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예프스끼와의 새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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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와의 새로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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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을 읽고

^^^▲ <도스토예프스키..>의 표지^^^
'인간 심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심리적 통찰력으로, 특히 영혼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20세기 소설 문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친 작가'로 통하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작가는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의 회고록인<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 한 나날들>을 통해서 위대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시대를 뛰어넘어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고 문학계에선 끊임없이 연구해도 다 알 수 없는 도스또예프스끼를 둘러싼 그 시대적 상황과 역사...그리고 그의 방대하고 심오한 정신세계와 문학성.

그 무거운 주제에서는 좀 벗어나 있는 주관적인 눈으로 본 도스또예프스끼의 면면들과 일상적인 모습과 삶을 볼 수 있다.이 회고록을 그의 두번째 아내인 안나는 아주 객관적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한 것이 엿보인다.

이 회고록은 1911년에서 1916년까지 여러 시기로 나뉘어 노트 몇권에 기록한 것을 재편집한 것 이라고 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젊은 시절을 여기서는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그의 아내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도스또예프스끼가 마흔 다섯살 때 만났고 결혼했다.

안나가 스무살 되던 해였다.그때 한창 도스또예프스끼는 <가난한 사람들>과 <죄와 벌>의 전반부 성공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25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을 그들은 어떻게 메꾸며 살았을까.놀라운 것은 그들은 너무도 다르면서도 너무도 조화를 잘 이룬 부부였다는 것이다.

안나는 남편 도스또예프스끼가 왜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했을 뿐 아니라 마치 안나가 그를 위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처럼 거의 경배했는데 그것이 평생의 수수께끼였다고 이 회고록의 말미에서 말하고 있다.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고 쓰고 있다.

안나는 훗날,로자노프가 [문단의 추방자들]이라는 책에서 1890년 1월 5일에 자신에게 보낸 스뜨라호프의 편지에 달아놓은 '각주'를 일고 그 의문이 곧 풀렸다고 적고 있다. 그 각주는 이렇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친구'라 할지라도 우리를 뜯어 고칠 수는 없다. 그런데 생의 가장 큰 행복은 완전히 다른 구조,다른 기질, 다른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 조금도 우리를 흉내내지 않고,우리의 심리에,우리의 혼란에,우리의 뒤엉킴에 말려들지 않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의 튼튼한 벽이 될 것이고,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멍청함'과 '무분별함'을 물리치는 반격이 될 것이다. 우정은 일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립에서 나온다.진실로 신은 스뜨라호프를 내게 스승으로 선사하셨다.

그와의 우정과 그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내게 어떤 튼튼한 벽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 벽에 기댈 수 있다고,아니 더 정확하게는 의지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벽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아나게 한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실제로 도스또예프스끼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다른 기질,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면서도 "언제나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 조금도 서로 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14년동안 함께 살아온 안나는 그를 '고귀한 도덕적 품성의 소유자'라고 믿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안나가 그를 만났을 때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에겐 행복이란 것은 없다고 말했다.안나는 그에게 있어서 행복 그 자체였던 것이다.결혼 뒤에 도스또예프스끼가 안나에게 쓴 편지에서 얼마나 그녀를 소중히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신은 당신 마음과 가슴의 작은 씨앗들과 보배들이 없어지지 않도록 아니 그 반대로 풍부하고 화려하게 자라서 꽃을 피우도록 하기 위해 당신을 내게 맡기셨소.성숙하고 한결 같으며, 마음의 빛을 흐리는 모든 미미한 것들로부터 구원받은 온전한 모습의 당신을 내가 신께 내세움으로서 내가 지은 크나큰 죄를 속죄할 수 있도록 신이 당신을 내게 주신 것이오"

실제로 도스또예프스끼가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불행한 삶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정치적인 일로 죽음 직전에서 기적처럼 죽음을 면했고,시베리야 유형지에서 4년동안을 고통스럽게 지내야 했다.돌아 왔을 때 죽은 형이 남긴 엄청난 빚과 형수와 형의 아이들,그리고 그의 의붓 아들을 도맡아야 했다.

