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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지 W. 부시 사진은 이라크 공격 명령을 내린 직후 백악관 남쪽 정원을 산책하는 부시. 뒤에 애견 스팟이 보인다. 부시는 산책을 나온 애견 스팟을 만나서 반가왔다고 책에 썼다. 스팟은 아버지 조지 H. W. 부시가 대통령을 지낼때 키웠던 밀레가 나은 강아지로, 아들 부시에게 주었는데, 텍사스에 살다가 백악관에 돌아와서 2004년 2월에 14세 나이로 죽었다. 백악관에서 태어나서 백악관으로 돌아와서 살다가 수명을 다한 진기록을 세웠다. 백악관 사진사가 찍은 사진으로 public domain에 공개된 사진이다.^^^ | ||
미국 대통령 전기나 회고록을 여러 권 읽었지만 조지 W. 부시의 회고록(‘Decision Points’)은 현재 진행형 같아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빌 클린턴의 회고록을 비싸게 계약한 출판사가 신문에 전면 광고를 하고 클린턴을 초청해서 판촉행사까지 했으니 판매가 시원치 않아서 도산한 적이 있다. 부시의 회고록이 번역 출판된다고 해도 잘 팔릴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떠했고,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하는 것이었지만, 이라크 침공 결정에 이르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부시는 후회가 없고,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고 했다. 만일에 부시가 네오콘 보다는 신중론을 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나 중동 전문가들의 충고를 듣고 전면 침공 대신 제한적 공습과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지원을 했다면 부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부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기를 기원한다고 회고록에서 여러 군데에서 말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안겨 주기 위해 침공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이러니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스스로 얻는 것이지 남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지원하고 중남미의 우익 반군을 지원하는데 그쳤는데, 그것이 소련과 쿠바의 목줄을 졸랐고 결국 동유럽 공산권이 몰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소련과 중공이 했던 방법을 역으로 동원해서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조지 W. 부시에 대한 미국 내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다. 그가 재임 중과 퇴임 직후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평가를 받은 해리 트루먼처럼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부시가 트루먼처럼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이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파비드 왕조(1501-1736) 시절의 이란은 지금의 이라크와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방대한 제국이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이란에 대한 견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이라크 전쟁은 결국 이란을 막강한 제국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란의 내부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이슬람 정권이 붕괴되는 희박한 경우가 아닌 한 핵무장을 하게 될 이란은 유럽과 미국, 더 나아가 전체 서양문명을 위협할 것이다.
2000년 미국 대선 때 부시가 내 걸었던 공약은 교육이었다. 교육에 선택과 경쟁을 인정하고 공립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민주당의 앨 고어는 무엇을 내걸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같은 세대인 빌 클린턴은 냉전이 끝난 후 잠시 찾아 왔던 평시에 대통령을 지냈다. 집무실에서 여자 인턴과 오랄 섹스를 즐기고 공화당의 탄핵 공세를 방어하느냐고 세월을 보낸 클린턴을 생각하면 부시의 8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9-11은 부시에게 큰 도전이었다.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이 경륜이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부시는 9-11이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부시는 이들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니 확고한 자신의 견해가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부시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빌 클린턴에게 그런 위기가 닥쳤다고 하면 과연 클린턴인들 자신의 생각이 있었을까. 그런 면에서 피그스 만(灣) 침공 때 군부의 군사개입 요구를 거부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도 성급하게 공습을 하지 않고 인내를 갖고 대처한 존 F. 케네디는 존경스럽다. 케네디는 원래 역사와 외교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는 냉전 시대라서 대외정책이 중요했기 때문에 본인이 식견을 갖추었을 것이다.
부시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그 가정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은 케네디 가문이 대단하다고 보지만 케네디 가문은 한 꺼풀 벗기면 퇴폐와 위선을 드러낸다. 조지프 케네디의 위선과 가식, 존 F. 케네디의 성적(性的) 방탕 등 그 가문은 거의 병적(病的)이었다. 로널드 레이건은 부인 낸시 여사와는 끔찍할 정도로 대단한 관계였지만 자식들과는 절연(絶緣)을 하고 살다시피 했다. 반면 부시 가족은 강아지들까지 대가족을 이루면서 화목하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가족이 아니었으면 부시는 대통령은커녕 주지사도 못했을 것이다. 부시의 어머니 바버라 여사와 할머니 도로시 여사는 정말 대단한 여성이다.
미국이 앞으로 로널드 레이건 같은 철학과 원칙이 선 대통령, 조지 H. W. 부시 같이 준비된 대통령을 갖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들이 대통령을 지낼 때 30대를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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