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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분한 한 타이완인이 태극기를 불태우고 있다. ⓒ 뉴스타운 이동훈 | ||
아시안게임 여자 태권도 경기의 '양수쥔(楊淑君) 실격패' 사건으로 불거진 타이완의 '반한감정'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이는 분명 사리에나 도리에 맞지 않는 비이성적 행태가 분명하다.
만약 이번 판정 사건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는 국가적인 위신과 냉정을 포기한 채 '어디서 뺨 맞고 아무 데다 화풀이하는 격'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비유가 아니다. 태극기에 불을 지르는 분풀이에 그치지 않고 20일에는 타이페이의 한국학교에 계랸을 투척하는가 하면 삼성, LG 등 전자제품과 한국산 화장품 등의 불매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한 방송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녀시대가 와서 사과를 한다 해도 넘어 갈 수 없는 일"이라 말한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물론 이번 판정시비는 한국과 어떤 직접적인 관련성도 없다. 바로 여기에 이번 사태를 보는 하나의 유추 단서가 존재한다.
바로 '묵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흥분을 잘 하는 중화권 국민들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지만, 경우가 맞지 않다. 그것은 단지 '오버'의 이유가 될 수는 있지만 '동기' 자체와는 무관하다. 타이완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아주 오래된 배신감의 기억을 트라우마(trauma)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재개한 것이 1993년 8월의 일이었다. 이로써 '하나의 중국'을 지향해 온 타이완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외교적 배신자 그 자체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이 두 개의 중국 중에서 중국을 택일한 셈이 된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던 한국과 타이완 사이의 유일한 외교분쟁으로 남겨졌다.
물론 당시 한국의 입장에서 타이완을 버리려 한 것도 아니었고, 단교 통보는 타이완측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국과의 수교가 확정된 후 정식 수교 하루 전날인 1992년 8월 23일 타이완은 한국정부측에 단교를 통보해 왔다. 1949년 1월 수교 이후 44년 만의 단교조치였다.
여기서 누가 먼저라는 것은 중요치 않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 '하나의 중국' 그것이다. 당시 미국이나 일본 등이 먼저 중국과 수교하면서 타이완과 단교한 상황이었다. 한국은 전례에 따라 타이완의 거부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자, 이 문제는 간단히 뒤집어 보면 이렇게 해석된다. 하나의 중국 안에 독자 외교를 펼치는 두 개의 정치체제가 존재할 경우 상대 국가들은 당연히 두 개의 체제와 따로 수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하나이므로 반드시 우리와 수교해야 하고, 대륙 중국과는 수교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지극히 타이완적인 편협성을 띤다.
타이완 정부는 즉시 항공기 운항금지와 한국산 과일 수입거부, 자동차 수출쿼터 취소는 물론 1천억달러 규모의 6년 국토개발계획 한국업체 참여 거부 등 일련의 외교적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중국과 타이완의 대립상황에서 자유주의 국가들을 자신들 편에 줄 세우기에는 그들이 너무나 힘이 약한 상태였고 중국은 무한한 미지의 인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타이완 국민들이 더욱 "한국, 너마저!"라는 탄식을 자아낸 이유였을 터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일본과 단교할 때는 감정적이지 않았고 민간부문 외교는 애써 유지하려던 타이완이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오버한 이유가 무엇이었단 말인가? 거기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라이벌 국가이면서 경제적, 외교 안보적으로 아쉬울 게 없는 '약소 분단국가'라는 점이 그것이다. 라이벌, 약소, 분단. 이 세 단어가 타이완에게는 흥분제로 작용한 셈이다. '한국만은 그대로 있어 줄 것'이라는 동병상련의 우애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이미 한국과 타이완은 '분단국가'라는 점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고 있었다. 타이완은 본토수복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반면 우리는 통일보다 시급한 경제에 치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세계가 이미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타이완은 이를 위협으로만 느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경제, 스포츠, 인구, 국방력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한국에 대해 여전히 타이완은 라이벌 의식에 젖어 있다. 무슨 일이든 한국과 비교하고, 깎아내리려 든다. 물론 우리 역시도 한 때 우리보다 현격하게 높은 자리에 있던 일본에 대해 그랬다.
심지어 타이완인들은 매우 강한 문화적 자존심 때문에 한류 스타들을 곱게 보아주지 않는다. 소녀시대가 타이완 청년들을 매료시키면 한국 연예계의 성접대 뉴스를 전하면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소녀시대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이번에도 이런 생각에 아쉬움을 느낀다. 동기야 어쨌건 그 사안에 따라 가능한 비판의식이나 경쟁심을 표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근래에 타이완이 보여준 감정표현들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들은 마주치는 일본인들을 모조리 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때리고 괴롭힌 사람보다 등을 돌린 사람에게 더 큰 증오를 느낀다는 말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처사가 아닌가.
이제 완전 개방화로 치닫는 글로벌 사회에서 두 나라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지혜와 냉정으로 새로운 외교의 지평을 열 때가 아닌가, 씁쓸함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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