그는 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빚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야만 했다.그를 둘러싼 뻔뻔스런 친척들은 모두 그를 이용했다.그는 겨울에도 외투가 없어서 가을 외투를 입고 떨어야 했다.(그의 친척들이 돈을 달라고 늘 달라붙었고 그는 기꺼이 그의 외투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주어야했다)

그는 간질병에 시달렸고,대가족과 빚을 짊어지고 늘 절박한 생활고에 짓눌린 사람이었다.그런 가운데서 원고와 씨름해야 했다. 거머리처럼 거의 일평생 빚독촉에 시달리면서 사는 불쌍하고 가련한 작가였다.그의 도박병(룰렛)은 아마도 현실에서 벗어나기위한 발버둥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도스또예프스끼와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만나게 된 계기는 그가 형이 죽은 뒤 형이 발행했던 잡지<시대>가 지고 있던 모든 빚을 떠맡게 되었고,스쩰로프스끼라는 출판업자가 나타나 세권짜리 그의 전집의 판권을 3천 루블에 팔라는 제안을 했다.그에 덧붙여서 그 금액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새 소설을 쓴다는 의무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3천 루블이라는 판권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들이 거둔 성공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는 액수였지만, 가장 악조건은 기한 내에 새 소설을 넘기지 못할 경우 도스또예프스끼는 많은 액수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저작권을 잃고, 그 저작권은 영구적으로 스쩰로프스끼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는 상황이었다.교활한 출판업자를 만난 것이었다.그때 친구들이 속기사를 고용하라고 권했고 그때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그의 삶속으로 들어갔다.

운명적인 만남이란걸 처음엔 알지 못했다.그러나,안나는 어릴 때부터 그녀의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도스또예프스끼란 것을 알았고 그녀 또한 그의 소설들을 통해 감동했으며 그 책을 쓴 작가를 흠모하고 있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속의 주인공을 15살 때부터 사랑하고 있었던 안나였다.그녀의 16살 때부터의 별명이'네또치까 네즈바노바'였다.('네또치까 네즈바노바'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최초의 장편소설 제목이다)

안나의 속기가 도움이 되어 기한내에 책을 다 써서 넘길 수 있었다.도스또예프스끼가 생각한 대로 그를 아끼고 사랑해줄 착한 여자와 결혼했다.안나는 그와 사는 동안 늘 빚독촉에 시달렸다.

그가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그가 알지 못하게 처리하곤 했다.그들은 빚에서 그들의 결혼 생활의 13년까지 자유롭지 못했다.14년째 되는 해에는 그야말로 빚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도박병은 오래갔지만 그녀는 그를 막지 않았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토록 많은 고통 즉,요새수감,교수대,유형,사랑하는 형과 아내의 죽음 등을 견뎌낸 그가 어떻게 자신을 절제하는 의지력이 그토록 없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그러나 곧 깨닫는다.

"이것은 단순한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완전히 삼켜버리는 욕망이며 통제 불가능한 어떤 것이어서 아무리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에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쓰고 있다. "도박에 빠지는 것은 병으로 보아야 하며,유일한 투쟁 방법은 도망치는 것이다..." 나중에는 도스또예프스끼 스스로 도박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빚에 쫒기는 생활이 계속 되다보니 그는 충분히 소설을 구상하고 다듬을 여유가 없었다.'소설의 처음 세장은 이미 출판 되었고, 넷째장은 조판중이고, 다섯째 장은 막 우편으로 보냈고,여섯째 장은 집필 중이며, 나머지 부분은 아직 구상도 못한 상태인 그런식으로 집필이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었다'라고 안나는 적고 있다.

그는 종종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수정할 수만 있다면..."하고 한탄하곤 했다. 동시대를 산 똘스또이,뚜르게네프,곤차로프 등은 매우 건강하고 유복한 사람들이었다. 자기 작품을 충분히 구상하고 다듬을 여유가 있었다.너무나 판이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안나와 사는 동안 비록 빚걱정과 그의 지병으로 힘들었지만 그는 행복해했다. 그들이 사랑한 첫 아이를 잃고난 뒤 새로 얻은 아이로 인해 기뻐하면서 스뜨라호프에게 쓴 편지 구절에도 드러나고 있다. "...인생의 행복 중 4분의 3이 거기에 있다네.나머지 다른 것들엔 겨우 4분의1이 있을 뿐이지."

