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지날 때마다 늘어가는 나이와 뱃살에도 불구하고, 동심을 잊어버리지 않고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워하고 마냥 기뻐할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닌가. 그래 어차피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월의 여울에서 철모르는 아이처럼 노닐다 석양이 저물어 갈 때 내 갈 길로 가고 싶었다.
가을은 석양의 계절이다. 여름내 세상을 뒤덮고 있던 무성한 잎이며, 무수한 일들이며, 그 분주함이 차분히 가라않으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은 항상 정갈하고 차분하고 고요한 중에 깊은 감동을 품고 있다. 그렇다. 사라져간다는 것, 잊혀져 간다는 것은 그렇게 쓸쓸하고 절실한 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바쁜 내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아직 단풍이 지기건 대학로 인근의 서울 대 병원에 볼일이 있어 친구와 같이 들렀다가 나오는데, 친구가 “와! 은행이 떨어져 있네”라고 환호를 지른다. 나도 친구와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 정신없이 은행을 주웠다. 나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만 보아왔지 은행열매를 주워보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참 재미있다.
한참을 줍다가 허리도 펼 겸해서 주위를 돌아보니, 우리 외에도 은행을 줍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라고 부를만한 분들이 허리를 두드려 가면서 열심히 은행을 줍고 있는 것이다. ‘연세가 저렇게 드신 분들도 동심은 어쩔 수가 없구나.’란 생각에 나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은행을 주웠다. 내가 친구보다 조금 더 많이 주운 것 같다. 기분이 좋다.
주머니에 가득 불룩하게 은행을 채워서 병원을 서려는데, 자꾸만 우리를 힐끔힐끔 바라다보는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왠지 찜찜하게 느껴졌다. 혹시나 싶어 여쭈어 보았다. “아주머니! 혹시 필요하시면 이것 드릴까요?‘” 그러자 그 분들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돈다. “정말? 아이구 고마워라!”
‘뭐 고마울 것까지야.’ 나는 그냥 어린시절 장난치던 것처럼 순전히 재미로 열심히 주웠을 뿐이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사실 그것을 가져가 봤자, 버리기도 귀찮았던 것이다. 나는 기분 좋게 그 분들에게 주머니에 들어있던 은행열매를 꺼내드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재미있는 일을 했다고 활개를 펴며 병원을 나섰다. 그대 나에게 친구가 넌지시 일러주는 말.
“은행열매가 말기 환자들의 건강에 그렇게 좋데! 그래서 그 아줌마 들이 그렇게 열심히 주은 것이야!” “?.!!! 아니 그랬단 말인가!” 나는 정말 몰랐었다. 그럼 장난을 치듯이 환호를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은행을 줍던 우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아주머니들. 무거운 몸을 굽혀서 느릿느릿 은행을 줍던 그 할머니들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은행을 줍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느낀다. 내가 해마다 그토록 절실하게 감상하며 지켜보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나에게는 단순히 매년 순환하는 한해 분량의 감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란 것을. 하지만 그 가을이 어떤 이에게는 이 가을이 그 인생의 마지막 가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봄이 올 것을 기약하며 스러져가는 순환하는 세월속의 또 한번의 가을이 아니라, 단 한번 일 뿐, 영원히 되풀이 될 수 없는 인생의 가을이란 얼마나 쓸쓸한 것일까. 그저 스쳐지나가며 느끼는 가을의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을이란 모습으로 서 있는 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내 일천한 인생경험은 도무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마주하는 가을의 감상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던가.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인생의 무게란 것은 아직도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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