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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바라본 국립경주박물관 ⓒ 이종찬 | ||
"그 참! 웬 목 잘린 불상들이 이리도 많습니까?"
"아, 우리나라가 그동안 오죽 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능교."
"하긴 산의 정기를 끊는다고,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명산의 정상에 쇠말뚝까지 박은 넘들이었으니까."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외할머니댁 뜰에 심어둔 봉숭아꽃과 나팔꽃은 피었니? 그때 여름방학을 맞아 엄마가 사 준 하모니카는 배우고 있고? 무어? 잠 균에 감염되어 아침도 안 먹고 12시까지 잠을 잔다고? 그러면 어떡해?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을 예쁘게 물들여 아빠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던 그 약속은 또 어쩌고.
아빠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가장 싫어해. 그리고 스스로 세운 계획을 스스로 어기는 사람도 몹시 싫어하고. 근데 어쩌지? 너희들이 계속 그렇게 잠만 자다가는 아빠의 딸들이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아이가 되고 말 텐데. 하여튼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너희들 스스로 느슨하게 세워둔 계획표대로 한번 움직여 보려무나.
"1975년 7월에 국립경주박물관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면서요?"
"그렇니더. 국립경주박물관의 역사는 일제시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더. 1910년에 경주 시민들이 경주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경주신라회>를 만들었다고 하니더. 그리고 1913년에 <경주고적보존회>로 정식 발족한 뒤, 그때부터 동부동에 있던 객사에 유물을 진열해가꼬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하기 시작했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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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밀레종 옆에 늘어선 십이지신상 면석 ⓒ 이종찬 | ||
"으음, 그랬군요."
"그 뒤, 그곳을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부르다가 일제에서 해방이 되고 나서부터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불렀다고 하니더. 그러니까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은 30여년 전인 1975년 7월 2일에 개관이 되었니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경주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파아란 잔디밭에 전시된 쌍거북 비각과 경주지역의 절터, 궁궐터 등에서 옮겨온 석조유물들이야. 또한 이 석조유물들은 불교와 관련된 조각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 조각품들 중에는 석불, 석탑, 석조, 석등, 비석받침 등도 있고 주춧돌, 계단석과 같은 건축부재들도 더러 있어.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게 에밀레종이야. 에밀레종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 설명했지? 근데 그 에밀레종 옆에 길게 조성된 잔디밭 곳곳에도 십이지신상을 비롯한 여러가지 유물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그래서 언뜻 보면 아주 오래된 조각공원처럼 보이기도 해.
근데 그 십이지신상을 뒤로 하고 돌아서면 저만치 요즈음 보기 힘든 참담한 모습들이 눈에 확 들어와. 그게 뭐냐구? 20여구쯤 되어 보이는 석조 불상들의 처참한 모습. 근데 그게 왜 참담하고 처참하게 보이냐구? 목이 잘린 채 몸통만 파아란 잔디밭에 정좌를 하고 앉아 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이 목 잘린 석조 불상들은 분황사 뒤에 폐쇄된 채 발견된 우물 속에서 나온 거래. 하지만 누가 왜 불상들의 목을 잘라 우물 속에 빠뜨렸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학자들은 이 목 잘린 석조 불상들이 숭유억불정책을 폈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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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운데가 잘려나간 십이지신상 석탑면석 ⓒ 이종찬 | ||
숭유억불정책이 뭐냐구? 말 그대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다는 그런 말이지. 그러니까 유교를 지나치게 숭상했던 사람들이 그랬을 수도 있다는 그 말이야. 하지만 신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어. 신 선생은 몽고인나 왜인들이 그랬을 것이라고 주장해.
그 당시 유교도들이 아무리 불교를 심하게 억압했다손 치더라도 구태여 석조 불상의 목까지 일부러 자를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는 거야. 하긴 아빠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얼마전 사건을 보면, 신 선생의 말보다도 학자들의 말이 더 맞을 수도 있어. 학교 정원에 세워둔 단군상의 목을 자른 그 사건 말이야.
그 목 잘린 석조 불상들 사이 사이에는 장항리 석조여래입상 등 제 모습을 반듯하게 갖춘 불상들도 몇 개 보여.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불상이 마치 오줌이 마려운 듯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낭산 석조관음보살상이야. 근데 이 낭산 석조관음보살상도 처음에는 목이 잘린 채 발견되었대.
이 낭산 관음보살상이 처음 발견되었을 그 당시, 그곳에 사는 마을 주민들이 경주박물관에서 관음보살상의 떨어진 목을 가지고 갔다고 말했대. 그래서 학자들이 경주박물관에 있는 여러 불상들, 그러니까 목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불상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 관음보살상의 머리를 찾을 수가 있었대. 그리고 그때부터 이 관음보살상이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거래.
이 불상들을 지나 다시 십이지신상 쪽으로 돌아가면 제2별관인 안압지관이 입을 벌리고 있어. 그리고 안압지관 앞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모형도 있고. 그 사이로 바라보이는 삼층석탑이 아빠가 말했던 바로 그 고선사터 삼층석탑이야.