도스또예프스끼는 질투심도 많았다고 쓰고 있다.그의 아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 했고,다른 남자들 틈에 있으면 노골적으로 질투를 드러내어서 당혹스럽게도 했다고 쓰고 있다.그녀는 결혼후 사교모임을 다 끊었다고 적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의지였다.그들의 시간을 갖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한편,도스또예프스끼는 자상하고 인정이 많았다고 적고있다.그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가정을 위하는 것은 여기 회고록에 따뜻하게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술에 취한 취객 한테서 얻어 맞고 쓰러져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그냥 보내주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법정으로 소환되었고 60루블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그는 입구에서 가해자를 기다렸다가 선고 받은 벌금을 납부 하라고 60루블을 건네주었다.그의 인간성을 여기 작은 예로도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건망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간질발작의 영향)아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해 오해를 샀고 문단에 적을 만들기도 했다고 쓰고 있다. 나중에는 그의 아내의 처녀시절의 이름도 잊을 정도였다. 그는 늘 적대적인 사람들과 중상모략 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었고,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그의 말년에는 많은 추종자들이 그를 따랐다.

도스또예프스끼를 뒤흔들었던 문학적 과제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내 안나가 발견한 메모를 통해 알 수 있다.그는 1877년12월 24일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평생의 경고'

1.러시아판 캉디드를 쓸 것.
2.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을 쓸 것
3.나 자신의 회고록을 쓸 것
4.사십제에 관한 대하소설을 쓸 것(사후 40일째 되는 날 올리는 추도식)

톨스토이는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언제나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감정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들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도스또예프스끼가 죽은 뒤 출판 일에 조언을 구하러 온 톨스토이의 아내를 만난 계기로 인해 단 한 번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토스토이를 만났다.

도스또예프스끼를 얘기 한다는 것은 러시아를 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러시아를 알지 못하는 짧은 나의 식견으로는 그를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뿐이다.농노제가 폐지되고 곧 자본주의적 발전의 시대에 겨우 들어선 19세기 후반의 '러시아'를 이햐 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내겐 무리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보고 함께 살아온 삶을 통해 도스또예프스끼의 다른 면면들을 이 회고록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아무리 객관적 입장에서 썼다고 할지라도 주관성이 많이 개입 되었을 이 회고록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45살 이전의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 사적인 그의 면모들과 그의 문학 세계를 다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천재 도스또예프스끼.그의 소설들 속에서 수많은 광인들을 만들어냈던 그는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를 만난 이후의 삶은 참으로 겨울 햇살 같은 따뜻하고 안타까운 온기를 쬐며 살다 간것 같아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는 죽기 전에도 그가 오늘 죽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고 안나는 말했다.그가 유형을 갔던 곳인 또볼스크에 있을 때 당원의 아내들이 선사했던 그 성경책을 그는 늘 지니고 있어 읽곤 했는데,그가 평소에 늘 읽던 성경을 직접 펼친 다음 안나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 했다. 마태복음 3장 14절이었다.

"요한이 제지하며 가로되 제가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당신께서 제게로 오십니까"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답하여 가라사대"막지 말라 우리가 이렇게 하여 위대한 정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한지라"

그 구절이 곧 자기가 죽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되었다.안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랬다. "기억해줘, 아냐,내가 당신을 언제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걸.그리고 꿈에서라도 당신을 배반한 일이 없다는 걸 말이오..."

이 회고록을 마치 또 하나의 소설을 읽는 듯한 마음으로 읽었다.마치 가까이에서 도스또예프스끼와 안나를 만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사랑했다.그들을 둘러싼 모든 인생의 굴곡을 넘나들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했고,끝까지 사랑했다.도스또예프스끼는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라는 여인이 끝까지 지켜주었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글을 쓰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아니라,'내 생애 꼭 하나뿐인 특별한 남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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