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이 죽어 불교가 행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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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어 불교가 행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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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 유산답사기> 흥륜사

 
   
  ^^^▲ 흥륜사 절터에 세워진 현재의 흥륜사
ⓒ 이종찬^^^
 
 

"현재의 경주공고 자리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 절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던데?"

"왜냐하면 지금 새 이차돈 순교비를 세워놓은 이곳 흥륜사에서 한때 '영묘사'라고 새겨진 기왓조각이 나왔다고 하니더. 아마 그래서 그럴 거니더."

"지금의 흥륜사는 1980년대에 새롭게 세운 절이라면서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이차돈이란 이름을 들어봤니? 그 이차돈이란 분의 순교로 신라가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거란다. 지금 경주에는 불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불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보다 더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서기 327년에 순도스님에 의해 불교가 전해졌고, 백제는 침류왕 원년, 384년에 인도스님 마라난타에 의해서 불교가 전해졌대. 하지만 신라는 눌지왕 때부터 고구려에서 온 묵호자에 의해 불교가 전파되고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법흥왕 528년에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인정하게 되었단다.

 

 
   
  ^^^▲ 국립경주박불관에 있는 이차돈 순교비
ⓒ 이종찬^^^
 
 

"능소화가 예쁘게 피었구먼."

"누가 사찰에다 저런 양반꽃을 심어놓았는지 모르것네. 저 꽃은 뿌리째 뽑아없애야 하는데…. 저 꽃이 아름답다고 가지고 놀다가 잘못해서 눈에 들어가면 실명을 하니더. 또한 심장에도 안 좋고."

"그래요? 옛날에는 저 꽃을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던 꽃이라던데요. 그리고 일반 상민이 저 꽃을 심으면 잡아다가 곤장을 때리고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해서, '양반꽃' 또는 '구중궁궐의 꽃'이라고 불렀다고 하던데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는 지금 그 이차돈이란 분의 순교로 세워진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는 흥륜사(경주시 사정동, 사적 제15호) 절터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어. 흥륜사는 이차돈의 순교 이후, 법흥왕 때부터 짓기 시작해서 진흥왕 544년에 완성된 절이래. 하지만 지금 그 절터에 자리잡고 있는 흥륜사는 그때 그 사찰이 아니야.

"아, 저게 1999년, 이차돈 성사 순교 1472주기 추모법회 때 제막식을 가졌다는 그 순교비로구먼."

"높이가 6m 남짓한 저 비도 실제 순교비 못지 않니더. 저 순교비는 경주 남산에서 채취한 화강암 원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니더. 저 비는 97년 7월부터 1억5천만 원이나 들여 만들었는데, 저 비 곳곳에도 연꽃무늬와 구름 문양이 장식되어 있니더. 그러니까 신라전통형식에다 현대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그 말이니더."

 

 
   
  ^^^▲ 현 흥륜사 절마당에 새롭게 세워진 이차돈 순교비
ⓒ 이종찬^^^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지금 아빠가 바라보고 있는 이차돈 순교비도 그 예전의 것이 아니야. 이차돈이 순교한지 290년이 지난 헌덕왕 10년, 서기 891년에 만들었다는 그 6면의 순교비는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어. 또한 그 비석 1면에는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5면에는 글씨가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워낙 심해 알아볼 수가 없대.

그 6각 비석의 1면에 얼굴이 떨어진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단다. 땅이 진동하고 꽃비가 내리는 모습도 함께 새겨져 있고. 하지만 지금 아빠가 바라보고 있는 새 이차돈 순교비도 예사롭지는 않아. 이 비석도 육각이야. 근데 왜 하필 6각이냐고? 그건 아빠도 잘 모르겠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이차돈 순교비에 새겨진 글씨는, 창림사 비문 글씨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널리 떨친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金生)이란 분의 글씨라면서요?"

"그렇다고 하니더. 김생은 성덕왕 10년, 서기 711년에 태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예서와 초서 할 것 없이 모두 신필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이차돈은 성은 박씨, 이름은 염촉으로 신라가 차츰 고대 국가로 자리를 잡아가던 서기 506년에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대. 이차돈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곧고 강직한 탓으로 주변 사람들의 덕망을 한 몸에 받았고, 일찍부터 불교를 믿었대. 하지만 이차돈은 신라에서 법으로 불교를 허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늘 마음 아파 했대.
 

 
   
  ^^^▲ 현재의 흥륜사 대웅전
ⓒ 이종찬^^^
 
 

그때, 지증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법흥왕은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병부를 설치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며, 서서히 고대 국가의 기틀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대. 또한 법흥왕은 불교를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불교의 힘을 빌어 나라를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구나.

