이경해님의 죽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족과 국가의 허상을 깨라

^^^▲ 한 시민단체의 이라크 파병 반대 기자회견 모습
ⓒ 뉴스타운 자료사진^^^

또다시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몇 달 전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이라크파병이 국익을 위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했다.

정치권을 비롯한 보수수구세력 역시 이라크 파병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국민에게 호소했다. 진보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나라의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리에 이라크파병에 대해 찬성하거나 또는 침묵함으로써 이 땅의 빈약한 평화운동과 진보운동의 모습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나라, 애국, 국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이라크 파병은 과연 정당한가? 과연 평화라는 가치 위에 나라, 민족, 국가, 국익의 가치가 위에 설 수 있는가?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들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하는 애국의 행위는 너무나도 바람직한 행위라 믿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다 주신 위대한 인물의 위인전을 읽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자란다. 불타오르는 애국, 애족의 의지를 어려서부터 독서를 통해 다져나가는 것이다.

외국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은 쓰레기?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제창을 하고, 북한 '괴뢰도당'의 추잡함을 배우고 그와 함께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의식을 배움으로써 모순되고 이중적인 민족주의를 형성해나간다.

민족의 억압된 역사를 배우는 역사 시간에는 이젠 우리 민족의 힘을 발휘하여, 세계 일류강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진취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다짐을 한다. 이러한 민족, 국가라는 이념 속에 자라난 우리가 국익을 이유로 이루어진 이라크파병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그리고 대통령의 눈물에 감동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지금의 세계는 결코, 민족, 국가 단위의 세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민족, 국가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자와 그것을 끊임없이 받는 자의 세계이다. 9·11테러에 대한 대응인 전쟁을 정당화시킨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개념이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갈등 당사자간의 싸움이 아니다. 미국의 소시민과 빈 라덴이 무슨 원수를 지었기에 테러와 전쟁의 싸움이 일어나겠는가. 9·11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 전쟁은 국가라는 허울 속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는 자와 민족이라는 허울을 자국민에게 씌움으로써 사회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지배자의 갈등이다.

^^^▲ 이경해 전 회장의 영정 사진
ⓒ 뉴스타운 자료사진^^^
그러나 전쟁은 그 갈등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민간인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 피해는 국가라는 개념의 국민에게, 그 이익은 국가라는 허울을 국민에게 씌움으로써 이익을 얻는 자에게 돌아간다. '이익' 이것을 잡기 위한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나는 자본주의 경쟁체제에서 우리는 또다시 국가와 민족의 허상을 발견한다.

우리는 흔히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조차도 자국의 노동현실에 대해서는 개탄하면서도 자국의 자본이 제3세계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현실에는 침묵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극한 삶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인도네시아로, 베트남으로 떠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된 재화를 소비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통일이 되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자는 주장도 나온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말은 모두가 똑같다는 말은, 한국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은, 외국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은 민족이나 국가 앞에서 쓰레기가 되는 것인가.

이경해 씨 죽음의 의미

얼마 전 멕시코 카쿤 WTO 각료회의장 앞에서 벌어진 WTO자유무역체제와 미국 주도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시위 중 농민운동가 이경해 씨가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경해 씨의 죽음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본질과 우리가 던져버려야 할 민족과 국가의 허상을 발견해야만 한다.

WTO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무역은 일부 선진국들에 의해 거대자본에 속수무책인, 제3세계 국가의 민중들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시키고 제도화시키는 행위다.

이러한 WTO체제에 반대하기 위한 이경해씨의 죽음을 대한민국의 농민들만을 위한, 대한민국의 힘없는 민중들만을 위한 죽음으로, 그 의미를 축소·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경해씨의 죽음은 바로 WTO체제와 미국식 세계화에 의해 착취당하는 모든 민중들을 위한 죽음인 것이다.

우리는 민족과 국가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세계에서 벗어나 전세계 모든 힘없는 민중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국익을 위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한국군의 이라크파병이라는 편협한 논리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라는 잘못을 역사 앞에서 올바르게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3세계 힘없는 민중들에 대한 착취를,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을 우리 스스로 지적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족과 국가의 허울 속에 벗어나 전세계의 힘없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세계의 착취당하는 민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이경해님의 뜻을 잇는 우리 살아있는 자들이 해야할 일인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