아, 참! 깜빡했으면 그냥 넘어갈 뻔했네. 낭산 말이야. 낭산? 그건 아빠가 남산을 잘못 쓴 게 아니냐구? 그게 아냐. 낭산은 신라 오악, 토함산(東, 동), 선도산(西, 서), 남산(南, 남), 소금강산(北, 북)의 중앙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 이름이야. 그러니까 신라 오악 중 중악에 해당되었던 진산(眞山)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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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린 목을 붙힌 낭산 석조관음보살입상 ⓒ 이종찬 | ||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 이 낭산에도 여러 절터와 불상, 왕릉을 비롯한 많은 역사유적과 유물들이 있어. 하지만 이 낭산의 유물들은 남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물들과 조금 달라. 뭐가? 모두 국가의 통일과 번영, 그리고 왕실의 안녕을 발원하는 호국적 성격을 띤 유물들이 많다는 거지.
"이곳에 있는 유물은 대략 몇 점이나 되나요?"
"1978년까지만 해도 4만점쯤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마 10만 점도 훨씬 넘을 것이니더. 그동안 안압지와 각종 공사 때 나온 유물만 해도 5만 점이 훨씬 넘으니까."
"근데 이곳에 있는 여러 가지 중요한 유물들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관람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례가 많다면서요?"
"이곳 경주는 유물이 출토되거나 발견되었다 하면 대부분 국가문화재급이니더. 그러다 보니까 그럴 수도 안 있겠능교. 구체적인 자료 조사와 엄격한 검토까지 해야 하니까."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평일인 오늘도 국립경주박물관 안에는 고적지 답사를 온 학생들과 외국인들이 제법 많이 붐벼. 그리고 여기 저기 전시된 유물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고. 하지만 오늘은 고고관이라 부르기도 하는 본관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왜냐구? 지금 한창 공사 중이거든.
국립경주박물관은 크게 보면 본관 8실과 별관 2개, 그리고 정원으로 나뉘어져 있어. 그 중 본관 제1실은 선사시대실(先史時代室)이고, 제2실은 고신라 토기실(古新羅土器室)이래. 그리고 제3실과 제4실은 고신라 공예실이고, 제5실은 와전실(瓦塼室), 제6실은 통일신라 토기실, 제7실은 통일신라 금속공예실, 제8실은 조각실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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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 잘린 석조 불상군 ⓒ 이종찬 | ||
그러니까 본관에는 경주와 경주 주변에서 수집한 유물들, 다시 말하자면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을 모두 8개의 방에 진열하고 있다는 거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해 볼까.
1, 2실은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를 거쳐 신라시대 토기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대. 그중 3, 4실은 대구에 살고 있는 의사 국은 이양선 박사가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한 특별전시실이래. 이곳에는 대구, 경주 인근의 경상도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래. 재료는 주로 석기와 토기, 금공예품, 철제품, 옥제품 등이고.
와전실이라고도 부르는 5실은 말 그대로 신라시대 때부터 통일신라시대 때까지의 기와와 벽돌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래. 통일신라 토기실인 6실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와 뼈항아리 등을 전시하고 있고.
그리고 7실은 통일신라 때의 금속공예와 금석문에 관한 자료를 모은 곳이래. 특히 이곳에는 주로 불교와 관련된 사리장치와 청동용기들이 많이 있대. 또 통일신라시대 때 만든 산성의 축조, 비석, 불경과 관련된 자료도 많이 있고.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신라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글씨체에 대한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8실은 여러 가지 불상들과 조각자료 등을 모은 곳이래. 이곳에는 경주 시내와 남산 주변에서 수집한 석불들과 탑의 부속재, 금동불상 등을 전시하고 있대. 그러니까 신라인들의 불교에 대한 끝없는 열정와 우수한 조각솜씨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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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배를 세운 석조 불상 ⓒ 이종찬 | ||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그럼 이제 발걸음을 별관이 있는 곳으로 옮겨볼까. 이 별관 두 개 중 제1별관은 고분관이야. 그리고 제2별관은 안압지관이고. 고분관은 말 그대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관하는 곳이고, 안압지관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야.
제1별관은 신라고분 중 제일 먼저 조사된 금관총을 비롯하여 천마총, 계림로, 미추왕지구 고분, 월성로 고분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제2별관에는 안압지 준설공사 때 출토된 3만여 점의 유물 중 우수한 유물만을 골라 전시했대. 특히 이곳에서는 생활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대부분이어서 당시 신라인들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곳이기도 하지.
"근데 신라시대 유물들은 일일이 다 둘러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데 비해 선사시대 유물들이 너무 없구먼."
"그나마도 우연히 발견된 것이 대부분이니더.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국보급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도 별로 없니더."
그래. 부지면적 7만3893㎡, 연건평 1만7736㎡에 이르는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문화의 보물창고라고도 할 수가 있지.
"어,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에밀레 종소리 아닌교."
그래. 이곳에서는 매시 정각에 녹음된 에밀레 종소리를 들려주고 있어. 너희들도 경주에 오게 되면 반드시 한번 들어보려무나. 이 종이 정말 에미 탓이라, 에미 탓이라, 하면서 우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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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가탑과 다보탑 모형 ⓒ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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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다운 고도의 향취가 흠뻑 베어있는 도시입니다
가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기삽니데이~
이 가을에~~