하지만 법흥왕은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불교를 국교로 인정할 수가 없었대. 그때 벼슬자리에 있었던 이차돈은 이미 왕의 뜻을 헤아리고 왕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요,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올바른 도리'라고 아뢰면서 왕에게 한 가지 술책을 제의했단다.

우선 자신이 왕명을 잘못 전달한 것처럼 꾸며, 천경림을 허물고 사찰을 지으면 이내 소문이 날 것이고, 소문이 나면 그 죄를 자신에게 물어 자신의 목을 베라고. 그리하면 신하들이 모두 굴복하여 왕명을 따를 것이고, 그때 불교를 신라의 국교로 삼으면 된다고 말이야.

그때 이차돈을 아끼던 법흥왕은 이를 크게 말렸단다. 하지만 성품이 대쪽 같이 곧은 이차돈은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목숨이지만, 이 몸이 저녁에 죽어 아침에 불교가 행해지면 부처가 하늘에 오르고 임금의 길이 편안할 것'이라고 말하며 왕의 허락을 간청했단다.

그리하여 마침내 법흥왕의 허락을 얻은 이차돈은 천경림이란 곳에 절을 짓기 시작했대. 그와 동시에 이차돈이 왕명을 따라 절을 짓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하들은 일시에 법흥왕에게 몰려가 이를 따져 물었어. 이에 법흥왕은 자신이 시킨 일이 아니라며 이차돈을 불러 들였대.

 

 
   
  ^^^▲ 흥륜사 절터가 있던 자리엔 봉숭화만 예쁘게 피어나
ⓒ 이종찬 ^^^
 
 

"폐하! 저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혼자서 절을 짓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 일을 왕명을 받은 것처럼 속였습니다. 부디 저를 법대로 처리하소서. 하지만 제가 죽으면 반드시 기이한 일이 있을 것이오니, 그리하면 만백성이 부처님을 믿고 따르게 하소서."

법흥왕은 이차돈을 죽이기가 몹시도 아까웠지. 하지만 미리 이차돈과 약속한 대로 이차돈의 목을 벨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이차돈의 머리를 베자, 이내 이차돈의 머리는 멀리 날아가 금강산(경주 북쪽에 있는 산) 꼭대기에 떨어졌대.

그리고 이차돈의 목이 잘린 곳에서는 순식간에 흰 피가 하늘로 마구 치솟기 시작했대. 그와 동시에 갑자기 날씨가 한밤중처럼 캄캄해지더니, 하늘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비처럼 수없이 떨어졌대. 또한 그때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마구 흔들렸대.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그때부터 신하들은 불교를 신라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대. 그래. 신라는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불교를 받아들였단다. 그 뒤 법흥왕은 천경림에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세우기 시작했대. 그래. 지금 아빠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그 흥륜사가 있었다는 절터란다.

 

 
   
  ^^^▲ 스님! 여기가 흥륜사 절터가 맞나요? 우리는 이곳이 옛 흥륜사 절터라고 믿고 있습니다
ⓒ 이종찬^^^
 
 

또 이차돈이 순교할 때 그의 목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떨어졌다는 곳에도 절이 세워져 있는데, 그 절이 바로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백률사란다. 이차돈 순교비도 바로 그 백률사에서 발굴되었지. 그리고 그때 같이 발굴된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그리고 지난 8월 5일은 이차돈의 순교일이었어. 사실 이 편지는 그날 쓸려고 했어. 하지만 그 다음 날이 무슨 날이었지? 바로 너희들이 엄마와 이모랑 경주로 여름휴가를 온 날이었잖아. 그래서 그날 아빠는 너희들 숙소를 구하기 위해 감포 앞바다에 나갔다가 비만 쫄딱 맞고 왔었지.

그래. 그때 내린 그 비가 이차돈의 목이 잘렸을 때 솟았다는 그 흰 피였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날 요란한 천둥소리를 내며 내린 그 비가 바로 이차돈이 순교할 때 떨어졌다는 그 꽃송이였는지도 모르고. 또한 그날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꼭 한번 만난다는 칠월 칠석이기도 했지.

그래. 그때는 여름이었고, 지금은 가을이야. 하지만 여름이나 겨울이나 이차돈의 거룩한 순교가 어디로 숨어 버리겠니? 역사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코 숨겨지지가 않는 거란다. 물론 역사를 숨기려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그때는 잠시 숨겨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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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민 2003-10-02 12:11:01
이절 엄청나게 큰걸로 알고있는데, 아직 한번도 들어가보지는 못했ㄴㅔ 요.

글쓴이 2003-10-02 15:06:21
그리 크지는 않고 아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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